항저우 출장 3일차, 위안화를 꺼낼 일이 없었다 [만리재사진첩]

윤운식 입력 2023. 9. 24. 12:00 수정 2023. 9. 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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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사진첩][항저우 아시안게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의 한 음식점에 식탁마다 큐알코드로 주문한다. 윤운식 선임기자

오전 내내 걸어 다니면서 취재를 했더니 배가 고프다. 시내 대형쇼핑몰에 있는 현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은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주문은 커녕 종업원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식탁에 있는 큐알 코드를 발견했다. 혹시나 싶어 출장 오기 전에 받아놓은 알리페이 앱을 열고 큐알코드를 스캔했다. 사진과 가격이 표시된 메뉴판이 떴다. 적당한 거로 주문하고 조금 기다리니 조금 전에 본 음식이 나왔다. 식사가 끝나면 계산대로 가지 않고 그냥 그대로 걸어 나오면 된다. 말할 필요가 없으니 중국어를 단 한마디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음식점, 카페, 주점, 피시방은 물론, 길거리 노점까지 모바일로 다 계산 가능하다. 덕분에 출장 온 지 사흘이 지나도록 공항에서 환전해 온 위안화는 단 한 번도 지갑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2022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빌딩에 아시안게임을 홍보하는 레이저 쇼가 펼쳐지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는 아주 가까운 미래도시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전기차, 전기오토바이, 모바일페이, 얼굴인식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디지털화돼가는 도시를 느끼게 했다. 빨라도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변할 수 있을까 싶다. ‘부르릉’거리던 내연기관 자동차들은 ‘윙~’하는 모터음을 가진 전기차량에게 눈에 띄게 도로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배달하는 노동자도 학교 가는 학생도 장 보는 아주머니도 모두 전기로 구동하는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찢어질듯한 굉음을 내며 길거리를 누비던 오토바이는 이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하는 시민들. 윤운식 선임기자

어디서든 택시 앱을 열고 목적지를 치면 정확하게 내가 있는 곳까지 온다. 택시를 부를 때 미리 계산된 요금을 내면 내릴 때 더 이상의 추가 요금이 없는 것을 봐서는 길이 막힌다고 요금을 더 받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경우에도 현찰은 필요 없다. 아시안 게임을 취재 온 기자단은 저마다의 출입가능 구역이 있다. 목에 그것을 표시한 아이디 카드를 걸고 다니는데 여기서는 꼭 목에 걸 필요가 없다. 가방 깊숙이 넣어놨어도 검색구간을 통과하면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 소속, 출입가능 구역 등이 표시된 화면이 뜬다. 메인미디어센터에 들어가니 각종 전자∙통신 업체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방과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사물함을 찾았다. 그런데 자물쇠나 열쇠도 없고 그 흔한 디지털키도 없다. 분실하면 어쩌나 하는 찰나 문옆에 달린 화면에 기자의 얼굴이 나오더니 ‘철컥’하는 셔터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같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찾을 때도 마찬가지로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내 물건을 담은 사물함의 문이 열렸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한 쇼핑몰에 전시된 전기차.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선수촌, 주 경기장, 미디어센터는 물론이고 시내 도로를 걷는데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다. 얼굴인식이 가장 잘 발달한 나라에서 카메라가 저렇게 많으니 범법행위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도 디지털화되는 느낌이다.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데 지하철 입구마다 공항의 검색대 같은 장비가 설치돼 있다. 검색대 옆에 공안요원들이 지키고 서 있다. 카메라와 노트북이 든 배낭과 조그만 가방이 있어 들고 날 때마다 귀찮지만 현지인들은 누구도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바쁜 시간 대엔 길게 줄을 서서 검색대를 통과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 알아보니 이번 행사 때문만도 아니고 항상 지하철 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돼 있어 일상이라고 했다. 국민이 국가를 완벽하게 신뢰하거나, 국민이 체념하거나, 아예 문제의식 자체가 없거나 그 셋 중 하나일 것이다. 개인정보와 편리함의 교환을 저울질 해보기도 전에 이미 삶의 일부가 돼버린 사회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왔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지하철 입구마다 설치된 보안 검색대.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화폐도 필요 없고 열쇠도 자물쇠도 필요 없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말도 거의 필요 없어지는 것 같다. 오직 자신의 얼굴과 지문만 있으면 되는 시대다. 지하철역에 이번 아시안게임의 대형 슬로건이 걸려있다. ‘Heart to Heart, @ future’ 마음이 서로 통하면 미래가 열린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홍보물만큼이나 많이 붙어있는 선전물이 있다. 천안문 사진 배경에 붉은 글씨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란 제목과 함께 ‘부강 민주 공정 평등…법치 애국’등 12개의 항목들이 쓰여진 전광판들이다. 그리고 바로 옆 버스정류장엔 ‘신시대의 중국 신시대의 아시안게임’이란 표어가 붙어있다. 새로운 시대의 중국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것인가? 새로운 중국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지하철에 아시안게임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를 다니는 전기오토바이.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지하철역의 보안 검색을 위해 승객들이 출입구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 지하철역에 아시안게임 각종 광고와 홍보물이 붙어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항저우 시내에는 아시안게임 홍보만큼이나 사회주의 핵심과제를 홍보하는 선전물이 붙어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항저우/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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