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잔에 320만원?…전쟁터에서도 끊지 못한 ‘악마의 와인’ 뭐길래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9. 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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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클럽 - 17] 나폴레옹의 와인 ‘샹베르탱’

1812년 10월 나폴레옹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러시아에서 철수를 결정합니다. 그해 5월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은 4개월 만에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보급로가 끊기고 겨울이 닥치자 퇴각을 결심한 것입니다. 간신히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다음 해인 1813년 그의 오랜 측근 르 마루아(Le Marois) 장군으로 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독일의 마그데부르크 시를 적들로 부터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폴레옹이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나폴레옹이 사랑한 와인 ‘샹베르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르망 루소 샹베르탱 그랑크뤼 버티컬 세트. 신세계백화점 버건디&.
◇1억원에 판매된 나폴레옹 와인
샹베르탱은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도 거르지 않고 마실 정도로 좋아해 ‘나폴레옹 와인’으로 불립니다. 러시아 원정 때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나서 그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크렘린궁에서 샹베르탱을 마셨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심지어 샹베르탱이 보급되지 않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입니다

샹베르탱이 어떤 와인이길래 나폴래옹이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최근 신세계백화점 부르고뉴 전문 와인샵인 ‘버건디&’에서 프랑스 와인 ‘샹베르탱’ 6병 한 세트가 1억원에 판매됐습니다. 한 병당 가격으로 치면 약 1600만원이고, 한 잔에 320만원 정도의 가격입니다.

아르망 루소가 만든 샹베르탱 그랑크뤼는 연간 생산량이 만 병이 채 되지 않습니다. 평론가들로 부터 맛과 희소성을 인정받아 가격도 매년 오르는 추세입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이 와인의 가격은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에서 거래된 2001~2016 빈티지 와인 기준, 2년 사이 58%, 5년 사이 148% 상승했으며, 그 이후에도 꾸준히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제브레 샹베르탱 마을의 와인
‘샹베르탱’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포도밭 이름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 있는 ‘제브레 샹베르탱’ 마을에 있습니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프랑스 와인의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해 ‘어렵다’라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1억원에 판매된 ‘아르망 루소 샹베르탱 그랑크뤼 버티컬 세트’란 이름을 하나하나 ‘해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아르망 루소는 와인 생산자 이름입니다. 로마네 콩티(DRC), 르루아, 앙리 자이에 등과 함께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생산자입니다.

샹베르탱 포도밭이 있는 제브레 샹베르탱 마을의 원래 이름은 ‘제브레’였습니다. 루이 필립 왕이 1847년 마을 이름 뒤에 포도밭 이름을 추가할 수 있게 허락하면서 마을 이름이 제브레 샹베르탱이 됐습니다. 마을 이름이 길어지기 시작한거죠.

제브레 샹베르탱에선 샹베르탱 포도밭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주위에 있던 포도밭들이 원래 이름 뒤에 샹베르탱이란 명칭을 추가했습니다. 그래서 샹베르탱 외에도 샤름 샹베르탱, 마주에르 샹베르탱, 그리오트 샹베르탱, 샤펠 샹베르탱, 라트리시에르 샹베르탱, 마지 샹베르탱, 뤼쇼트 샹베르탱, 샹베르탱 클로 드 베즈 등으로 불리게 됩니다.

아르망 루소 샹베르탱 그랑크뤼. 신세계백화점 버건디&.
◇가장 좋은 그랑크뤼 등급 포도밭
샹베르탱은 가장 훌륭한 포도밭을 의미하는 그랑크뤼(Grand Cru) 등급 포도밭입니다.

부르고뉴의 와인 등급은 포도밭에 부여되는데 최고급부터 그랑크뤼, 프리미에 크뤼, 빌리지(마을단위), 리즈널(지역단위)로 나누어집니다. 프랑스 와인은 라벨에 큰 지역명에서 작은 밭 단위로 좁혀 들어갈 수록 ‘고급’인 경우가 많아 지역 이름, 밭 이름을 알지 못하면 어떤 와인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도책을 펴놓고 찾아보면 큰 구역에서 작은 구역으로 순으로 부르고뉴(Bourgogne·지역명)-코트 도르(Cote d‘Or)-코트 드 뉘(Cote de Nuits)-제브레 샹베르탱(Geverey Chambertin·마을명)- 샹베르탱(포도밭명)이 되는 겁니다.

제브레 샹베르탱은 부르고뉴에서 가장 많은 9개의 그랑크뤼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다음이 본 로마네 마을입니다. 본 로마네에는 로마네 콩티 등 8개의 그랑크뤼 포도밭이 있습니다.

◇시간을 음미하는 ’버티칼‘ 테이스팅
’버티컬 세트‘란 같은 와인 브랜드인데 포도 생산년도가 다른 여러 해의 와인을 모아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판매된 제품엔 ’아르망 루소 샹베르탱 그랑크뤼 버티컬 세트‘ 중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각 빈티지 와인 6병이 담겼습니다. 빈티지란 포도가 수확된 해를 의미합니다. 전체 버티칼 세트는 1995년 빈티지 부터 2018년 빈티지 까지 모두 24병으로, 6년씩 4개 세트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전체 4세트 가격은 4억원이 조금 안됩니다.

이렇게 포도 생산년도가 다른 와인을 사서 마시는 걸 ’버티칼 테이스팅(Vertical Tasting)‘이라고 부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와인이 어떻게 숙성되는지를 맛볼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선 ‘시간을 음미한다‘고 표현합니다.

◇나폴레옹 법전- 자녀에게 동일하게 상속하라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보르도에 비해 소규모로 잘게 쪼개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또 ’나폴레옹‘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혁명의 가치를 제도화하고 싶어 합니다. 나폴레옹은 1804년 프랑스인의 민법전을 제정하고 공포합니다. 함무라비 법전, 유스티아누스 법전과 더불어 세계 3대 법전으로 불리는 ’나폴레옹 법전‘의 탄생입니다.

나폴레옹 법전에는 불평등 상속에 대한 개선책도 담겨 있었습니다. ’법 앞에 평등‘을 명시하면서 상속에 있어 장자우선제도, 남성우선제도를 폐지하고 자녀에게 동일하게 상속하는 ’균분상속‘을 원칙으로 합니다.

보르도 지역은 귀족과 부르조아가 장악하고 있어서 포도밭 외에도 다른 재산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보르도 지역 포도밭은 여러 명이 상속을 받았지만 포도밭을 매각을 하지않고 공동 상속하거나, 자녀 중 한 명이 포도밭 전체를 물려받았습니다.

반면 부르고뉴 지역은 포도밭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포도밭 외에는 다른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포도밭을 잘게 쪼개 상속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 최고급 화이트 와인의 생산지인 몽라셰는 상속하면서 장남에게는 기사(Knight)를 의미하는 슈발리에(Chevalier)를 주어 슈발리에 몽라셰가 되었고, 첩의 아들에겐 서자(Bastard)를 의미하는 바타르(Batard)를 주어 바타르 몽라셰가 되었습니다.

김흥국 하림그룹 회장이 26억원에 낙찰받은 나폴레옹의 이각모. 하림제공
◇나폴레옹 전도사 김흥국 하림 회장
한국서 나폴레옹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김흥국 하림 회장입니다. 한국에서 ’나폴레옹 전도사‘란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회장의 사전에도 불가능이란 없어 보입니다. 그는 11살 때 외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병아리 10마리를 기반으로 지금의 하림그룹을 일궈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림그룹은 국내 축산업 1위 기업입니다. 2022년도 기준 하림그룹의 자산규모는 17조2980억 원으로 재계순위는 27위입니다.

김 회장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정신을 대한민국의 청소년, 젊은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폴레옹이 실제로 착용한 모자(이각모)를 26억원에 낙찰받기도 했습니다.

◇’불가능은 없다‘란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다시 1813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수십만의 군사를 잃자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스웨덴은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프랑스와 일전을 벌입니다. 독일이 전쟁터가 됐습니다. 전선이 위태위태하고 나폴레옹의 장군들은 전선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합니다. 나폴레옹은 불같이 화를 내며 르 마루아 장군에게 답신을 보냅니다.

“당신은 불가능하다고 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이란 단어는 프랑스어에 없습니다(The word impossible is not French).”

후에 이 말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명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심사위원,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그랑크뤼 와인 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의 다양한 와인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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