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석 KBL 수련심판, “심판교실, 프로 심판처럼 교육”

이재범 2023. 9. 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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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재범 기자] “정말 프로 심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아마추어 심판에게 했기에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KBL은 올해부터 ‘KBL 심판/경기원 아카데미’를 진행하며 그 프로그램 중 하나인 ‘KBL 심판/경기원 교실’을 열었다. 심판교실 수료생 중 3명을 수련심판으로 채용했다.

올해부터 KBL 무대에서 휘슬을 불 오경석 수련심판은 “심판 자격증은 성인이 된 2012년에 땄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후 다른 일을 하느라 5년 동안 심판을 못 봤다”며 “왜냐하면 전문 선수 출신이 아니고, 어느 친구는 어디 취업했다, 어느 친구는 어느 기업 다닌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나이 때는 농구 심판에만 매달릴 수 없어서 잠시 그만 두고 일을 계속 했다”고 심판이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다시 시작한 건 작년 8월이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했는데 더 늦으면 아예 심판을 못 볼 수 있고, 후회가 될 거 같아 내 인생에서 큰 결정 아닌 결정을 했다. 일을 그만 두고 지난해 8월부터 심판을 봤다”며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아니고, 생활체육 소속이어서 인천의 생활체육에서 심판 생활을 했다”고 덧붙였다.

오경석 수련심판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KBL에서 진행한 심판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그 중 성적 우수자를 채용한다고 공지가 올라와서 지원했고, 뽑혀서 KBL에서 다시 심판을 시작한다”고 KBL 수련심판이 된 과정까지 들려줬다.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심판을 하려면 생활체육보다 협회 심판으로 활동하는 게 낫다.

오경석 수련심판은 “협회를 들어갈 거면 취업 고민을 할 때 그 때 들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작년에 서른 살이었는데 서른 살에 협회에서 (심판을 시작하는 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서 그걸 고민했다. 그런데 KBL 심판교실이 열려서 나 같은 생활체육 심판에게는 너무 큰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보통 KBL과 WKBL 심판이나 협회 상임심판이 되어야 그나마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다. 생활체육 심판이 프로농구 심판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늦었더라도 생활체육이 아닌 협회에서 심판을 보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선택이다. 물론 현재는 KBL에 입사했다.

오경석 수련심판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협회는 보통 10월 심판교실을 하고, 특수강습회를 통해 협회 심판을 뽑는 과정을 진행한다. 그걸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고민 과정 중에 KBL 심판교실 공지가 올라왔다. 그래서 여기 지원하는 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지원했다”며 “사실 결과가 나온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지만, 만약 KBL 심판을 떨어졌다면 올해 10월에 기회가 있기에 협회로 가서 심판을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심판교실에서 어떤 수업을 들었는지 묻자 오경석 수련심판은 “8주 동안 주말에 교육이 이뤄졌다. 접하지 못한 기술이나 정보 등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나뿐 아니라 교육을 들은 16명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할 거다”며 “정말 프로 심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아마추어 심판에게 했기에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밖에서 바라보는 프로 심판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했는데 그런 궁금증도 해소되었다. 너무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서 너무 좋았다. 지금은 8주 동안 교육 받은 것에서 더 세분화해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심판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던 교육생 대부분이 KBL 심판이 되려고 했을 듯 하다.

오경석 수련심판은 “재미있었다. 교육을 들은 16명 중에서 3명 정도는 진짜 궁금해서 오신 거고, 나머지 13명은 여기서 잘해서 KBL 심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오셨다. 처음에는 서로간의 긴장감도 있고, 서먹서먹함, 경쟁의식도 있었다. 금방 친해졌다”며 “심판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돌아가며 경기에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어색하고 말을 안 할 수 없다. 좋은 과정과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 친해져야 하고, 대화도 많이 해야 한다.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선생님이나 선배 심판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했다.

오경석 수련심판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을 묻자 “처음에 놀랐다. 8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매주 시험을 보면서 내 스스로 내가 될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반대로 이럴 때일수록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여겼다”며 “최종 면접을 볼 때 내가 최종 면접까지 뽑혔다는 기대감과 최종 면접이 끝났을 때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실 심판을 보는 많은 분들에게는 (KBL이) 꿈의 직장이고 너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길거리 농구를 하며 입상도 하고, 대학에서도 농구를 계속 했다. 마냥 농구가 좋았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좋았는데 농구 심판의 매력을 알아보니까 그게 너무 좋았다”고 농구 심판이 된 계기를 설명한 오경석 수련심판은 “우선 전임 심판이 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최고의 단체에 들어와서 최고의 선배들과 어울려서 심판을 보게 된다. 후배들이 봤을 때 내가 지금 떠오르는 선배들처럼 후배들이 떠올리는 심판이 되고 싶다”고 바랐다.

#사진_ 점프볼 DB(이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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