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 참아” 빅테크 규제 나선 EU…한국은?

송진식 기자 2023. 9. 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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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장법’이어 ‘디지털서비스법’
빅테크·초대형 플랫폼 사전 규제 나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3월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는 EU의 빅테크 규제법 입안을 주도했다. / 연합뉴스

[주간경향] 지난 6월 1일 대법원에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 등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이 전 대표가 2018년 10월 출시한 ‘타다’ 서비스로 사실상 불법 콜택시 영업을 했다고 봤다. 반면 대법원은 타다를 당시 법(현재는 개정)에서 허용한 단기 렌터카 사업으로 판단했다. 결과가 나오자 논란이 일었다. IT·플랫폼 업계 등은 “규제가 혁신을 망친 사례”라며 타다 서비스를 못 하게 만든 국회와 정부를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만 놓고 보면 맞는 말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애초에 타다 서비스가 나왔을 때 쟁점은 ‘법조문’을 어겼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타다 서비스가 “혁신”이라고 주장한 영업행위가 기존 택시업의 영역을 침해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어찌 보면 결과론적 문제다. 넓게 보면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영역 확장이 “혁신인지 약탈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의 연장이기도 했다.

타다 서비스에 반발한 택시기사 여러 명이 분신자살했다. 정부와 국회는 타다와 같은 유사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도록 부랴부랴 여객운수법을 개정했다. VCNC는 이 법 개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 판단은 어땠을까. ‘합헌’이었다. 헌재는 “국가는 공공성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업계를 잠탈 또는 (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큰 운전자 알선행위를 적정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타다 서비스가 기존 택시 업계를 잠탈하고, 법을 회피해 콜택시 영업을 했다고 본 것이다.

타다의 사례는 ‘규제와 혁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고 이에 대한 가치판단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보여준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규제’를 선택했다. 지난 8월 25일부터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DSA)’ 시행에 들어갔다.

빅테크를 겨냥한 또 다른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DMA)’은 지난 5월부터 이미 시행 중이다. IT·플랫폼을 어우르는 빅테크 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 본 EU의 판단은 눈여겨볼 만하다. 소수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지배력 남용 등 시장 불공정문제와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 및 남용, 불법 정보의 유통 등에 따른 이용자 피해 문제는 국내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EU의 DMA, DSA와 유사한 규제법안을 국내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고 있다.

표적 광고 금지, 독과점 횡포 시 막대한 과징금

EU가 시행 중인 DSA와 DMA는 빅테크·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지털(플랫폼) 경제에서 새로운 규율체계를 마련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서로 연관성이 깊고, 규제대상 기업(혹은 서비스)도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디지털 패키지법’으로도 불린다. EU 집행위원회가 수년간 논의 끝에 2020년 12월 초안을 마련했다. 회원국과의 협의 등을 통해 몇 차례 법안 수정을 거친 뒤 올들어 잇달아 시행됐다.

각 법의 규제 성격 및 대상은 약간씩 다르다. DMA는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내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데 초점을 둔다.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광범위한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고, 일정 규모의 매출과 수익을 내는 특정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이 같은 기업들을 ‘게이트키퍼(문지기)’로 지정한 뒤 DMA 규제를 따르게 하고 있다. 게이트키퍼 지정 요건은 EU 내에서 최근 3년간 연매출 75억유로(10조6692억원) 이상이거나 시가총액이 750억유로(약 106조원) 이상인 기업 중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가 4500만명을 넘어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9월 6일 발표한 게이트키퍼 기업은 메타(페이스북), 바이트댄스(틱톡),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회사),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6개 기업이다. 게이트키퍼 기업들의 개별 서비스 역시 규제대상이다. 메타의 경우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와츠앱 등이, 알파벳은 유튜브·구글 검색·크롬(웹브라우저)·안드로이드 OS·구글플레이·구글맵스 등 주요 서비스가 대부분 규제대상이다. 애플도 앱스토어와 iOS·사파리가 포함됐고, 바이트댄스는 틱톡이, MS는 링크드인과 윈도가 각각 규제대상 서비스가 됐다. DMA 규정을 어길 경우 전년도 전 세계 총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반복 위반의 경우 최대 20%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건물 / 픽사베이

DMA 규제 내용을 보면 자사 플랫폼 사용자(입점 기업)에게 타사 플랫폼 사용을 못 하도록 강제하는 ‘안티 스티어링’ 금지, 자사 상품 끼워팔기 금지, 자사 상품 우대 금지 등이 포함됐다. 기본 제공 서비스(애플리케이션 등) 삭제 가능 의무화, 회원(구독) 탈퇴 제한 금지, 동의 없는 표적 광고 금지 및 개인정보 결합행위 금지 등도 명시됐다.

DSA는 플랫폼이나 SNS, 검색 등의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제공할 때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을 정한 규제다. DMA가 빅테크 기업의 영업행위 자체에 대한 규제라면 DSA는 이용자 보호를 위한 조치에 더 가깝다. 거의 모든 서비스가 규제대상이라는 점에서 DMA보다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로도 볼 수 있다. 서비스의 특성이나 규모에 따라 추가 규제가 계속 부과되는 것도 특징이다. EU 내 MAU가 4500만명 이상인 서비스는 ‘초대형 온라인플랫폼’으로 지정돼 가장 많은 규제를 받게 된다. 구글, 아마존,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메타, 핀터레스트, 알리익스프레스 등 국내에서도 널리 이용되는 19개 서비스가 ‘초대형 온라인플랫폼’으로 지정됐다.

DSA에선 소비자를 속이는 일명 ‘다크패턴’ 행위를 금지했다. 가격이 싼 것처럼 표시하다가 결제 단계에서 가격을 올리는 행위, 자동 재구매(재구독) 행위, 서비스 가입보다 해지가 현저하게 어렵게 만드는 행위 등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광고 행위도 금지하도록 했다. 불법 정보의 유통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의무, 광고 및 데이터 운영에 대한 투명성 강화 및 관계당국 보고 의무도 포함됐다. 서비스 업체들이 “영업 기밀”이라고 주장해온 광고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알고리즘 등도 투명성 확대를 위해 공개토록 규정했다.

국내 시장도 구글 등 횡포 ‘심각’, 규제는 ‘부실’

EU의 DSA와 DMA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국내 빅테크·플랫폼 서비스 시장 환경이 EU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DSA와 DMA가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규제에 나선 내용은 이미 국내에서도 논란이 됐거나, 되고 있는 사안이 대부분이다.

지난 9월 14일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더불어민주당 등이 공동 개최한 ‘구글 독점의 실태와 빅테크 규제 토론회’에서는 구글의 독과점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토종 앱스토어’를 지향하며 이동통신 3사가 합심해 만든 ‘원스토어’의 경우 구글의 등쌀에 사업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원스토어 관계자는 “구글이 대형 게임사의 원스토어 동시 출시를 저지하고, 구글 독점 출시 게임만을 지원하는 등 반경쟁행위를 저질렀다”며 “국내 앱 생태계뿐만 아니라 디지털 광고 생태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전자책, 웹소설, 웹툰 등 전자출판 제작 및 서비스업과 관련해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 시행으로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부담하게 된 뒤 전자출판 산업의 영업이익률이 감소했다”며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전자출판 생태계와 문화산업이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엄격한 정부와 국회가 엄격한 법 적용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2021년 9월 조성욱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구글엘엘씨 등의 안드로이드 OS 관련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론회에서 익명 증언에 나선 한 음원사업자는 “유튜브 뮤직의 끼워팔기 정책과 인앱결제 강제로 인해 음원사업자들의 가격 경쟁력과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를 방치하면 국내 음원서비스 시장 타격, 창작자 수익 감소, 소비자 가격부담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장(변호사)은 “빅테크나 플랫폼 산업의 경우 서비스 발전 속도를 기존 법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문제가 발생한 뒤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DMA와 유사한 형태의 사전규제를 국내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내 빅테크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도 구글 못지않게 심각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국내 일반 앱호출 택시 서비스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는 업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6월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가 알고리즘으로 가맹택시에 승객들의 호출(콜)을 몰아주는 등 불공정행위를 했다”는 결정과 함께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승객 편의를 위한 조치였을 뿐 몰아주기를 한 사실이 없다”며 행정소송에 나섰지만,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네이버쇼핑’을 운영하는 네이버 역시 자사 스마트스토어 입점업체에 유리하도록 검색결과 및 노출순위 알고리즘을 조정했다가 공정위에 적발돼 2021년 1월 266억원가량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네이버는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실질 시장점유율이 80~90%에 달하는 국내 사업자도 여럿인데 반해 그에 합당한 책무가 부과되고 있는지, 이를 규제할 법들이 제대로 마련돼 작동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당장 DSA 수준의 규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동·청소년까지도 대상으로 삼는 무분별한 맞춤형 광고, 알고리즘 문제 관련 규제 등은 도입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업계 “규제하면 토종업체만 피해볼 것”

빅테크·플랫폼 규제 관련 국내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형 플랫폼 업체들의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법’을 만들어 공정위가 입법예고까지는 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추진 동력이 약해지면서 국회에 계류 중이다. EU의 DSA나 DMA와 유사한 형태의 입법안도 의원 발의를 통해 여럿 나와 있다. 법안의 구체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데다, 아직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대형 포털 업체 등의 맞춤형 광고 규제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지난 7월 공개했지만, 그마저도 “업계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확정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규제안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EU의 경우 초안을 만들어 시행하기까지 수년이 소요된 점을 들어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 단지인 ‘구글플렉스’ 건물 / 픽사베이

IT 업계 등은 규제가 생길 경우 토종 업체가 피해를 입고 혁신이 저해되는 등의 부작용이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토종 포털·플랫폼들이 생존해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곳”이라며 “타다 사례처럼 과도한 규제는 혁신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구글, 메타 등 규제를 덜 받는 외국 빅테크에 시장을 내줄 우려마저 있다”고 밝혔다.

규제에 있어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는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부분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구글, 메타 등 미국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EU가 DSA를 통해 ‘게이트키퍼’를 지정하자 미국상공회의소 측은 “게이트키퍼 기업 6곳 중 5곳이 미국 기업인데, 이는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유럽 기업에 특혜를 주려는 의도”라며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2021년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구글과 아마존 등의 독과점 문제를 겨냥해 모두 5개 법안을 패키지로 하는 일명 ‘플랫폼 독점 종식법안’을 발의했다. 아직까지 입법 소식은 없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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