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죽였지” “널 위한 거였어”…절대권력도 갖지 못한 ‘이것’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입력 2023. 9. 24. 08:12 수정 2023. 9. 24. 14:06
[씨네프레소-95] 영화 ‘아이리시맨’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를 연속으로 리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그의 영화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이리시맨’입니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돌도 씹어 먹을 것 같던 청년은 언젠가 빵도 씹기 힘든 노인이 된다. ‘아이리시맨’(2019)은 모든 것을 풍화시키고 소멸시키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각자 천성과 능력이 다르고, 물려받은 재산이 다르기 때문에 사는 동안엔 수많은 불공평을 마주하지만, 누구든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영원히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해 모든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결국 필멸의 존재임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
평범한 트럭운전사, 마피아가 된 사연
영화는 미국 마피아인 버팔리노 패밀리 조직원이었던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의 실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50년대 트럭 운전사였던 프랭크는 어느 날 마피아 보스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의 눈에 띈다. 평범한 직업인이었던 프랭크가 범죄 조직 수장의 맘에 든 건 타고난 배짱 때문이다. 러셀이 범죄 혐의를 추궁당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프랭크의 담력을 높게 산 것이다. 그는 조직의 ‘페인트공’이 돼 사람을 제거하고 다닌다.
프랭크는 가족을 위한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은 가장이기도 하다. 어느 날 어린 딸이 동네 슈퍼마켓에서 주인에게 호되게 혼난 뒤 기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딸 손을 잡고 주인을 찾아간다. 주의를 주고 끝내면 적당한 정도의 일이었는데, 프랭크는 주인의 손가락이 부러질 때까지 때린다. 자기 가족에게 실수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무자비한 모습에 겁을 먹은 딸은 그와 점점 멀어진다.
감독은 이처럼 사회적으로 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모습과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과정을 대조적으로 그린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전투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딸이 이해하게 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던 도중 그는 가족과 친하게 지내던 전직 트럭노조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까지 암살한다.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지만, 딸은 프랭크를 강력하게 의심해 그와 심적으로 완벽히 절연하게 된다.
마피아 보스가 말했다 “이가 없어서 빵을 못 씹네”
천하를 호령하던 마피아가 늙어가는 과정을 카메라는 쓸쓸하게 담아낸다. 영화에선 마피아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몇 차례 비중 있게 그려내는데, 한 번은 젊은 시절 스테이크를 썰 때다. 고기를 먹는 건 그들의 탐욕과 왕성한 혈기를 상징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늙어서 수감 중인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도 비춘다. 빵을 건네는 프랭크에게 러셀은 이가 없어서 못 먹는다며 조금만 떼어달라고 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식탐도 세월에 풍화돼버린 것이다.
늙은 아버지는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직장에 찾아가지만 딸은 만나주지도 않는다. 자신이 어둠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두 딸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하지만, 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끔찍한 일을 저지를까 봐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땐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부와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던 그의 야욕은 정작 가족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기왕이면 고급 관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세요?”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 프랭크는 자기가 들어갈 관을 고르기 위해 가게에 들른다. 가격을 조금만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그에게 주인이 “이런 관에 들어가고 싶지 않느냐”며 구매를 유도하는 장면은 실소를 유발한다. 영화는 3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활용해 폭주하는 기관차 같던 그의 욕망을 비추다가, 갑자기 쇠락한 그의 노년을 비추며 관객에게 일장춘몽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죽음은 영화 속 마피아에게도, 우리에게도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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