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산부인과"…가르칠 의사도 배울 의사도 없다

천선휴 기자 2023. 9.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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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형 산부인과들 줄줄이 문닫아…3D업무에 낮은 수가로 추락
2023년 하반기 전공의 지원 7.7%…"진짜 난리났다" 교수들도 일침
한 산부인과의 신생아실 모습. ⓒ News1 남성진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는 얘기에요."

배진곤 계명대 동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장)는 24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산부인과에서 산모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산과는 3D(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극한직업)인데, 지금과 같은 제도 아래서 그 누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피부미용을 선택하지 않고 산부인과를 택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를 낳는 인구도 줄어드는 데다 노동력에 비해 큰 돈을 벌 수 없는 탓에 산부인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들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산부인과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

지난 1일 문을 연 지 32년 된 울산광역시의 대형 산부인과 전문 병원이 무기 휴원에 들어간 데 이어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대형 산부인과병원이 오는 30일 폐업을 결정했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신생아를 받아온 이들 병원이 문을 닫기로 결정한 이유는 뻔했다. 낮은 수가 문제와 떨어지는 출산율로 병원 운영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직격탄을 맞게 된 건 결국 산모들이다. 이곳을 다니던 산모들과 환자들은 새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지역 거점 역할을 하는 산부인과들이 사라지면 결국 고위험 산모나 출산이 임박한 경우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뺑뺑이'를 돌 수밖에 없어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 119구급과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병원까지 이송거리가 20km 이상인 임신부는 최근 3년간 4315명으로 집계됐다. '닥터헬기'를 타고 산부인과로 이동한 산모도 최근 5년간 9명에 이른다.

지난 1일 문을 연 지 32년 만에 무기 휴원에 들어간 울산의 한 산부인과의 모. /뉴스1 ⓒ News1 김지혜 기자

문제는 지금까지 지역 거점에서 산모를 관리하고 아이를 받아주던 병원급 규모의 산부인과가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들 자체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산모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닥터헬기를 타고 큰병원에 이송돼 와도 아이를 받아줄 의사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 아주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부인과를 선택해 인턴(수련의), 레지던트(전공의), 치프(의국장), 전문의를 거쳐 펠로우(임상의)에 이르러도 한 3년 정도 지나면 산과를 그만두는 경우가 80~90%에 이른다"며 "산과의 경우 고위험 환자가 오면 새벽에도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결국 버티다 '교수님처럼 못 살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떠난다"고 말했다.

분만이라는 생명 탄생의 순간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산부인과를 선택해도 현실의 벽에 결국 돌아선다는 얘기다.

이들이 어렵게 택한 산부인과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워라밸'을 챙길 수 없는 산부인과의 특성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소송에 있다.

설현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산과교수 120명, 4년차 전공의 82명, 전임의 28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년차 전공의 및 전임의의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산과를 포기하는 이유의 79%는 '분만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설 교수는 "산과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경우에도 현재 분만을 수행하는 데 가장 걱정되는 부분으로 75%가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을 꼽았다"며 "젊은 의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분만 관련 의료사고와 이로 인한 의료 소송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산부인과를 택하고 수련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버텨 수련을 하다 떠나는 의사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교수의 수도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News1

실제로 의료 현장에선 이 같은 공백을 몸소 느끼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259명이던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올해 102명으로 20년 만에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전국 95개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산과 교수는 125명에 불과하다. 전공의를 지도하는 전임 교원이 수련병원에 1.3명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오수영 교수는 "종합병원(수련병원)에선 산과 교수들이 4명 정도는 돼야 후배를 양성하고 의료의 질도 높일 수 있는데, 현재 전임의가 없는 병원이 전국 수련 병원의 3분의 2에 이른다"며 "현장 상황을 보면 그저 속이 타들어간다"고 토로했다.

산부인과를 전공하고 수련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대하며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고 숙련도를 쌓아갈 의사가 없다는 건 결국 새로 들어오는 의사들을 교육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배진곤 교수는 "의료 행위는 단순히 책을 보고 배우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면서 "숙련된 의사가 없다는 얘기는 정말 위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애기인데,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수영 교수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산과 교수 인원은 14% 감소했고, 조교수는 47%나 줄었다. 이대로면 오는 2032년 산과 교수 인원은 현재 76% 수준까지 줄어든다. 이마저도 지금 있는 모든 교수가 병에 걸려 그만두지 않고 정년퇴직을 했을 경우의 수치다.

세상 밖으로 나온 신생아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 /뉴스1 ⓒ News1

산부인과를 전공하겠다는 젊은 의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2023년도 하반기 과목별 전공의 지원율'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전공의 지원에서 52명 모집인원 중 단 4명만이 산부인과를 지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산과는 상대적으로 고강도 노동이 필요하지만, 수가마저도 너무 낮아 젊은 의사들의 유인책으로 작용할 만한 점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제왕절개 초산 비용은 40만원이지만, 소요 시간이 비슷한 복강경하 담낭절제술은 93만원의 수가가 책정돼 있다. 게다가 제왕절개는 시간을 정해 진행할 수도 없을 뿐더러, 사고가 나면 소송의 위험도 있다.

오수영 교수는 "젊은 의사들을 오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수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면서 "국제학술대회에 가 우리나라 분만 수가를 이야기하면 다른나라 의사들이 '터무니없다'고들 말할 정도로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의 이런 총체적인 문제들은 10년이 넘게 계속됐지만 해결되지 않고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르게 돼 현장에선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라며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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