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英·美서 '전기차 속도조절론'…한국 업계도 주시
미국서는 트럼프가 바이든 전기차 정책 집중 비판…車노조에 구애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내년 중요 선거를 앞둔 영국과 미국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기차 전환을 늦추자는 취지의 '속도조절론'이 등장해 관련 업계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아직 전기차 구매에 비용 부담이 있다는 점, 전동화 전환으로 완성차업계의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는 점 등을 노려 표심을 자극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24일 외신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 금지 시작 시기를 기존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루고, 이후에도 중고차의 경우 휘발유차와 경유차를 거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가정용 가스보일러를 재생에너지 활용식 히트펌프로 전환하는 속도도 늦추겠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정책 '물타기' 논란이 일자 수낵 총리는 기존 정책이 영국 가정에 "수용 불가능한 비용"을 떠넘긴다고 지적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실상은 내년으로 예상되는 총선을 앞두고 가계 부담을 줄여 야당인 노동당과 차별점을 부각하고 부동층 표심을 확보하려는 목적 아니겠느냐는 것이 외신 등의 대체적인 평가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달 영국 등 유럽 7개국 국민 각 1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차량을 전기차로 교체하겠느냐'는 질문에 19∼32%만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하게 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동화 전환에 열을 올리는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으로 꼽히던 영국의 전기차 보급 속도조절 방침에 당황해하며 앞다퉈 비판 입장을 내놨다.
기아는 성명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소비자와 업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했고, 포드는 "우리는 영국 정부로부터 야망, 약속, 지속성 세 가지를 원하는데 이번 조치는 모두 이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공화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정책을 비판하며 파업 중인 주요 자동차업체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 포드·제너럴모터스(GM)·스텔란티스를 상대로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은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 외에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른 고용 보장도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어 전동화 전환이 확대되면 생산 인력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27일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불참하고, 대신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에 속하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방문해 블루칼라 표심 잡기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NBC방송 인터뷰에서 "전기차가 중국에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동차 노동자들은 어떤 일자리도 얻지 못할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확대 정책을 비판했다.
러스트 벨트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백인 노동자들의 열패감을 공략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준 지역이다. 반대로 2020년 대선에서는 러스트 벨트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이 바이든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며 경합주로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업계에도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2024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전기차 전용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 중이며, LG에너지솔루션·SK온과도 손잡고 조지아주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하는 등 전동화 관련 생산 거점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큰 선거를 앞둔 주요국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조절이 화두가 되는 양상은 업계로서도 상당히 예민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현대차그룹이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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