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로머 교수 “현대 경제엔 혁신 이끄는 강한 정부 필요”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3. 9. 2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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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로머 보스턴칼리지大 교수 인터뷰
“물가목표치 2% 적절치 않아
미국 내년말 금리 인하 시작할것”

‘시장과 정부’.

자본주의 경제학의 영원한 숙제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명언을 내놓으며 시장가격 기능을 통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자원배분이 왜곡되는 ‘시장의 실패’를 강조한 경제학자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시장의 실패를 고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했다.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는 폴 로머 교수.
정부의 역할을 주장한 대표적인 경제학자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이후 밀턴 프리드먼은 능력 없는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정부의 실패’를 주장하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장과 정부’는 경제학계의 단골 논쟁거리다.

세계지식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폴 로머 미국 보스턴칼리지 대학 교수를 12일 만났다. 그는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이다. 1시간 정도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는 ‘정부’로 시작해서 ‘정부’로 끝났다.

그만큼 로머 교수는 현대 경제에서 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를 강력하고 유능하게 만들고 정부는 거기에 걸맞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현대 경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인공지능(AI)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도 고전적인 정부의 기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로머 교수의 소신이었다.

인터뷰 마지막에 과학을 하는 사람과 언론인, 판사 등 세 가지 직업은 사실과 정확한 근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역설한 부분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교훈이 될만한 얘기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터뷰하는 폴 로머 미국 보스턴칼리지 대학 교수
▶ 당신은 ‘내생적 성장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이론에 따라 현재의 세계경제를 본다면.

- 내생적 성장이론에 따라 새로운 경제정책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로 이스라엘을 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사이버 보안 분야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큰 투자를 하고 이 산업을 이끌었다. 정부는 정치·군사적 목적 아래 이런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정책 방향은 이스라엘 경제 성장에도 큰 기여를 했다.

현재 이스라엘은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산업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으로 군사 보안과 경제적 이득을 동시에 얻은 사례다. 이스라엘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한마디로 말하면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를 정부가 리드하고 민간 기업들이 따라가는 것을 보여줬다. 내생적 성장이론의 중요한 사례다.

* 내생적 성장이론이란 경제 내의 지식과 신뢰 등 무형의 자본이 축적되면 이는 기술진보를 이끌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이론이다. 외부 충격에 의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통적인 성장이론을 극복한 이론으로 학계에서는 평가받는다.

▶ 정부의 정책 중에는 논란이 되는 정책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어떤가.

- IRA 법안은 미국 산업정책의 일환이다. 미국 내 제조업 부흥을 위한 것으로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탄소 제로를 만들기 위해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고 있는데 이것 역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또 코로나19 이후 강력한 부양책을 실시했는데 이 정책의 혜택을 지금도 보고 있다.

* IRA 법안은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 및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만든 법안이다. 이 법에 외국 투자기업의 미국 투자를 장려하고 중국과의 거래를 억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보호무역주의를 자극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중국의 경제정책도 평가한다면.

- 중국의 정책은 다른 측면이 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위협하는 정책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중국과 대만 간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됐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시진핑 정부의 책임이 있다. 중국은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시진핑 정부는 또 부패와의 전쟁도 벌이고 있다.

국내적으로 부패를 없앤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이 정책의 목적이 시 주석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시 주석이 정책을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효율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내생적 성장이론에 따르면 이런 문제점들이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 중국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중국도 침체된 경기를 부양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부양책은 거품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좋지 않다. 중국의 부동산 문제도 상당 부분 저금리에 기인한다. 중국 경제도 부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금리를 낮추기보다는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저금리는 버블을 만들기 때문에 어느 경제에도 좋지 않다.

▶ 미국은 언제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나.

- 인플레이션과 싸울 때는 고금리가 필요하다. 인플레가 진정되면 금리를 낮출 필요가 있다. 금리를 낮추는 시점은 18~24개월 정도 지난 뒤가 될 것이다. 빠르면 2024년 말이 돼야 금리 인하 여건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물가 상승률 2%를 중요한 목표치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기간 내 금리를 낮추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물가목표치 2%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가 목표치와 관련한 논쟁이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 정부가 강한 행정력에 기반을 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유독 강조하는데.

- 1980년대 폴 볼커가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볼커는 강한 리더십으로 고금리 정책을 뚝심 있게 펴서 물가를 안정시켰다. 내가 강력한 행정부를 말할 때는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나 수상은 유능한 사람을 임명해야 하고 그에게 의사 결정과 관련한 권한을 주고 이를 적극 보장해줘야 한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담당한 사람으로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 한국경제 개혁 과제 중 하나가 노동개혁이다. 이와 관련해서 조언을 한다면.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는 노조가 사용자 및 정부 측과 함께 임금 등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스칸디나비안 모델 같은 것을 고려할 만하다. 전투적인 노조 행태는 여러 가지로 피해가 크다. 몇 년 전 한국에 왔을 때는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 낮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은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들었다.

▶ 내생적 성장모델에서 민간 분야의 중요성은.

-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누구나 검사, 수정 및 개선할 수 있는 코드가 포함된 소프트웨어. 이를 통해 공개적인 협업이 가능하다)는 사회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오픈소스는 독점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민간에서는 이를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이 분야의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머신러닝 기술이 오픈소스일 때가 독점적으로 운영될 때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정부도 오픈 소스를 많은 사람들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마디로 기술을 오픈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각종 보조를 해줄 수도 있다.

▶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민간경제에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도 있지 않는가.

- 정부의 정책을 방해하는 것이 아주 강력한 기업이다. 기업의 힘이 막대해지면 정부의 올바른 정책을 방해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런 기업보다 힘의 우위를 가져야 한다. 정부 정책을 방해해는 기업이 경제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보잉사의 힘이 막대해지자 항공시스템을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재앙을 가져왔다. 이런 회사들이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 한국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10여 년째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GDP에 미달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조언을 한다면.

- 가계부채는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펼 때 위협이 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또 잠재GDP에 미달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장기적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의 가능성도 있다. 보다 적극적인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정부의 재정정책이 저금리에 의존하는 통화정책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양극화 문제도 심해지고 있다.

-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이 분야에서는 과거에 했던 정책을 답습하기보다는 창조적인 정책 필요하다. 다만 기본소득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의욕을 상실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자기의 세금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워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대신 노동 보조금 지급은 바람직하다. 이는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고 저임금 근로자에 대해 임금을 보조해주는 정책이다. 기본소득보다 재정도 적게 들고 실질적인 정책효과도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정책을 펴기 용이하다.

▶ 경제특별구역(Charter City)에 대해 많은 강연을 해왔는데, 한국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 한국은 적어도 인구가 1000만 이상 되는 도시 2개는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동부에 뉴욕, 서부에 LA가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현재 한국에는 1000만 이상 도시로 서울이 있다. 예를 들어 부산 같은 곳을 1000만 도시로 만드는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젊은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대도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은 한국 같은 여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구 분산도 되고 국토 이용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행정도시를 세종으로 이전하는 것은 좋은 정책 같아 보이지 않는다.

▶ 40년 이상을 경제학자로 살았다.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신은.

- 개인적으로 과학자, 언론인, 판사는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진실성(integrity)이 다른 어떤 직업보다 중요하다. 사실에 대해 수없이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도 사회과학자이기 때문에 진실성을 가장 중요한 소신으로 삼고 살았다. 요즘에는 어느 나라나 가짜뉴스나 거짓된 정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 이에 대해 검증하고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것을 확산시켜 사회를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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