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주당 이태백…와인바 즐겨찾는 와인 애호가였다고?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9. 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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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를 뜻하는 ‘가위(=가배)’를 합친 순우리말이죠. 달이 가장 크게 뜨는 음력 8월 보름, 추수를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매년 이 즈음이면 어디선가 한두번 들어봤을, 머릿속을 맴도는 구절이 있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민요 달타령의 일부인데요. 달이 유난히 크고 밝게 떠오르는 한가위 시즌에 이처럼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백성들이 두루 즐겨 부르던 민요에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이태백의 본명)이 등장하는 것은 참 쌩뚱맞습니다. 아마 술을 너무 좋아해 장강 동정호에서 취한 채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는 일화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백은 지금으로 치면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색목인(色目人)이자 유랑민이었다고 하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 이리저리 유랑하다 당시 크게 융성했던 당나라 궁정시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그는 놀랍게도 와인을 즐겨마셨다고 합니다.

중국 청나라 때 화가 황균이 그린 이백행음요월도.
색목인이었던 이백, 즐겨마신 술은 와인
알려진 이백의 고향은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톡목(Tokmok), 당시 쇄엽(碎葉·쉬야브)이라고 불리는 지역입니다.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백은 다섯살 무렵 아버지 이객과 이곳을 떠나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쓰촨성)으로 이주합니다. 당나라가 위세를 떨치던 시기, 이 근방에는 안서도호부가 설치된 시기입니다.

그리고 42세 무렵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현재의 시안)으로 상경해 현종을 알현하고 3년 간 머뭅니다. 그의 인생 황금기죠. 이백의 시상이 폭발하던 시기, 그 유명한 장진주(將進酒·술을 권하다)가 탄생합니다.

평생 지은 1059수의 시 중 186수(17%)가 술에 대한 이야기인 애주가다운 시로, 자신의 기구한 운명과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한(恨), 그 한을 다독이는 매개체로서 술이 잘 표현돼있습니다.

모름지기 인생은 마음껏 즐길지니금술통 빈 채 달을 거저 대하지 말라하늘이 내 재주 내었을 땐 필경 쓰일 데 있으리니천금을 탕진해도 언젠가는 돌아올 터양 삶고 소 잡아서 즐겨나 보자한 번 마셨다면 삼백 잔은 마실지라
술을 권하는 내용의 장진주. 이백의 대표적인 시로 잘 알려져 있다.
1300년 전 당나라 수도엔 와인바가 있었다
당시 당나라 수도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국제교역도시로 무척 번성했던 곳이었습니다. 언제나 동서양의 상인들이 북적대는 곳으로 페르시아계 여인(호녀)들이 운영하는 와인바(Bar) 형태의 주막이 성업했을 정도로 와인이 널리 퍼진 상황이었죠. 이백이 와인을 즐겨마셨다는 것은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특히 이백이 와인을 좋아했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그의 시 중 하나인 청평조(淸平調)와 관련한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평조는 당 현종이 양귀비 등과 함께 모란꽃 구경을 하다가 이백에게 부탁해 지은 시인데요. 이백은 이미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얼굴에 물을 퍼붓고 붓을 잡아 즉석에서 3수의 시를 지어냈다고 합니다.

구름보면 그대의 옷자락꽃을 보면 그대의 얼굴 떠오르니,봄바람 난간에 스치고 이슬 머금은 꽃잎이 무르익네.그대를 만난 것은 분명 군옥산이거나,요대의 달빛 아래였겠지.
취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지어낸 고아하고 심미한 시구에 크게 만족한 현종은 이백에게 서량(장안 북서쪽의 교역 도시)에서 진상한 포도주를 칠보잔에 담아 상으로 내렸습니다. 기원후 700~800년 사이 이미 중국인들이 와인을 즐겨마시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색 유리로 만든 세공잔이었던 칠보잔은 당시 기술로는 만들기 어려운 물건, 엄청나게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포도주 부대를 들고 있는 소그드 와인 상인. 당나라 조각상으로 추정.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이백이 마신 와인의 재료는?
이쯤되면, 와인 애호가들은 이백이 마셨을 와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이야기다보니 제대로 된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기원후 618년 세워진 당나라가 중앙아시아 고창국을 점령하고 거기로부터 마유포도(馬乳葡萄·Mare’s Teat Grape)라는 와인용 포도 품종과 양조법을 수입해왔다는 것은 여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 황실은 와인 담당 관청까지 두고 양조기술자를 고용하기도 했는데요. 흥미롭게도 이 마유포도는 수백년 뒤 우리나라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연산군일기와 선조실록, 연행일기 등에서 식용으로 쓰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은 지금도 마유포도를 재배한다는 것입니다. 이 맥락으로 본다면, 이백이 마신 와인은 마유포도로 양조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오늘날에는 양조보다는 건포도로 가공해 판매하는 품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김새는 최고급 포도 작물로 알려진 블랙사파이어 품종과 흡사해 보이고, 왜 마유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포도송이를 보면 쉽게 짐작할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마유포도로 양조했다는 와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이백이 어떤 향과 맛의 와인을 마시고, 그토록 찬란한 시들을 써내려갔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게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현재에 재배하고 있는 마유포도의 모습. 색깔만 검다면 일부 농가에서 고수익 품종으로 재배하는 블랙사파이어와 흡사해보인다.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
오늘은 중국의 시선으로 추앙받는 이백과 그의 와인 사랑 이야기를 알아봤습니다. 복합적인 향과 맛, 섬세한 뉘앙스를 지닌 와인은 마시면 마실수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당시 이백에게 창작의 영감에 불을 지피는 훌륭한 도구였습니다.

비록 마유포도로 만든 와인은 없지만, 어떤 와인이면 어떻겠습니까. 선선한 가을 달밤을 와인 한 잔, 1300년 전 이백의 아름다운 시 한 수와 함께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백의 상상력이 특히 돋보이는 수작, 월하독작(月下獨酌·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일부를 옮기며 이번주 와인프릭을 마무리 합니다.

꽃 사이에서 놓인 술 한 단지,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마신다.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네.달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르는구나.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니 즐겁기가 모름지기 봄이 된 듯한데.내가 노래하니 달이 배회하고, 춤추니 그림자 어지럽게 오가는구나.술 깼을 때 함께 즐거움을 누리지만, 취한 후에는 각자 흩어지니.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교유를 맺으며, 멀리 은하수 저편 재회를 기약하리.
★Wine Freak’s Tip. 곧 다가올 올해 한가위를 앞두고 어김없이 다양한 와인 선물세트가 독자들의 눈을 현혹할텐데요. 와인프릭 <조선인들도 즐겼다고? 명절음식과 와인 꿀조합 비법 공개>편에서 언급한 구매 팁을 활용해 현명하게 와인을 구매하시길 바랍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본문에 사용된 사진은 조각상을 제외하고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몬에 사용된 이백의 시구는 의역이 있습니다. 문장나눔 역시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필자가 임의로 조절했습니다.

*참고자료

- 와인 인문학 산책(글항아리, 장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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