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주당 이태백…와인바 즐겨찾는 와인 애호가였다고? [전형민의 와인프릭]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를 뜻하는 ‘가위(=가배)’를 합친 순우리말이죠. 달이 가장 크게 뜨는 음력 8월 보름, 추수를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매년 이 즈음이면 어디선가 한두번 들어봤을, 머릿속을 맴도는 구절이 있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민요 달타령의 일부인데요. 달이 유난히 크고 밝게 떠오르는 한가위 시즌에 이처럼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백성들이 두루 즐겨 부르던 민요에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이태백의 본명)이 등장하는 것은 참 쌩뚱맞습니다. 아마 술을 너무 좋아해 장강 동정호에서 취한 채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는 일화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백은 지금으로 치면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색목인(色目人)이자 유랑민이었다고 하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 이리저리 유랑하다 당시 크게 융성했던 당나라 궁정시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그는 놀랍게도 와인을 즐겨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42세 무렵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현재의 시안)으로 상경해 현종을 알현하고 3년 간 머뭅니다. 그의 인생 황금기죠. 이백의 시상이 폭발하던 시기, 그 유명한 장진주(將進酒·술을 권하다)가 탄생합니다.
평생 지은 1059수의 시 중 186수(17%)가 술에 대한 이야기인 애주가다운 시로, 자신의 기구한 운명과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한(恨), 그 한을 다독이는 매개체로서 술이 잘 표현돼있습니다.
모름지기 인생은 마음껏 즐길지니금술통 빈 채 달을 거저 대하지 말라하늘이 내 재주 내었을 땐 필경 쓰일 데 있으리니천금을 탕진해도 언젠가는 돌아올 터양 삶고 소 잡아서 즐겨나 보자한 번 마셨다면 삼백 잔은 마실지라
특히 이백이 와인을 좋아했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그의 시 중 하나인 청평조(淸平調)와 관련한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평조는 당 현종이 양귀비 등과 함께 모란꽃 구경을 하다가 이백에게 부탁해 지은 시인데요. 이백은 이미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얼굴에 물을 퍼붓고 붓을 잡아 즉석에서 3수의 시를 지어냈다고 합니다.
구름보면 그대의 옷자락꽃을 보면 그대의 얼굴 떠오르니,봄바람 난간에 스치고 이슬 머금은 꽃잎이 무르익네.그대를 만난 것은 분명 군옥산이거나,요대의 달빛 아래였겠지.
당나라 황실은 와인 담당 관청까지 두고 양조기술자를 고용하기도 했는데요. 흥미롭게도 이 마유포도는 수백년 뒤 우리나라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연산군일기와 선조실록, 연행일기 등에서 식용으로 쓰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은 지금도 마유포도를 재배한다는 것입니다. 이 맥락으로 본다면, 이백이 마신 와인은 마유포도로 양조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오늘날에는 양조보다는 건포도로 가공해 판매하는 품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김새는 최고급 포도 작물로 알려진 블랙사파이어 품종과 흡사해 보이고, 왜 마유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포도송이를 보면 쉽게 짐작할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마유포도로 양조했다는 와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이백이 어떤 향과 맛의 와인을 마시고, 그토록 찬란한 시들을 써내려갔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게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비록 마유포도로 만든 와인은 없지만, 어떤 와인이면 어떻겠습니까. 선선한 가을 달밤을 와인 한 잔, 1300년 전 이백의 아름다운 시 한 수와 함께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백의 상상력이 특히 돋보이는 수작, 월하독작(月下獨酌·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일부를 옮기며 이번주 와인프릭을 마무리 합니다.
꽃 사이에서 놓인 술 한 단지,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마신다.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네.달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르는구나.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니 즐겁기가 모름지기 봄이 된 듯한데.내가 노래하니 달이 배회하고, 춤추니 그림자 어지럽게 오가는구나.술 깼을 때 함께 즐거움을 누리지만, 취한 후에는 각자 흩어지니.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교유를 맺으며, 멀리 은하수 저편 재회를 기약하리.
*본문에 사용된 사진은 조각상을 제외하고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몬에 사용된 이백의 시구는 의역이 있습니다. 문장나눔 역시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필자가 임의로 조절했습니다.
*참고자료
- 와인 인문학 산책(글항아리, 장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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