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말서에 지시 불복종 써라”…공개 망신 주는 상사, 괴로워요

한겨레 2023. 9. 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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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사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예산 항목에 맞지 않아 집행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상사가 동료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나무라며 왜 그 일을 못 한다고 했는지 사유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사유서나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 경위 보고에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 명령이 정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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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쩜형의 까칠한 갑질상담소][한겨레S] 쩜형의 까칠한 갑질상담소 _ 시말서와 양심의 자유
언스플래시 제공

Q. 상사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예산 항목에 맞지 않아 집행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상사가 동료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나무라며 왜 그 일을 못 한다고 했는지 사유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상사 지시에 불복종했다는 내용을 꼭 넣으라면서 사유서를 고쳐가며 세번이나 쓰게 했습니다. 다시 쓸 때마다 큰소리로 망신을 줬습니다. 상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2023년 9월, 닉네임 ‘화난라이언’)

A. 먼저 진료나 상담부터 받는 게 좋겠어요. 빨리 치료를 받아야 마음의 상처가 악화되지 않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구성 요건 중 하나인 ‘고통을 받았다’는 증거도 될 수 있고요.

회사나 상사가 사유서나 시말서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반성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은 사유서나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 경위 보고에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 명령이 정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 취업규칙이나 징계 규정에 명시한 ‘시말서 3회 제출 시 징계’를 근거로 해고하는 경우도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시말서 강요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적시하고 있어요.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 “상사가 특별한 위법행위나 회사 내규를 위반한 사항이 없음에도 시말서를 요구하고, 이에 부득이 시말서를 작성했음에도 추가적인 시말서 작성을 계속 요구하거나,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등의 비자발적인 문장을 기재할 것을 강요함”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딱 ‘화난라이언’님 사례죠? ‘상사의 지시에 불복종했다는 부분을 꼭 넣으라’며 반성문을 세차례나 강요한 행위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5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고, 즉시 조사, 피해자 보호 등을 요구하실 수 있어요. 잘못이 있더라도 시말서(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적은 문서) 아닌 경위서로, 사실관계만 육하원칙에 따라 쓰면 됩니다.

손님과 동료들 앞에서 소리 지르며 욕을 하거나 면박을 준 행위는 형법상 모욕죄가 될 수 있는데, 6개월 안에 신고해야 합니다. 당연히 직장 내 괴롭힘이고요.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 주기, 낙인찍기, 조리돌림 같은 인격모독 행위는 사람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남깁니다.

지난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에게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어”, “빨갱이”, “부역자” 등 입에 담지 못할 모욕을 했습니다. 며칠 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오염수 방류를 우려한 가수 김윤아씨를 향해 “개념 없는 연예인”이라고 망신을 줬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헌법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망언을 일삼고 있으니, 나라 꼴이 가관입니다.

하기야 대통령이 독립운동가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건설노동자를 ‘건폭’이라고 ‘조리돌림’하는 ‘폭언공화국’이니 어쩌겠습니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못났어도 국민은 위대한 나라였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하여튼 우리나라 헌법은 일터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잊지 맙시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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