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죽이는 엄마 나와도 잠잠, 김순옥 월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엔터미디어=정덕현] 6%, 6.1%, 6.7%(닐슨 코리아).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의 시청률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 학교 교실에서 출산을 하고, 엄마가 딸의 목을 조르며, 친구인 척 가장해 친구를 이용해 먹고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퍼뜨려 그 가족을 풍비박산 내버린다. 급기야 참다못한 딸이 엄마에게 등을 돌리자 엄마가 사주해 딸을 죽이려 한다...
이보다 더 자극적인 전개가 있을까. <7인의 탈출>은 어떻게 하면 자극적인 장면과 상황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몰아간다. 이처럼 할 수 있는 건 다 끌어모아 자극을 얹고 있지만 거기에 비해 시청률은 소소하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이 김순옥표 막장의 세계에 호기심으로 들여다봤던 시청자들조차 외면하게 된 그 이유는.
첫째, 스토리는 없고 자극만 끊임없이 나열되어 있다. 자극적인 상황도 어느 정도의 스토리 라인과 인물들에 대한 공감대가 없어진 이후에 펼쳐져야 효과가 나올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7인의 탈출>은 대본도 연출도 깔아주고 때려주는 그런 흐름을 무시한다. 노래도 고음만 계속 치는 '강강강강'으로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끝없는 자극의 연속은 처음에는 충격적이지만 갈수록 그러려니 하는 둔감함을 남길 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시청자들을 둔감함 속에 밀어 넣는 것은 자극만 있는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건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현실에도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다. 자극에 둔감해져 학교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딸의 살인을 사주하는 그런 이야기를 별거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원형적인 틀이나 감수성, 느낌 등은 현실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둘째, 개연성이 전혀 없다. 전날까지 춤을 추며 오디션 준비를 하던 여고생이 다음 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학교 교실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렵다. 3회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를 출산한 사람이 방다미(정라엘)라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 한모네(이유비)가 방다미의 사물함에 산모수첩을 넣어 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도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다. 한모네가 방다미라는 이름으로 산모수첩을 만들어 썼다면 훨씬 이전부터 두 사람이 알고 지냈어야 하는데, 한모네는 방다미가 전학 온 후 알게 됐다.
물론 한모네가 방다미와 친한 척 지내면서 그의 이름을 도용해 산부인과 출입을 한 게 꽤 오래됐을 수 있다. 하지만 대본도 연출도 이런 시간 흐름에 대한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챙기지 않는다. 그저 강강강강의 자극적인 상황들을 숨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전개시키는 것만이 목적인 것처럼 달려 나간다. 어찌 보면 그런 속도감 있는 전개 자체가 개연성 부족을 숨기기 위한 안간힘처럼 보일 정도다.
셋째,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주제의식이나 메시지는 너무 드러내려 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하게 세워져 있지 않으면 드라마도 또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길을 잃기 마련이다. 방다미가 당한 일련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가짜뉴스'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그러한 주제의식도 드라마가 형식적으로 그걸 받쳐줘야 분명히 드러나는 법이다.
즉 '가짜뉴스'의 폐해 중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성급한 '확증편향'의 문제다. 사실 관계를 알아보지도 않고 쉽게 사실로 믿어버리고, 심지어는 믿고 싶은 걸 믿는 확증편향이 가짜뉴스를 양산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드러내려 한다고 해도 <7인의 탈출>은 그 서사 자체가 확증편향적이다. 즉 이야기가 개연성 있게 흘러가고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며 서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대로 끌려 다닌다.
예를 들어 손녀인 방다미를 대하는 방칠성(이덕화)의 태도가 그렇다. 처음에는 그토록 반가워하더니 약속 하나 안 지켰다고 빗속에 방치하던 그가 방다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는 일련의 모습들은 이 캐릭터가 가진 자연스러운 변화라기보다는 작가가 의도한대로 정해진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 같다.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사람을 극으로 몰아세우는 것. 그것이 확증편향을 만드는 가짜뉴스와 뭐가 다른가. 즉 <7인의 탈출>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확증편향의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김순옥 작가의 전작이었던 <펜트하우스> 역시 자극적이고 뒤로 갈수록 개연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 작품은 초반부에 집값과 교육 1번지로 내세워진 헤라팰리스라는 공간이 가진 허영과 추악함을 꼬집는 풍자적 사이다가 존재했다. 특히 김소연을 위시해 유진, 이지아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빈 개연성조차 납득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을 <7인의 탈출>에서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스토리가 보이지 않고 자극만 나열되어 오히려 둔감해지는 상황이나, 그 스토리 속 인물들의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 개연성 부족, 게다가 주제의식까지 모호하게 만드는 작품의 서사 방식. 시청자들의 외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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