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에 비춰 본 ‘도적-칼의 소리’..웨스턴 풍미 ‘맛깔’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9. 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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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마지막 연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도적-칼의 소리’(극본 한정훈, 연출 황준혁·박현석)를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시구(詩句)다. 간도 땅, 만주 땅, 연해주 땅 곳곳에 그리움을 덮어버린 풀 무더기 무더기들이 얼마나 많을 지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드라마 ‘도적’은 1920년대 간도를 배경으로 한다. 간도는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인 중국 길림성 동남부 일대를 말한다. 그 중 드라마의 지리적 배경이 되는 동간도(혹은 북간도)는 훈춘·왕칭·옌지·허룽의 4현(縣)으로 나뉘어 있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을 가리킨다.

드라마는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 봉오동전투 무렵의 이 북간도를 배경 삼는다.

주인공 이윤(김남길 분)은 노비 출신 일본군으로 씻지 못할 오류를 범한다. 자책과 괴로움의 나날들을 견디다 못한 이윤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리, 자신을 죽일 자가 있는 곳, 간도 땅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풀뿌리 인생들. 하나같이 저 못지않은 아픔과 회한을 끌어안고 도강한 이들이다. 착취와 핍박은 남의 땅 간도에서도 이어졌지만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꾸려간다. 그리고 그들은 이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윤은 그렇게 죽으러 간 자리에서 다시 살 이유를 찾는다. 그런 동포들, 그런 가족들을 지켜내고 그들의 일상을 건사하는 것. 그렇게 이윤은 도적이 된다.

이윤의 도적단은 나라의 독립같은 거창한 슬로건엔 관심이 없다. 착취하고 억압하기로는 마적 같고 왜놈 같았던 나라다. 오죽하면 정든 땅 버리고 도강을 했을까. 독립운동은 그런 나라에서 많이 받아처먹은 놈들이 해야 마땅한데 정작 그런 놈들은 재빨리 안면 바꿔 왜놈들 앞잡이가 되어 버렸다. 그깟 나라 독립 하던 말던 상관없다. 그래서 독립군과는 거리를 둔다. 오로지 내 가족, 내 마을의 안전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랬는데 간도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당시의 간도는 무주공산이라서 무법지대였다. 먼저 장작림의 봉계군벌이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하지만 1920년 봉계군벌의 주력은 이홍장-원세개로 이어진 북양군벌의 다른 갈래인 직계군벌과 연합, 환계군벌 공략에 나섰고 영향력을 산해관까지 확장한다. 즉 주 관심사가 서쪽에 있었던 시기다.

한편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해간 일본은 조선인 보호를 구실로 1907년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개설한데 이어 1909년 간도협약을 계기로 통감부 간도파출소를 폐쇄하고 일본총영사관을 두게 된다.

이 간도협약에는 ‘장래 길림·장춘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 대한제국의 회령 철도와 연결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즉 일제는 남만주 철도부설권 등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땅(병합한 조선 땅)이라 믿는 간도를 일시적으로 중국에 넘겨준 스탠스를 취했던 것이다. 드라마 속 이윤 도적단과 독립군, 마적, 일본군의 각축 대상이 된 철도부설자금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편 평화적 시위인 3·1 만세운동의 실패로 무장투쟁론에 경도된 독립군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에 침투, 일본군 국경 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1919년과 1920년 두 해 동안 국내로 진입한 독립군의 무장 투쟁을 살펴보면, 우선 대한독립군은 일본군의 삼엄한 국경 수비에도 불구하고 혜산진을 점령하고 갑산으로 진격했다. 이어서 강계와 만포진을 점령했다. 아울러 국민회군과 북로군정서 등이 국내로 진격, 회령을 점령하는 등의 성과도 올렸다.

이에 한반도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은 조선 주둔 1개 여단을 간도 지역에 투입하고 시베리아 주둔 병력 일부와 북만주 주둔 병력 일부를 동원, 간도 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결과 중 대표적인 것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대첩이다.

봉오동전투는 홍범도·최진동 등이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 병력을 봉오동으로 유인, 급습함으로써 적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쾌거고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이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10여 차례 교전 끝에 적의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한 압도적 승전으로 독립군 측은 당시 60명의 전사자를 냈다.

드라마는 이같은 독립군의 쾌거를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소개하면서 역사 속 훈춘사건과 간도참변의 개연성을 설명한다.

훈춘사건은 간도참변을 빌드업하기 위한, 즉 대규모 만주출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본군의 흉계다. 1920년 일본군은 마적 두목 장강호를 매수, 훈춘을 습격하게 하고 이 습격으로 중국인 70여명, 조선인 7명과 훈춘 일본 영사관 시부야 경부 가족 등 일본인 부녀자 9명이 살해당한다. 직후 일본은 나남사단 등 3개 사단을 만주에 투입한다.

드라마 속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으로 명시된 간도참변은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이어진 일본군의 만행으로 훈춘에서만 242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것을 시작으로 약 3만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드라마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같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풍미를 입혔다. 혼자서 러시아 포병단을 섬멸했다는이윤이나 활과 검의 명수 최충수(유재명 분), 살인청부업자 언년(이호정 분)과 도끼 명수 초랭이(이재균 분)의 액션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금수(차엽 분)는 마동석류 힘의 액션을 과시하고 아편 중독 총잡이 강산군(김도윤 분)은 퇴폐미가 일품이다. 욕쟁이 누님 김선복(차청화 분)이 튀겨내는 욕설은 정겹게 코믹하고 신념에 찬 신여성 남희신(서현 분)과 변절의 눈동자 이광일(이현욱)의 고뇌도 공감을 부른다.

드라마는 다행히 민족의 비극 간도참변을 앞두고 끝난다. 일제강점기란 시대적 무게에도 유머와 웃음을 가능케 한 절단신공이다. 숙연해지는 개개인의 서사는 이윤, 최충수, 언년 정도만 드러났다. 이 불구대천의 원수 3인 간엔 그러나 증오와 살의 대신 포용과 이해, 존중을 장치했다.

제작비가 많이 든다니 시즌 2가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드라마가 완성도 높게 재미있고 매조짓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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