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보다 실적…회장님표 인사엔 자비가 없었다
실적 부진했던 주요 계열사 대표 교체
반면 성과 낸 대표들은 주요 계열사로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매서웠던 회장님표 '필벌'
이번주에는 신세계그룹이 주요 그룹 중 가장 먼저 2024년 임원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신세계가 원래 인사가 빠른 편이라지만, 아직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9월에 임원 인사를 단행하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25개 계열사 중 9개 계열사 대표가 옷을 벗었습니다. 이 중에는 이마트와 SSG닷컴을 맡고 있던 '정용진의 남자' 강희석 대표, 35년 신세계맨 손영식 신세계 대표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마트와 신세계 대표가 동시에 교체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인사에는 그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에게 실권을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나 있었던 이명희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부진한 실적을 내자 이 회장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그런 만큼 이전보다 큰 폭의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도 많았죠.
실제 이마트는 올해 상반기 394억원 적자전환했습니다. 신세계는 매출이 8.4%, 영업이익이 14% 급감했죠. 뒤를 받쳐줘야 할 G마켓과 SSG닷컴은 아직도 적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던 '유니버스 클럽'도 성과가 시원찮습니다. 회장님이 '노'하실 만 했단 얘기입니다.
'신상'으로 이어진 성과
칼만 휘두른 건 아닙니다. 승진 인사도 못지않게 파격적이었습니다. 여러 계열사를 동시에 맡는 '겸직 CEO'만 4명이 선임됐습니다. 한채양 대표는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를 모두 담당하는 '3in1' 대표가 됐고요. 박주형 대표도 기존 신세계센트럴시티와 신세계를 함께 담당합니다. 신세계푸드와 신세계L&B, 신세계프라퍼티와 조선호텔앤리조트도 한 묶음이 됐습니다.
한채양 대표는 기존에 조선호텔앤리조트를 담당했습니다. 그룹 내에서 핵심 계열사라고 부르기엔 규모가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성과는 확실했습니다. 2019년 대표 부임 후 700억원 넘는 손실을 흑자로 돌려놨고 조선호텔 브랜드를 이용한 HMR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비숙박 부문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신세계 대표로 임명된 박주형 대표도 지난해 신세계센트럴시티 매출을 3000억원대로 끌어올렸습니다. 올해도 매출과 이익 모두 큰 폭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죠. 노브랜드버거 등 외식사업을 잇따라 성공시킨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 스타필드를 신세계그룹의 메인 브랜드로 키워낸 임영록 대표 역시 성과가 확실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계열사를 맡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면 더 큰 역할을 맡길 수 있다는 사인을 모든 임직원에게 보여줬다는 평가입니다.
통합 체제 잘 돌아갈까
이번 임원인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된 또 하나의 움직임은 '계열사 통합 운영'입니다. 겸임 대표 선임을 통해 식음료 계열인 푸드와 L&B, 백화점과 센트럴시티, 호텔과 프라퍼티를 하나로 묶었죠. '이마트' 이름을 공유하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SSM은 세 곳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신세계프라퍼티·SSG닷컴·지마켓 등 6개 리테일 브랜드를 또 하나로 묶어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로 명명했습니다.
비슷한 사업군을 영위하는 계열사의 수장을 통일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복안인데요. 우려의 시선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마트와 이마트24, 이마트에브리데이를 한 데 묶었지만 대표 입장에서는 매출 규모가 압도적인 이마트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이 때 편의점·SSM 사업에 대한 '맞춤 경영'이 되겠냐는 의구심입니다.
이는 사실 근거 없는 우려도 아닙니다. 현재 진행 중인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만 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외부 파트너'를 포섭해 유니버스를 확장하겠다는 포부지만 막상 계열사인 이마트24조차 아직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 역시 유통 계열사 통합 플랫폼인 '롯데온' 안착에 오랜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이명희 회장이 꺼내든 카드는 강렬했습니다. 명확한 '신상'과 더 명확한 '필벌'이 이어졌으니 그야말로 신상필벌의 모범 답안입니다. 하지만 이 인사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결국 또 한 번 '실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정답은 1년 뒤에 공개됩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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