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2시간 나들이’ 엄마도 아이도 피곤해…동네 놀이터로 가보세요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입력 2023. 9. 23. 10: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아~오늘 정말 재미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주말 이틀은 짧고도 길다. 어린 아이 둘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 전에는 미처 몰랐다. 마냥 귀여운 내 자식들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아빠가 다 그러하듯 오롯이 가족이 24시간을 함께 하는 주말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주 하반부로 갈수록 퇴근길마다 ‘주말에 어딜 가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게 된다. 실내가 아닌 실외, 사람이 많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을 찾다보면 자꾸만 범위가 넓어진다. 어느날은 집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을 만한 작은 농장에 찾아가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한 적도 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커피숍을 무척 좋아해서, 근교의 경치 좋은 커피숍을 가기도 했다.

물론 다녀오면 참 좋기는 하다.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아빠도 좋은 경치를 보며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 전환과 힐링이 피로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피로는 쉬어야 풀리는 법인데 주말 아침 일찍 아이들과 나갈 채비를 하고, 오랜 시간 운전을 하고, 잠시 자연을 만끽(!) 한 뒤 역시 꽉 막히는 도로를 뚫고 집으로 돌아오고나면 아이도 부모도 녹초가 되고 만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집에 도착해 바로 쓰러져 잘 수 있던 과거와는 달리,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 부모의 삶이다. 아이를 씻기고,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을 토닥토닥 재워 준 후에야 아침에 쌌던 짐을 푼다. 빨래와 청소, 설거지, 집 정리도 당연히 부부의 몫이다. 하루쯤 걸러도 되지 않을까? 물론 마음은 굴뚝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거르고 나면, 어차피 다음날 다른 이가 해 주는 것도 아니기에 반쯤 감긴 눈으로 열심히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일요일에 갈 곳을 또 찾아본다. 동물원을 가야하나, 놀이공원이라도 가볼까. 근교에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없나. 열심히 휴대폰을 뒤적이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커피숍에 갈거면 집 앞으로 가자. 어차피 아이들에겐 그게 그거야.” 한마디 쏘아붙이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도 틀리지 않았다. 집 앞 커피숍이라고 분위기가 나쁜 건 아니지 않나. 다만 익숙해서 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해 초, 아이들과 휴양지를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던 내게 회사 선배가 했던 조언도 떠올랐다. “해외 갈 돈과 시간이 있으면, 한국에 좋은 호텔에서 며칠 묵는 게 나아. 애들은 수영장만 있으면 돼.”

결국 근교 커피숍도, 놀이공원도 모두 내려놓고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30분 놀고 끝이겠지 싶었는데, 그네만 한 시간을 넘게 탔다. 아, 우리 아이들은 집 앞 놀이터에 자주 오니 주말에라도 다른 곳을 가야겠다던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터에 올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다. 실컷 놀이터에서 놀고 근처 커피숍에 가서 음료를 마셨다. 커피숍에 가는 날에만 특별하게 아이에게 코코아를 사주는데, 아이는 어른 흉내를 내며 코코아를 한 잔 하는 이 순간을 참 좋아한다. 이 순간은 근교 커피숍이 아니라 동네 커피숍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구나.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일하는 엄마의 욕심이 아이와 부모를 ‘즐겁게’ 하는 대신 ‘피곤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어린이집 교사인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보통 어른들은 목요일이 되면 지치는데, 아이들은 화요일만 되면 피곤해 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이틀간의 주말 동안 부모가 짜놓은 과중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오히려 주 초반에 어린이집 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다는 소리다.

동네에서 (엄마 기준으로) 별 일 없는 하루를 보낸 주말, 침대에 누워 아이가 피식 웃는다. “오늘 엄마·아빠랑 놀이터 가서 너무 좋았어. 내일도 놀이터에 갈래요.” 다행히 내일은 주말 근무가 없는 일요일이다. 지나치게 별 일을 만들어 너도 나도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문득 미안해진다. 별 일 없는 하루였지만 아이도 엄마·아빠도 참 많이 웃었다. “그래, 내일도 놀이터에 가자.” 이렇게 또 한번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Copyright©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