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독재자가 살찐 이유…‘자전거보다 느린 열차’ 안에 뭐가 있길래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입력 2023. 9. 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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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러시아 ‘5박 6일’ 일정 마무리
전용기 ‘참매 1호’ 대신 전용열차 타
방탄 장갑 등 최고 수준 보안 갖춰
김정은 즐기는 산해진미 항시 제공
러시아 머무르면서 잠도 열차서 자
5박6일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평양행 열차 탑승을 기다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출처=연합뉴스]
전 세계의 관심과 견제를 동시에 받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정이 약 일주일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북한 평양에서 출발한 김정은은 12일 북·러 접경지인 연해주 하산역을 거쳐 13일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면한 것은 약 4년 5개월 만입니다. 이 자리에서 북·러 군사 협력 강화 의지를 확인한 뒤 김정은은 러시아 전투기 생산 공장 시찰과 발레 공연 관람 등 일정을 마치고 18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김정은의 이번 방문에서 러시아는 앞으로 북한의 첨단 군사기술 개발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 등 군사물자를 지원하고 러·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이처럼 북·러 간 군사 협력 의지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지만 동시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김정은의 이동 수단입니다. 김정은은 이번 러시아 방문 때 자신의 전용기인 ‘참매 1호’ 대신 전용 열차를 이동 수단으로 선택했습니다. 전용기를 타면 평양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시간이면 가지만, 전용 열차를 이용할 경우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정은이 약 19시간을 돌아가야 하는 전용 열차에 몸을 실은 이유는 뭘까요?

이번 러시아행에 사용된 이동 수단은 울창한 숲을 떠오르게 하는 진녹색의 열차로 김정은을 비롯해 김일성과 김정일 등 과거 북한 지도자들의 ‘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해당 열차는 일반 열차와 달리 최고속도가 시속 5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평양에서 약 680㎞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데만 20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이는 매년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세계적 권위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선수가 모는 자전거보다도 느린 속도입니다. 열차가 이처럼 느린 이유 중 하나는 김정은의 신변 안전을 위해 특정칸이 두꺼운 장갑 등으로 방탄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방탄 장갑을 두른 만큼 일반 열차보다 무게가 최소 수천㎏ 더 무거워 이동 속도도 훨씬 느려지는 것입니다. 김정은 본인도 신변 위협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 암살 위험 등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 전용기 대신 전용 열차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차에는 김정은이 항상 애용하는 메르세데스-벤츠 방탄 리무진 차량을 실을 수 있는 특수칸이 마련돼 있습니다. 아울러 그가 상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도록 고급 가죽 소파 등이 놓인 회의실이 있습니다. 회의실과 통신실 등에는 김정은이 언제든지 지시를 내릴 수 있는 통신장비들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열차는 사고나 공격을 받아 물에 빠지는 등의 극한의 상황에 처해도 침수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김정은이 탑승한 전용 열차가 이동할 때는 항상 2대의 열차가 동행합니다. 안보선발열차가 제일 앞에, 김정은이 탄 지도자 전용 열차가 중간에, 경호원 탑승 및 물자 적재를 위한 수송 열차가 제일 뒤에 배치돼 함께 달립니다. 이들 열차가 사실상 김정은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요새’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자신의 전용 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출처=연합뉴스]
그러나 김정은이 전용기보다 열차를 선호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총 90량의 객차로 구성된 ‘초호화 열차’는 김정은이 평소 누리던 산해진미와 럭셔리 라이프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방탄 설계된 열차가 안정적인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만큼 김정은이 선호하는 테르미도르(로브스터를 활용한 요리 중 하나) 등 호화 요리를 즐기기 더 쉬울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 2001년 김정일 수행을 위해 열차에 탔던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전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자신의 저서에서 “(열차에서) 러시아·중국·한국·일본·프랑스 등 그 어떤 나라의 요리도 주문이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 해당 열차를 러시아 고위 관리 등 해외 귀빈을 맞이할 때 자주 사용했습니다. 당시 김정일과 귀빈들은 북한 여성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고가의 프랑스 와인을 마신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명한 주당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냑 ‘헤네시 파라디’를 매년 80만달러(약 11억 원)어치씩 사들였던 김정일은 전용 열차를 탈 때도 항상 이를 몇 병씩 갖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을 위해 전용 열차에 몸을 실은 건 약 4년 5개월 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 이전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약 60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하노이까지는 평양에서 전용기로 3~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번 5박 6일 일정 동안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이동한 거리는 직선 거리 기준 4200㎞가 넘습니다. 그는 러시아 방문 기간 중 잠도 열차 안에서만 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용 열차에 대한 김정은의 애정과 신뢰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1990년대 중반 닥친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에서 굶어 죽은 주민 수는 최소 40만에서 최대 3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코로나19 대규모 봉쇄 조치 여파로 현재 북한 주민들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농무부 ‘세계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121만t에 달했습니다. 유엔은 최근 북한 주민의 약 46%가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김정은을 실은 초호화 열차는 여전히 북·러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전용 열차의 수명이 끝날 때 비로소 북한 주민들의 일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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