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중국 언론이 막았지만…극좌와의 싸움 이어가는 ‘이 여자’ [나쁜 책]
언제 그랬었냐는 듯, 마스크 안 쓴 얼굴을 자주 봅니다. 두려움은 이렇듯 진정됐으니, 기억과 망각의 속도는 참 빠릅니다.
공포의 그 시작점에, 중국 우한이 있었습니다. 2020년 1월 23일 우한은 ‘도시 봉쇄’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우한에 ‘중국의 양심’이 있었습니다. 소설가 팡팡(方方)이었습니다.
팡팡 작가가 집필한 60편 글은 ‘우한일기’란 제목으로 전 세계 15개국에 출간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 이 책은 금서입니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후베이성 정부의 ‘거짓말’을 지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팡팡 글을 삭제했지만, 우한의 젊은 의사들, 시민들은 팡팡의 ‘지워진 일기’를 댓글로 복사하고 붙여 전파하는 ‘댓글 릴레이’로 그를 옹호했습니다.
이제 도시 우한 봉쇄는 해제됐습니다. 하지만 팡팡에 대한 중국의 ‘봉쇄’는 여전히 미해제 상태입니다.
코로나19가 발생 후 2020년 1월 우한에 ‘봉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도시를 드나드는 입·출구가 막혔고, 항공과 교통이 전면 통제됐습니다.
그 사이, 사람들은 고열과 인후통 등의 증상으로 쓰러졌습니다. 확진자 검사가 줄을 이었고, 곧 병상이 가득 찼습니다. 팡팡은 ‘봉쇄된 도시’ 우한 풍경을 웨이보와 위챗에 올렸습니다.
◎ “우한은 상상도 못했던 재난에 처해 있다. 상갓집의 개처럼 곳곳에서 버림받은 우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이 상처가 회복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24쪽·49쪽 발췌)
◎ “…가끔 어떤 음성이 들린다. 대체 어디에서 아이가 이렇게 목이 쉬도록 우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 날 버리지마.’ 이런 목소리가 들리면, 모든 엄마들은 온몸이 떨려오고 만다.” (246쪽, 봉쇄 38일차)
이 문장들이 과연 중국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가 경험했던 바로 그 ‘현실’은 아니었던가요?
팡팡 작가도 본인이 쓰는 글이, ‘우한 도시 봉쇄’라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중국을 넘어 인류사적 가치를 지닌 역병의 문학적 기록이 되리라곤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위기에는 선한 사람들의 지혜가 빛을 발했습니다. 시민들은 20명 단위로 식료품을 사다주는 ‘장보기 그룹’을 조직하는 등 아이디어를 모으며 근접해 다가오는 죽음 앞의 시간을 견뎠습니다.
우한 시내 마스크 가격이 폭증했습니다. 한 약국은 마스크 한 장당 35위안을 받았습니다. 1위안을 한화 180원으로 잡으면 ‘1장당 약 6000원’의 초고가였습니다. 25장 단위로 판매하는 한 묶음은 875위안(약 15만원)이었습니다.
◎ “우선 4장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뜻밖에도, 그들이 파는 마스크는 모두 낱개로 포장되어 있지 않고, 판매하는 사람이 손으로 집어 담아야 했다. 이런 위생상태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지 않았다.” (33쪽, 봉쇄 5일차)
그런데 작은 마트에 가보니, 같은 마스크를 10위안(약 1800원)에 팔고 있네요.
극한 위기의 시대, 평범한 얼굴의 악인은 여럿이었습니다. 기증 명목으로 물품을 모아 내다팔고, 확진자는 이웃집 대문에 일부러 침을 묻히는 모습도 목격됩니다. 심지어 목숨을 담보로 대문을 나선 자원봉사자에게 맥주캔을 ‘몇 짝씩’ 주문하는 등 비양심적 모습도 팡팡은 ‘우한일기’에 빠짐없이 담습니다.
당초 중국 후베이성 정부는 처음 우한에서 미상의 폐렴(훗날 코로나19로 명명) 환자가 다수 발생하자 서둘러 거짓으로 진정시켰습니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저 여덟 글자가 초래한 파장은, 예측과 상상을 초극했습니다.
저 한 마디 말로, 초기 우한 내 의료진이 집단 사망했고, 시민들까지 목숨을 내놨습니다. 팡팡은 그해 3월 개최 예정이었던 ‘전국인민대표회의’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부정적 소식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통제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정부 결정에 반(反)하는 팡팡의 주장은 ‘음모’로 간주되었습니다.
호흡기 분야 중국 권위자 왕광파는 코로나19에 대해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는 말을 한 후 자신이 감염됐습니다. 팡팡 작가는 그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반성하며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합니다. 왕광파는 우한 사람들을 재난으로 몰았던 장본인인데 그는 코로나19 감염을 ‘희생’으로 포장합니다. 팡팡은 이런 말을 납깁니다.
◎ “중국인은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참회하는 마음도 거의 없으며, 심지어 죄책감도 잘 느끼지 않는다. 어찌 이리도 당당하게 자화자찬할 수가 있는가? 정말 우한 사람들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나? 정말로 이것이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느껴야 할 교훈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59쪽, 봉쇄 10일차)
또 이런 글도 있습니다. 중국 관료주의의 경직성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글이 있을까요.
◎ “병원에 당 간부가 시찰을 나온 모양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데, 공무원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있으며 환자까지 서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서 ‘공산당이 없다면 새로운 중국도 없다’(중국 선전가요)를 불렀다. 대체 언제쯤에야 사람들이 동원되어 노래 부르고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121쪽, 봉쇄 21일차)
시간이 흘러, 우한 내 전염병 상황도 나아집니다.
그런데 ‘정책 결정 실패’와 ‘사실 은폐’로 사퇴하거나 지탄 받아야 할 당국과 병원 고위 관료들은 되려 ‘코로나19 극복의 영웅’으로 둔갑합니다. 아직 비닐팩 안의 시신이 식지도 않았는데 환호의 팡파르부터 울립니다. 팡팡은 정부의 사과를 요구합니다.
◎ “감사를 표해야 할 주체는 당연히 정부다. 정부는 우한에 있는 수천 명의 사망자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야 한다. 정부여, 당신들의 오만을 거둬들이고 겸허하게 당신들의 주인인 수백만 우한 인민의 은혜에 감사하라.” (296~297쪽, 봉쇄 45일차)
이후 팡팡 작가는 중국 극좌파에게 ‘매국노’로 몰립니다.
‘우한일기’는 봉쇄된 도시 우한에서 인간의 자유와 양심을 지키고, 합리와 이성을 촉구했던 가장 긴박한 문학적 기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우한일기’는 정작 그의 글을 옹호하고 지켰던 시민들이 거주하는 중국에선 출간되지 못했습니다. 중국 내 출판은 허가제이므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팡팡은 금서의 작가이며, 중국 내 어떤 문예지에서도 이름을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몇 주 전 팡팡 작가에게 보냈던 인터뷰 요청서의 답신입니다.
팡팡 작가는 살해 위협을 당하는 등 신변이 위태로워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금서기행, 나쁜 책’ 연재에 공감해주신 국내외 출판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결국 중국 모처에 체류 중이던 팡팡 작가가 A4용지 3장짜리 답장을 송부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검열과 금서에 관하여] “우한 봉쇄가 끝난 후에도 저에 대한 봉쇄는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출판사와 문학잡지에 어떤 작품도 출판할 수 없습니다. 제 소설은 3년 넘게 출판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공개적 사회활동은 커녕 출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국이 감히 작가를 표적 삼기 위해 이토록 외설적이고 저급하며 심지어 불법적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곤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 [‘우한일기’ 집필 의도] “‘우한일기’는 중국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게 아니라 전염병의 상황과 퇴치 과정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우한 시민들이 초조함, 공포, 두려움, 분노에서 강인함, 인내, 정부에 협력하려는 노력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수많은 동포의 죽음을 목격한 후의 복잡한 감정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답장에서, 팡팡 작가는 중국 내 극좌파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 [극좌파와의 대립에 대한 견해] “중국 내 극좌세력은 강력합니다. 중국에는 극좌파 사이트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개혁개방을 반대하고, 문화대혁명(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졌던 공산당 홍위병들의 사회 학살이자 말살 운동, 일명 문혁)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으며, 그들은 중국이 문혁 시대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 [관용의 정신 촉구] “오늘날 중국은 근본적으로 ‘극좌주의 물결’로 덮여 있습니다. 관용의 수준도 문혁 때와 마찬가지로 극히 낮은 수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용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의 견해에 맞지 않는 사람들, 즉 반체제 인사들도 용납해야 합니다.”
(분량 관계상 팡팡 편지는 별도 기사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소설가가 된 팡팡은 100권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공장 말단 잡부였던 그는 국가적 권위의 루쉰문학상까지 수상했고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 후베이성 작가협회장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팡팡 작가는 ‘현실의 감투’ 대신 ‘작가적 양심’을 택했습니다. 2017년 중국의 또 다른 유명 문학상 루야오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롼마이(연매·軟埋)’가 중국 정부로부터 판매금지 조치를 당한 것이 그런 예이지요.
‘롼마이’는 중국 공산당의 1950년대 공산당 토지개혁을 전면 부정했다는 맹비판을 받아 금서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 초기의 농지개혁으로 남편의 온 가족이 목숨을 끓는 걸 목격한 뒤 기억상실증에 걸린 노부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엔 출판되지 않은, 또 하나의 금서입니다.
‘우한일기’는 전염병 사태로 인한 죽음의 행렬 앞에서, ‘집단적 체제에 희생되어 이유도 모르고 사망했던 개인(들)의 참혹한 슬픔을 기억하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동시에 감염자들의 국적을 불문하고 ‘코로나 지옥도’ 속에서 인간의 선(善)은 이 질병을 이겨내는 강력한 치료제였으며, 사회란 그런 신뢰 위에서 쌓아 올려지는 것이란 교훈도 책은 전합니다.
‘우한일기’가 중국인, 그중에서도 우한 시민의 기억만이 아닌,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우한일기’의 한국 출간 당시, 한국의 김훈 작가는 추천사에 썼습니다. “희망은 선한 다수의 마음과 행동 속에 있었다.” 저는 김훈 선생님의 이 말 한 마디에서도, 우리가 아직은 살아가도 될 이유를 발견합니다. 끝내 우리가 선의(善意)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전염병은 머지 않은 어느 날, 또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을 ‘봉쇄’하려 들 겁니다.
아마 그때 팡팡 작가의 ‘우한일기’ 안에서, 우리들의 지친 얼굴을 마치 ‘거울처럼’ 발견하게 될 것만 같은, 확정적인 예감이 듭니다.
※다음주에는 넬리 아르캉의 《Putain》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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