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죄, 과거 대통령 때는 어땠나

정희완 기자 2023. 9. 23. 0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악의적 공격’ 아니면 표현의 자유로 보장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때도 ‘무죄’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1개 언론현업·시민단체가 지난 9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언론사 압수수색 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명예훼손죄는 개인의 명예, 즉 인격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를 법적으로 판단할 때는 ‘공인·공적 사안’과 ‘사인·사적 사안’을 구분한다. 공인·공적 사안과 관련한 내용은 ‘악의적 공격’이 아닌 이상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 공직자 등 공적 인물의 도덕성·청렴성, 업무처리의 적정성 같은 공적 관심사는 감시·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공직자를 상대로 한 비판적 의혹 제기를 두고 명예훼손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하는 기본 원칙이다. 2000년대 들어 처음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확고한 법리다. 최근 검찰이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거나, 고위공직자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을 압박해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위해 숨 쉴 공간 필요”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공개 토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숨 쉴 공간’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해 196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처음 나왔다. 미국 대법원은 이어 1964년 ‘현실적 악의’라는 법리를 제시했다. 공직자가 허위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그 공직자가 언론사의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기념비적인 판결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서는 헌법재판소가 1999년 6월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때 공적 인물·관심사는 사인 및 사적 사안과 차등해 심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도 2002년 1월 명시적으로 ‘공적 인물·공적 사안’이라는 법리를 도입했다. 공적 인물의 공적 사안에서는 명예훼손 인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2003년부터 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과 공적 업무처리의 정당성 등과 관련한 비판적인 내용은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니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이는 언론보도는 물론 개인의 표현 활동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언론보도 내용이 객관적 자료에 의해 최종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의혹을 가질 만한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더라도 바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업무처리가 적법하고 정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공적 사안에 포함된다. 다만 허위라는 점을 알면서 보도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합당한 이유가 없는데도 사실 확인에 소홀한 채 보도했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악의적 공격’에 해당할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특히 2018년 10월 정치인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사건에서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이런 비판에 대해선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도 잇따라 무죄

이번 윤석열 대통령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이름을 올린 것처럼 과거에도 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해 기소된 사례는 여럿 있다. 앞서 언급한 대법원의 법리 등을 바탕으로 대체로 무죄 선고가 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상황 보고를 듣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는 2016년 6월 기자회견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두고 “마약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고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박근혜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2021년 3월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마약과 보톡스’라는 표현을 악의적이고 공격적으로 볼 순 있으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발언의 경위, 취지, 맥락에 비춰 ‘이런 의혹이 나올 정도이기 때문에 당시 행적을 제대로 밝혀 달라’는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세간에 널리 퍼진 의혹을 거론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이사의 발언이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고 대법원은 봤다. 명예훼손죄는 기본적으로 진실이든 허위이든 사실을 적시해야 성립된다. 상대를 향한 평가나 의견 표명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공적 인물과 관련된 공적 관심사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는 형태의 표현행위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경우와 달리 암시에 의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언 내용이 실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의 표현도 사실을 적시한 것과 같지만, 공인의 공적 사안에서는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은 2014년 8월 인터넷판에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근혜씨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검찰은 박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1심 법원은 2015년 12월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은 공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대통령 박근혜’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아울러 공적 사안인 만큼 ‘사인 박근혜’를 비방할 목적 또한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2018년 6월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의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는 2008년 개인 블로그에 이명박씨를 비판하는 ‘쥐코 동영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이씨의 명예를 훼손한 점은 인정되지만,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이런 처분을 내린 것이다. 김씨는 이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재는 2013년 12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토록 했다. 헌재는 김씨가 다른 사람의 표현물을 단순 인용·소개한 것에 불과하고, 동영상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며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기소유예 처분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광훈 목사가 무죄를 받기도 했다. 전 목사는 2019년 10월 집회 등에서 문 전 대통령을 향해 “간첩”,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기소됐다. 1·2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2022년 3월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전 목사의 발언이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봤다. 2심은 “피해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사회적 영향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큰 만큼 비판적 발언이 용인돼야 한다”고 했다.

또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013년 1월 문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 등이라고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은 2021년 9월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마찬가지로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을 의견 표명으로 봤다. 다만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해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2022년 4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측근 등 제3자가 고발

대법원의 이런 일관된 판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등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사례는 끊이질 않는다. 공직자가 직접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수사가 시작되고 기소된 사례도 많다. 이는 명예훼손죄가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고죄는 피해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다. 친고죄가 아니면 제3자의 고발을 통해서도 수사·기소가 가능하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인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기소할 수 없다.

한국언론법학회장을 지낸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을 비범죄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주별로 명예훼손을 처벌하기도 하지만 사문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은 2010년 명예훼손죄를 아예 폐지했다”라며 “일본은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위공직자와 정부 기관 등은 언론에서 잘못된 보고를 하더라도 홈페이지나 보도자료,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박과 재반박을 할 수 있는 시스템과 능력이 충분히 있다”라며 “이런 방식으로 공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게 헌재 및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어 “공인의 공적 활동에 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는 부단한 시도는 자유민주주의의 운영 원리로 적절치 않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지난 9월 1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 ‘경찰 과잉수사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송이 기자

2010년 5월 한국을 방문한 유엔인권이사회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또 공직자와 정부 기관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