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잘못은 다 엄마 탓? 아빠는? 나는 나쁜 엄마’…‘좋은 엄마 학교’[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3. 9.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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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혼자 두고 외출한 ‘죄’로
엄마 재활학교에 가게된 프리다
지난해 미국 화제 소설, ‘올해의 책’ 선정

제서민 챈 지음 |정해영 옮김| 허블 |492쪽|1만8000원

“지독하게 일이 꼬여버린” 9월 어느 날이다. 프리다는 생후 18개월인 딸 해리엇을 데리고 있다는 경찰 연락을 받고는 경찰서로 갔다. “부인은 아이를 혼자 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고요”.

“자기 일을 자녀 안전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엄마”

아동보호국 소속 사회복지사가 조사 때 말했다. “대체 어느 엄마가 외출하고 싶거나 나가봐야 할 때 아기도 데려가야 한다는 걸 모르나요?” 경찰은 유죄를 입증하는 보고서에 “그녀가 자신의 일을 자녀의 안전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 해리 엇을 데려가서 납치할 수도 추행할 수도 죽일 수도 있었다.” 경찰은 해리엇의 기저귀가 샜고, 집이 불결하다고도 기록했다.

경찰이나 사회복지사의 지적에 프리다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실수였어요.”

명백한 잘못이기도 했다. 전 남편 거스트나 지금은 그의 여자친구이자 이혼 전 불륜 상대였던 수재나에에게 맡겨도 될 일이었다. 거스트도 이 점을 들어 타박했다. 프리다도 딸을 위험에 빠뜨린 걸 인정한다. 사정이 없던 건 아니다.

해고하려는 교수, 잠들지 않는 아이, 불면의 밤에 저지른 잘못

프리다는 와튼 스쿨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일한다. 주로 교수들 연구를 요약한다. 재택근무를 병행한다. 그날 해리엇을 엑서소서(보행기처럼 생겼으나 바퀴가 없어 고정된 육아용품)에 태운 뒤, 학교에 깜빡하고 두고 온, 요약에 필요한 서류철을 가지러 갔다. 커피를 산 뒤 사무실로 가 이메일을 쓰다 시간이 흐르는 걸 까먹었다. 수신인은 자기 말을 잘못 인용했다며 프리다를 해고하려 한 교수였다.

며칠 동안 해리엇은 통 잠들지 않았다. 프리다도 닷새 동안 불면에 시달렸다. 너무 피곤해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한 짓이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믿어주세요. 저는 더없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딸을 위험에 빠뜨린 걸 압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있었던 일, 제가 한 일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어떤 종류의 엄마인지 전부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프리다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니라 개를 키우셔야죠”

“프리다 류 씨. 마음 내킬 때마다 집을 나서고 싶다면, 아이가 아니라 개를 키우셔야죠.” 사회복지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참관 방문 때 해리엇이 복지사 팔뚝을 무는 일도 벌어진다. 해리엇을 계속 키울 수 있을지는 가정법원 판사의 결정에 달렸다. 법정에서 프리다가 분노 조절 장애와 자기애적 성격 장애가 있으며, 충동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19세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17년 이상 항우울제를 복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판사는 말했다. “우리는 프리다 류씨를 교정할 것입니다.” 주정부의 새 재활 프로그램에 가라는 거였다. 1년간 교육과 실습을 받으며 “자신이 진정한 모성애와 애착을 느낀다는 것을 증명하고, 모성을 갈고닦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 ‘좋은 엄마 학교’에서 모성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친권을 상실한다.

모성 시험을 통과 못 하면 친권 상실

비밀 프로그램이다. 미 전역에서 처음으로 세운 학교다. 이 엄마 학교와 아빠 학교가 있을 뿐이다. 이곳을 떠난 후에 이 학교에 관해 이야기하면 ‘양육태만 부모 등록부’에 추가된다. 이 등록부에 오르면 대출신청이나 구직활동 때 방임 등과 함께 얼굴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된다. 교육을 중도 포기해도 등록부에 기재된다.

“지독하게 일이 꼬여버린” 그날로부터 12주, 해리엇을 마지막으로 본 지 4주가 지난 시점에 파산한 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학교에 들어간다. 다른 엄마들도 방치, 유기, 영양결핍, 방임, 체벌, 신체적 학대로 이곳에 왔다. 아이에게 필수 예방접종을 맞히지 않은 엄마, 잠깐 조는 동안 아이가 아파트 바깥으로 나가게 한 엄마, 트위터에 딸에 대한 불평을 너무 많이 올린 엄마, 열일곱 살 아들 머리를 빗겨주는 등 “과잉보호하며 정서적 학대”를 한 엄마 등등이다.

저는 아이에게 위험한 존재입니다

교장이 첫 오리엔테이션 때 말했다. “이제 저를 따라 해보세요. 나는 나쁜 엄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엄마들이 반복해야 하는 구호다. 또 다른 구호는 “저는 나르시시스트이고, 제 아이에게 위험한 존재입니다”이다.

<좋은 엄마 학교>를 소재로 만든 퍼포먼스 영상이다. 교사들은 분홍색, 엄마들은 청색 옷을 입었다. 이들은 런던 거리를 오가며 소설 속 학교 구호인 “나는 나쁜 엄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를 외친다. 영국 출판사 코너스톤과 미디어회사 빌드 헐리우드의 잭 아츠가 협업해 만든 퍼포먼스 영상이다. 빌드 헐리우드 유튜브 화면 갈무리

교장은 철조망에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자녀와는 일주일에 한 번 10분간 영상 통화만 허용한다.

학교는 교육 때 엄마들에게 자녀의 비슷한 나이의 AI 로봇 인형을 맡긴다. 인형들은 진짜 눈물을 흘리고, 고통과 욕구도 표현한다. 아이 대역인 인형의 내장 부품은 심장박동수, 대화 내용 등 엄마들의 정보도 수집한다. 교사들은 이 정보와 인형이 촬영한 영상으로 엄마들을 평가할 것이다. 뇌를 스캔해 공감과 관심, 두려움과 분노, 죄책감과 불안 등도 확인한다.

‘돌봄과 양육 기본 원칙’부터 ‘불타는 건물 탈출 훈련’까지

수업은 ‘돌봄과 양육의 기본 원칙’ ‘놀이의 기본 원칙’ ‘집 안팎의 위험 요소’ ‘도덕의 세계’ ‘음식과 약에 대한 기본 원칙’ 등으로 구성됐다. 모형 주택에서 ‘집에 혼자 두지 않기’ 수업, 인형을 안고 전력 질주하여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모의 훈련도 마련됐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방지 수업도 포함됐다. 1년 수업 중 한 달간은 아빠들과 합동 교육을 받는다.

엄마들은 미안함을 전하는 포옹. 격려하는 포옹 등 다양한 애정 표현을 인형을 두고 연습한다. 교사들은 인형을 때리기도 한다. “신체적 고통을 달래주는 포옹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고통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다. 인형 아이들이 울부짖으면 엄마들이 달래야 했다. 평가 방식이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방지 교육 때 교사들은 인형들이 증오심을 갖도록 프로그래밍한다. 남자 인형은 여자 인형을, 백인 인형은 흑인 인형을 싫어하도록 하는 것이다.

금기도 있다. 인형에게 “누가 너를 만들었니?” “넌 얼마나 쉽게 고장 나니?”라고 물어선 안 된다. 포옹과 뽀뽀는 안전하다는 느낌과 안도감을 전달해야 한다. 인형 입술에 뽀뽀하면 안 된다. “간식을 주겠다”고 해서도 안 된다. 교사는 “우리는 보상에 기반한 전략을 쓰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교육은 냉혹하다. 자살자와 중도 포기자, 탈출자도 나온다. 프리다는 1년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심판대에 선다. 프리다는 해리엇을 다시 키울 수 있을까.

엄마에게만 강요하는 ‘육아의 유토피아·이데아’

소설은 ‘육아와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여성이 자율성과 선택권을 억압하고, ‘감시와 통제’ 속에 강제 수용 교육을 실시하는 국가와 주정부의 학교가 디스토피아를 이룬다. 다만, 수업 내용은 배워 나쁠 게 없거나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인종차별 방지나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한 수업도 한다. ‘아이들의 유토피아’ ‘육아의 모성의 이데아’를 구현할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게 문제다.

“엄마는 언제나 친절하다. 엄마는 언제나 베푸는 사람이다. 엄마는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다. 엄마는 아이와 잔인한 세상 사이의 완충재다.” ‘좋은 엄마 학교’ 교사들이 강조하는 이 말은 가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같은 잘못을 해도 책임과 비난은 엄마에게 쏟아진다. 이 학교는 이 현실의 관성과 법칙을 강요한다. ‘좋은 아빠 학교’의 수업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학교는 납치와 유괴에서 생존한 이들이 특히 엄마를 원망하는 내용의 동영상 교재를 틀어준다. 한 엄마는 말한다. “아버지와 의붓아버지와 삼촌들 잘못은 없는가? 할아버지는? 가족의 친구. 사촌. 형과 오빠. 왜 다 어머니의 잘못이어야 하나?”

중국계 미국인의 피부색은 “충분히 밝다”

저자 제서민 챈은 출산과 양육 이후 소설을 새로 썼다고 한다. 출산 전후 여성들이 겪는 여러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두루 반영했다.

챈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소설은 미국의 인종차별과 편견에 대한 비판을 여러 군데 녹였다. 인형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두고 엄마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 한 엄마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 있는 누군가(사악한 발명가)일 거예요”라고 말한다. 프리다는 이 학교에서 “꽉 막힌 중국년”이라는 욕도 듣는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프리다 변호사는 “판사가 아마 프리다를 유색인종으로 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백인 판사들은 백인 엄마들을 무죄 추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계 미국인은 프리다의 피부색도 “충분히 밝다”는 게 근거였다. 한 흑인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흑인으로 부모 노릇을 하기란. 흑인으로 걷기, 흑인으로 기다리기, 흑인으로 운전하기나 마찬가지라고”.

<좋은 엄마 학교> 저자 제서민 챈 (C)Beowulf Sheehan . 허블 제공

학교는 백인 인형이 흑인 인형을 괴롭히는 식으로 프로그래밍한 뒤 인종차별 수업을 진행한다. 이 수업은 다시 인종주의 문제를 환기한다.

“흑인 부모들은 모든 문제를 흑인 대 백인이라는 프레임에 결부시키는 것이 못마땅하다. 라틴계 부모들은 인형이 엉터리 스페인어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 게 못마땅하다. 백인 부모들은 인형이 인종주의자 역할을 하는 게 못마땅하다.”

‘째진 눈’으로 불린 AI 딸

프리다는 흑인과 백인, 라틴계 인형들이 에마뉘엘을 괴롭히는 게 못마땅했다. 에마뉘엘은 프리다의 인형이다. 학교에 오면 인형 이름을 먼저 짓는다. 프리다는 배우 에마뉘엘 리바가 출연한 영화 <아무르>를 떠올린 뒤 에마뉘엘로 정했다. 학교는 엄마들에게 같은 인종의 인형을 맡긴다.

에마뉘엘은 “인종적 고정관념에 순응”하도록 프로그램됐다. 다른 인형들과 놀 때는 “거의 굴종하는 수준으로 온순”해진다. 인형들은 에마뉘엘을 ‘째진 눈’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잡아당겼다. 에마뉘엘도 흑인 인형을 비하 표현으로 불렀다.

“인형들 간의 싸움은 그녀 자신의 유년 시절,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몰랐던 시절, 달처럼 동그란 얼굴의 똑똑한 중국인 소녀라는 것이 최악의 상황처럼 느껴졌던 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종종 거울을 보며 자신이 백인 소녀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프리다는 거의 매일 괴롭힘을 당했다. 부모는 그저 그녀를 방에 들어가 울게 할 뿐이었다.

인형 아이들에 대한 훈계도 평가 대상이다. 프리다는 “노예제가 남긴 폐해와 제도적 인종차별의 영향, 대량 투옥이 노예제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 흑인 변호사와 판사가 부족한 현실, 권력이 권력을 낳는 구조, 경범죄로 경찰에게 총을 맞거나 감방에 가지 않기 위해 성장 과정에서 흑인으로서 겪게 될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AI 딸을 사랑하게 된 엄마

소설의 큰 줄기 하나는 AI 인형과의 관계다.

유괴 예방 교육이 끝난 뒤 프리다가 에마뉘엘에게 말했다. “난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단다.”

교감과 감정 이입을 거치며 프리다는 에마뉘엘에게 결국 사랑을 느낀다. 해리엇에게만 건네던 “은하수만큼 사랑해”라는 말도 에마뉘엘에게 하게 된다. 이 학교에서 “에마뉘엘이 보여주는 하루하루의 애정”에 의지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A.I.>(2001)의 선전 문구 “소년(AI 로봇 데이비드)의 사랑은 진짜”를 떠올리게 한다. “미워” “싫어”만 반복하던 에마뉘엘은 다른 엄마의 자살에 상심한 프리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지 마, 엄마. 엄마 행복해.” 에마뉘엘은 장비실이 아니라 프리다와 살고 싶다고도 말한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화제작이었다. 2022년 뉴욕타임스와 NPR 등 미국 여러 매체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미국 아마존엔 21일 기준 독자 리뷰가 1만700여개가 달렸다. ‘육아’로 고통받은 ‘엄마’ 독자들이 호평했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TV시리즈로 만든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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