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尹 정면비판, 한편에선 차관 방한…'밀착'과 '줄다리기'의 방정식
한편으론 외교차관 방한 추진…북러회담 관련 설명 들을 듯
中 왕이 외교부장은 방러, 미중 외교사령탑은 몰타에서 회동
항저우에선 한덕수-시진핑 회담 추진, 한중일 고위급 회의까지
한반도 둘러싸고 각국 이해관계 다투는 외교전 격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이후로 우리와 러시아와의 관계가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의 행보를 비판하고 우리 정부가 주한대사를 초치하자 이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고, 한편에서는 외교차관의 방한이 추진되고 있다.
귀국한 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열어 정상회담 결과를 보고하고 후속조치 실행을 예고한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은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尹 유엔총회 연설에 러시아대사관 "깊은 유감, 도발적이고 대결적 성명" 정면비판
먼저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장호진 1차관도 19일 오후(한국시간) 안드레이 보르소비치 쿨릭 주한러시아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무기거래와 군사협력 문제 논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시아가 북한과의 군사협력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고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장 차관은 이 자리에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상임이사국이자 국제 비확산 체제 창설을 주도한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우리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분명한 대가가 따르도록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며, 그와 같은 행위는 한러관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외교부는 "쿨릭 대사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본국 정부에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했다"고만 언급했다. 하지만 주한러시아대사관은 이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한국 언론이 과장되게 유포하고 있는 추측들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을 한국 파트너에게 정확히 밝혔다"며 "러시아 연방은 좋은 이웃이자 오랜 파트너인 북한과의 호혜적 관계 발전과 관련된 의무를 포함하여 모든 국제 의무를 변함 없이 준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쿨릭 대사가 초치된 자리에서 우리 측의 입장 전달에 대해 일정 수준 반박을 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대사관은 "우리는 한반도는 물론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은 무력으로 북한을 억압하겠다는 목표로 한반도에서 한미 양국이 벌이고 있는 맹렬하고 불균등한 군사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한국 측에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책임을 우리에게 돌린 셈이 된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의 발언 직후인 21일에는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미국 정부가 발의하고 미국과 한국 언론이 뒤쫓은 러북 협력 폄훼 선전전에 가세한 것은 깊은 유감을 불러일으킨다"며 "우리는 이를 미국 주도의 서방 집단이 벌이는 공격적인 대러시아 하이브리드 전쟁의 맥락에서 전개되는 도발적이고 대결적인 성명으로 간주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우리의 우호적 이웃이자 오랜 파트너인 북한과 관련된 것을 포함해 맡은 바 국제 의무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러시아와의 견고한 호혜적 교류와 협력 경험을 가진 한국 지도부가 한국 정부의 추가적 반러 노선 추구로 러한 양자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에 기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내용이 '냉정하고 객관적'이지 않다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서 "러시아가 그와 같이 우려스러운 군사협력을 북한과 하지 않을 것이라면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설명하면 될 것"이라고 22일 밝혔다.
여기에 더해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외교부는 안드레이 루덴코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이 이도훈 주러시아대사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중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적 발언을 주목한다"며 "이는 러시아와 한국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루덴코 차관은 "불행하게도 한국은 추측에 기반해 러시아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양국 협력 발전에 비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고 실망을 야기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러 외교차관 방한 추진…中 왕이는 방러, 미중 외교사령탑도 회동
여기까지 읽으면 북러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러관계가 악화되어 가는 모양새이지만 한편에서는 또다른 장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가에 따르면 한러 양국은 루덴코 차관의 방한 일정을 조율 중인데, 이르면 이달 말로 추진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원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계획에 관한 세부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방한이 성사된다면 이번 북러정상회담의 내용 등이 우리 측에 보다 세부적으로 전달될 전망이다.
루덴코 차관은 한러관계와 북러관계를 담당하는 것은 물론 우리 외교부의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 해당하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도 겸하고 있다. 그의 방한은 북러정상회담 이전부터 꾸준히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바꿔 말하면 한러가 상호 비판에 나서면서도 이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중국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러시아는 일대일로를 높이 평가하고 적극 지지하며 이를 왜곡하고 먹칠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데다 다음 달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 포럼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그 직전인 16-17일(현지시간)에는 미 백악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몰타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고위급 회동을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두 나라는 몇 년째 전략경쟁 중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고위급 회동까지 한 것은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라는 오래된 금언을 떠올리게 한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한반도·북중러 외교…'밀착'과 '줄다리기'의 연속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과 경쟁하면서도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볼 수 있듯 양국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고, 한국과도 그러는 한편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만큼 한미일이 밀착해 중국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장호진 1차관이 지난 15일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4차 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중러 3각 연대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많이 다르다"며 "중국 입장에선 자신들의 북한에 대한 압도적 영향력을 러시아와 나눌 이유가 없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북한을 보는 시각이 중국과 달라서 북중러 3각 연대가 그 정도까지 진전돼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23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한덕수 국무총리와 시진핑 주석의 회담이 조율 중이고 이를 통해 한중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26일에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한 고위급 회의(SOM)도 예정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 관리' 또는 '디리스킹'이 계속해서 가능할지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의 돌발적인 행동을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일단 이를 편들고 있다. 게다가 북러간의 군사협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도 큰 변수다.
북한은 2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16차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성남 국제부장이 귀환 보고를 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와) 모든 분야에서 쌍무관계를 보다 활성화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한 건설적인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고 22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대내에는 정상외교의 지도력을 부각하고 러시아에 대해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협력이행 의지 메시지로 보인다"며 "결과를 두고 북한은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우리 측은 우려와 규탄, 제재 등 대립·대결이 격화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말마따나 우리 입장에서는 북러 군사협력 진행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조치를 검토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른바 '위험한 거래'를 둘러싸고 각자의 이해관계 속 총성 없는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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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redpoin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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