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를 조국만큼만 수사했다면?…김학의 부실수사 의문 세 가지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2013년 3월 13일 김행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서서 "법무부차관 김학의, 57세, 서울"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일주일만에 '별장 성접대 동영상' 파문으로 낙마했지만, 그의 네이버 프로필엔 여전히 '전직 차관'으로 돼 있다. 현재는 '김학의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한다.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이라 불리기도 한 김학의 사건은 검복이 방탄복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채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간혹 이런 부질 없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조국을 수사한 것처럼 김학의를 수사했더라면? 아니면, 만약 김학의가 검사가 아니고 기획재정부 차관이나 행정안전부 차관이었다면?
범죄 수사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특가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을 인지하고도 수사하지 않으면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 2013년 김학의 사건 1차 수사가 부실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경찰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검찰이 그해 11월 11일 김학의에 성범죄 혐의를 집중 부각시켜 무혐의 처분한 장면이다. 성접대는 단순 성범죄로 축소됐다.
당시 기록을 보면 검찰은 애초 김학의 성접대 의혹 사건을 성범죄 사건으로 접근했음을 알 수 있다. 단순 성범죄 사건이 되면 검찰의 재량이 강해진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 탄핵되면 곧바로 '혐의없음' 결론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나중에 재수사에서도 밝혀졌듯, 이 사건은 단순 성범죄 사건이 아니었다. 여성을 물건처럼 '제공'한 인물(윤중천)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건에 연루된 고위 공무원 경우 성접대는 곧바로 뇌물 혐의로 이어진다.
만약 검찰이 뇌물성 성접대로 접근했다면 사안은 간단치 않아진다. 성접대에 대한 대가를 입증하기 위해 계좌 추적은 물론이고, 김학의와 윤중천의 관계 전반을 들여다보는 등 광범위한 수사에 돌입해야 한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13년 11월 11일 불기소결정문을 통해 피의자 김학의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관련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뇌물 혐의가 없어서일까? 검찰의 주장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초기 경찰 수사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심지어 과거 공무원의 성접대를 뇌물로 보고 기소한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그런데 왜 김학의 사건은 상식적으로 흘러가지 못했을까.
드러나는 검찰의 '부실 수사' 정황들
지난 18일엔 김학의 출국 시도를 막았다는 이유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이광철 전 청와대 비서관의 2심 재판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피고인들을 상대로 검사는 "핵심은 권선징악이 아니라 적법절차"라고 했다. 이제 그 말을 다시 검찰에 돌려줄 수 있다. 2013년 검찰이 김학의를 '수사 절차'에 따라, '법'에 따라 제대로 수사를 진행했는가.
이날 공판에서는 2013년 김학의 사건 1차 수사 과정에 대한 합리적 의문에 근거가 되는 정황들이 제시됐다. 1심 재판에서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들은 2시간 넘는 브리핑을 통해 김학의 출국 금지 조치의 타당성을 역설했다. 김학의의 범죄 혐의들과 검찰의 부실수사 정황이 선명해 긴급하게 출국금지해야 할 사유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묘하게 2013년 검찰의 부실수사 정황과 연결된다. 당시 공판에서 나온 정황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으로 이 칼럼을 쓴다.
첫째, 검찰은 왜 동영상 속 인물을 김학의로 특정하지 않았나? 당시 검찰은 국과수 분석이 필요없을 정도의 선명한 '김학의 동영상 원본'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았다. 김학의가 성접대를 받은 역삼동 오피스텔 위치 등에 관한 자료들도 모두 넘겨받았다. 김학의 1심 판결문 중 공소사실에도 김학의가 접대받은 화대가 1인당 50~100만 원으로 특정돼 있다. 그러나 검찰은 5월에 '선명한 김학의 동영상'을 확보하고도 6월 19일 '범죄 소명 부족'으로 경찰의 김학의 체포 영장을 반려한다. 검찰의 눈에만 '선배'의 얼굴이 인식되지 않았다. 심지어 1차 수사팀의 한 검사는 2018년 진상조사단 면담 조사 당시 "누가봐도 동영상의 남성은 김학의라 감정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검찰은 '김학의'를 특정할 수 없었을까. 김학의를 특정하는 순간, 고위 공직자, 그것도 검사에 대한 성접대, 뇌물 수사를 반드시 해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건 검찰의 직무유기 정황이 된다.
둘째, 검찰은 왜 윤중천의 운전기사를 조사하지 않았을까? 앞선 수사에서 경찰은 윤중천의 운전기사를 집중 조사했다. 윤중천의 운전기사 박모 씨는 2013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제가 직접 김학의라는 분을 별장에서 서울 자택으로 모시고 갈 때도 있었고 서울에서 별장으로 모시고 오는 일도 두어번 있었다. 그때마다 서울에서 여자가 내려와 같이 지내고 여자는 새벽에 가곤 했다. 윤(중천) 회장이 한때는 김학의 분이 검찰총장까지 할 분이라고 자랑도 하곤 했다"고 진술한다. 특히 박 씨는 김학의의 성접대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윤(중천) 회장님이 검찰에 형사사건이 걸려 있었다. 그 시점에 윤회장님이 김학의 검사와 자주 통화하면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들었다"는 등 대가관계에 대한 정황도 진술했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학의의 성접대 장소인 서울 모처를 특정했고, 경찰은 해당 건물의 사진까지 첨부해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윤중천의 운전기사 박 씨를 조사하지 않았다. '성접대 정황'은 물론 '대가성 정황'까지 진술했음에도 왜 검찰은 운전기사를 주목하지 않았을가?
일반적으로 뇌물 수사에서 운전기사의 증언과 일정비서의 수첩 등은 핵심 수사 자료로 꼽힌다. 운전기사를 집중 수사해 고위 공직자의 뇌물죄를 입증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건 제대로 된 '수사 매뉴얼'인가. 아니면 '성범죄'에 초점을 맞추고자 의도적으로 '성접대'를 외면한 것인가? 특히 당시 검사들이 김학의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핵심 증인이 될 수 있는 운전기사 박모 씨를 조사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다.
검찰은 엉뚱하게도 박 씨 다음으로 운전기사를 한 최모 씨는 조사를 했다. 최 씨는 피해 여성의 삼촌이다. 피고인들은 "(성폭행 주장을 한) 피해 여성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한"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의혹을 제기했다.
셋째, 검찰의 '성범죄 피해자' 조사는 적법하게 진행되었나? 검찰은 김학의와 윤중천이 여성들을 성폭행한 부분에서 무혐의가 명백하고 공소시효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당시 검찰 수사는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전담조사제 등 다수 규정을 위반한 위법한 수사라는 주장이 나왔다. 먼저 성폭력범죄처벌법은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전담 검사 지정 및 조사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스스로 단순 '성범죄 사건'으로 봤음에도 김학의 사건을 강력부에 배당한다. 성범죄 사건이라면서 왜 강력부에 배당했을까.
성폭력범죄처벌법에는 전담조사제 외에도 신뢰 관계자 동석, 배려 의무 등 조항이 있다. 그러나 2013년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조항들이 상당부분 무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들이 제대로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피해자의 주장을 탄핵하기 위해 고심한 것이 아닐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적극적 수사가 어려웠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지만, 2019년 3차 수사에서는 특가법 위반(뇌물)을 김학의에 적용한 바 있다. 이 자체로 2013년 수사가 부실했다는 걸 방증한다.
공수처, 김학의 사건만큼 '안성맞춤' 사건도 없다
10년 전 검사들의 '김학의 부실수사'는 이 모든 '김학의 사건들'의 출발점이자, 새로운 종착점이다.
마침 공수처가 움직이고 있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무혐의 처분해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당한 검사 3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는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김 전 차관 사건의 과거 수사 기록을 확보했다고 한다. 공수처가 수사하는 혐의는 1차 수사팀 검사들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 15조(특수직무유기) 위반 여부다. 이법에는 "범죄 수사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을 인지하고 그 직무를 유기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그리고 같은 법 2조는 뇌물액수 3000만 원 이상을 가중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윤중천이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난 알선수재도 같은 법 3조에 규정되어 있다.
공소시효는 10년이다. '특수직무유기'가 발생한 것을 김학의 사건 1차 수사 무혐의 처리 시점(2013년 11월 11일)에서 공소시효 10년을 적용하면, 올해 2023년 11월 11일이 공소시효 만료일이다. 공수처가 이 사건을 올해 11월 11일까지 수사해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공수처 김진욱 처장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그간 공수처는 여러 수사에 손을 댔지만 이름값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기회는 있다. '검찰 고위직'이 수사망을 어떻게 피해갔는지, 그 과정에서 '검찰 카르텔'의 실체가 없었는지, 이걸 밝혀내는 것만큼 공수처 설립 취지에 맞는 사건은 없다. '카르텔 해체'는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국정 과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독립 기관' 공수처에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본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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