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패밀리 SUV의 정석 혼다 파일럿… 연비는 아쉬워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본래 험로(오프로드) 주행에 적합한 레저용 차로 각광 받았지만, 최근에는 가족용 차로 많이 찾고 있다. 여러 명을 태우고, 큰 짐을 실을 수 있는 덕분이다.
혼다의 4세대 신형 파일럿은 지난해 주력 시장인 북미에서 먼저 출시된 후 올해 우리나라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북미에서는 현대차 팰리세이드, 기아 텔루라이드, 도요타 하이랜더 등과 경쟁한다. 공교롭게 도요타의 하이랜더도 최근 출시돼 국내에서 경쟁이 예상된다.
구형 파일럿의 외관은 곡선이 강조된 날렵한 모습이었으나 신형은 직선이 도드라진다. 깔끔한 인상이 대형 SUV 특유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과거 1~2세대 제품 디자인과 유사하게 3열 부분의 유리창이 앞쪽 유리창과 분리된 점도 특징이다.
차체는 길이 5090㎜, 너비 1995㎜, 높이 1805㎜, 휠베이스(앞뒤 바퀴 중심축 사이 거리) 2890㎜다. 구형보다 135㎜ 길어지고, 30㎜ 높아졌다. 휠베이스도 70㎜ 늘었다. 차체가 커지면서 무릎 공간이 넉넉하고 머리 위도 답답하지 않다.
파일럿은 총 3열로 구성돼 있어 7명이 탈 수 있다. 보통 마지막 줄 좌석은 공간이 좁아 성인이 타기 어렵지만, 신형 파일럿은 3열에 어른이 타도 앞 2열 좌석에 무릎이 닿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있다. 다만 좌석 위치가 미묘하게 높아 무릎이 위로 들리기 때문에 완전히 편하지는 않다.
2열 좌석은 독립 시트 구성이지만, 좌석 사이에 보조 좌석을 넣어 3인승으로 탈 수 있다. 보조 좌석을 설치할 경우 탑승 가능 인원이 8명으로 늘어난다. 보조 좌석은 트렁크 밑바닥에 수납돼 있다.
실내는 동급의 국산차나 유럽차에 비해 심심하다는 느낌이다. 계기판이나 디스플레이 구성이 바뀌었어도 최첨단의 느낌은 떨어지는 편이다. 주력 시장이 북미인 일본차가 가지는 단점 중 하나다. 북미 소비자는 미적인 구성보다는 실용성을 더 따지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 탓에 화려함이 떨어진다.
트렁크는 기본 527ℓ(리터)다. 구형 467ℓ와 비교해 넓어졌다. 3열 좌석을 접으면 1373ℓ로 늘어난다. 2열 좌석까지 접을 경우 최대 2464ℓ의 적재 공간이 생긴다.
동력계는 새롭게 바뀌었다. 가변실린더제어(VCM) 기능을 넣은 3.5ℓ 가솔린 직분사 엔진에 전자식 버튼 타임의 10단 자동변속기를 물린다. 엔진과 변속기는 최고 289마력, 최대 36.2㎏f.m의 힘을 낸다. 토크는 이전과 같으나 출력은 5마력 높아졌다. VCM은 엔진의 힘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때 엔진 실린더 작동을 줄여 불필요한 연료 소모를 막는 기술이다. 파일럿의 연료효율은 복합 기준 ℓ당 8.4㎞다.
호쾌한 주행감각이 인상적이다. 자연흡기 특유의 매끄러운 가속이 이뤄진다. 큰 몸을 움직이는 데도 허덕임이 없다. 안정적으로 차를 밀어내는 모습이다.
네바퀴 굴림 시스템은 도로에서 차가 안정적으로 달리도록 돕는다. 평소에는 앞바퀴 굴림차처럼 움직이다가 필요할 때 뒤축으로 힘을 보낸다. 정통 오프로더(험로를 달리는 차)가 아니어서 이정도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반과 경제(이콘), 눈길, 진흙길 등의 주행모드를 지원한다.
신형 파일럿은 성능을 강조한 차가 아니라 운전은 전반적으로 편안하다. 차체가 단단해 굴곡이 있는 도로에서도 거동은 안정적이다. 뼈대가 튼튼하다는 건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뜻과 같다. 실내 소음은 잘 차단됐다. 승차감도 여유롭다.
안전 패키지 혼다 센싱은 완벽하게 정교하진 않다. 능동형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이탈 방지 기능을 켜고 곡선 주로를 달리면 이따금 차선 밖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있다. 그래도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이런 기능은 피로를 낮춰준다.
파일럿의 가격은 6940만원으로 이전보다 상당히 올랐다. 커진 차체와 새로운 동력계, 여러 편의장치가 적용된 결과다. 경쟁차인 도요타 하이랜더보다는 1000만원쯤 저렴하다. 다만 하이랜더는 하이브리드차로 ℓ당 10㎞ 이상을 달릴 수 있어 파일럿과의 직접 비교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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