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동생 죽게 한 악플러를 왜 벌할 수 없는가
인정할 점은 인정하고 시작하자. 홍콩 추리소설가 찬호께이의 장편소설 ‘망내인(網內人)’(한스미디어)은 한 경찰관의 일생과 홍콩이라는 시공간을 엮은 작가의 대표작 ‘13.67′에 못 미친다. ‘망내인’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13.67′이 워낙 뛰어나서다. ‘13.67′에 감명받아 ‘망내인’을 집어든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될 텐데, 전자에 비해 후자는 이야기가 다소 헐겁고 캐릭터들이 피상적이다. 은둔 중인 천재 해결사 해커라는 설정이 너무 편리하고, 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13.67′을 잊고 ‘망내인’만 본다면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 손색이 없고 주제 의식도 단단하다. 사건과 인물들을 소개하는 초반만 넘어가면 이 712쪽짜리 책에서 손을 놓기 어렵다. 한국 제작사가 판권을 사들여 OTT 드라마로 만드는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연출은 김지운 감독이 맡는다고. 바로 위 문단에서 실감에 대한 쓴소리를 적었지만 찬호께이는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했고 IT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소설 속 묘사가 허황되게 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말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인터넷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이다. 악플에 시달리던 한 소녀가 자살한다. 언니는 그 죽음을 납득할 수가 없다. 악플의 근원을 찾다 보니 동생 주변의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계획한 공작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경찰은 ‘범인’을 찾아도 처벌하기 어려울 테니 포기하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할 이야기 아닌가. 소설에는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있다. ‘망내인’은 현대인이 인터넷에 사로잡히는 두 가지 방식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경제활동, 사회활동을 하면서 거대하고 정교한 감시 체제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우리의 정신이 인터넷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거기서 오가는 말들에 휘둘리며 심지어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훨씬 더 무책임하게 말한다. 그 말들을 조작하기도 쉽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시대의 사회파 추리소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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