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아이오닉 5 N, 폭발하는 힘·세밀한 주행모드 가진 '똑똑한 괴물'
철저한 모터·배터리 열관리로 서킷 대응…18분 80% 급속충전 탑재
전후륜 구동 배분·N e-시프트 등 내연기관차 기능 완벽 구현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최대출력 650마력, 최고속도 시속 260㎞, 제로백 3.5초.'
현대자동차가 '무주공산'인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 첫발을 내딛으며 선보인 '아이오닉 5 N'의 성능이다. 현대차는 같은 전기차 플랫폼을 활용한 기아의 EV6 GT보다도 훨씬 강한 스펙과 성능을 구현했다고 주장했다. 더욱 뛰어난 열관리 시스템을 탑재해 서킷에서의 극한의 주행을 견딜수 있도록 설계했고, 변속기가 없음에도 내연기관차처럼 변속할 수 있는 기능도 장착해 운전에 재미를 더했다. 런치컨트롤, 드리프트, 부스트 기능과 같이 초보자가 활용하기 어려운 기술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어 누구나 쉽게 모터스포츠에 적응하도록 만든 배려심도 돋보였다.
가을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지난 20일. 태안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아이오닉 5 N의 성능을 직접 체험해봤다.
외관은 기존 아이오닉 5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N 브랜드 정체성을 곳곳에 녹여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범퍼가 카본 소재로 이뤄진 것처럼 검게 처리됐으며, 하단 스커드 부분은 붉은색으로 처리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후방에 리어 스포일러가 있고, N 전용 역삼각형 LED 보조주행등을 탑재해 날렵한 느낌을 주었다.
실내는 스포츠 버켓시트가 적용됐다. 스웨이드 재질과 천연 가죽이 조화를 이루어 몸을 단단히 잡아주면서도 고급스런 느낌을 줬다. 특히, 스티어링 휠(운전대)이 스웨이드 재질을 사용했는데, 일반 가죽이나 플라스틱과 달리 미끌림이 적어 서킷 환경에서 오히려 도움이 됐다.
현대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드넓은 계기판과 센터콘솔도 시의성이 좋았고, 물리 버튼과 터치 버튼이 조화를 이루어 조작이 손쉽고 빨랐다. 비상등 버튼이 정중앙 부분에 위치해 누르기 편리했다. 아이오닉 5 N의 경우 고성능 주행을 지속한다는 점을 고려해 버튼이 매우 효율적으로 배치됐다.
휠은 21인치 단조 휠이 적용됐고 타이어는 피렐리 P-제로 썸머 타이어가 탑재됐는데, 본격 시승이 시작된 뒤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환경에서도 4륜 구동과 맞물려 극한의 접지력을 선사해줬다.
시승 첫 코스는 직선 가속 주행이었다. 처음은 'N 그린 부스트' 모드 사용을 체험했다. 출발 후 일정 구간에서 스티어링 휠 우측에 위치한 빨간 버튼을 누르자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몸이 뒤로 훅 쏠리며 차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NGB 가속을 누르자마자 속도는 130㎞에서 1초에 시속 10㎞씩 늘어났다. 계기판 좌측 하단에는 NGB 제한시간인 10초 카운트가 들어가 정말 만화의 한 장면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내연기관의 변속 충격을 그대로 구현한 'N e-시프트' 기능도 사용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패들 시프트를 활용해 진짜 수동차량처럼 변속하는 느낌을 구현했다. 실제 변속기가 없어 가상의 운전모드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엔진회전수(rpm)가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고단을 넣으면 rpm이 훅 떨어지면서 차량 가속이 오히려 더뎌지는데, 일부러 변속 타이밍을 빨리 가져가자 이런 현상까지도 완벽히 구현해냈다. 고단 기어에서 저단으로 내릴때 rpm이 치솟으며 차량에 엔진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도 내연기관차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렇다보니 기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조작하는 즐거움에 빠져 한동안 계속 기어 업다운을 반복하며 코너를 돌기 바빴다. 마치 차와 내가 대화를 나눈다는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N 액티브 사운드 플러스와 연계되니 정말 내연기관차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다. 갑작스런 기어 변속에 rpm이 치솟으며 '왕~'하고 크게 울리는 엔진소리, 배기구 쪽에서 들려오는 팝콘 소리까지도 이질감 없이 들려왔다. 매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간신히 전기차라는 것을 다시 인식했다.
직선주로에선 N 런치컨트롤 기능도 사용할 수 있었다. 출발 전 rpm을 올려 가속성능을 확보하면서도 슬립(타이어 미끌림) 없이 치고 나가는 기술인데, 내연기관차로 하려면 숙달하기가 꽤 어렵다. 아이오닉 5 N은 버튼 몇 가지를 누른 뒤, 왼발로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고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런치컨트롤 준비가 끝난다. 내연기관차로 수없이 실패했던 기자 본인도 단 한번에 런치컨트롤을 성공했다. 비가 세차게 오면서 노면에 물이 흥건히 젖었는데도 슬립 없이 강하게 차가 튀어 나갔다.
짐카나 주행에서는 코너에서 아이오닉 5 N의 주행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N페달 기능이 인상깊었다. 아이오닉 5 N은 각 바퀴별 모터가 장착돼 있다보니 코너링 성능도 내연기관차와 다른 방법으로 접지력과 선회력을 높였다. N페달은 코너를 돌 때, 안쪽 바퀴는 강하게 회생제동을 걸고 바깥쪽 바퀴는 다소 약하게 걸어 더 좁은 회전 반경으로 코너를 돌 수 있도록 해준다. 좀 더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속도도 충분히 감속되고, 회생제동이 걸리며 충전까지 되는 '일석삼조'의 기능이다.
N토크 디스트리뷰션 기능은 전륜과 후륜의 구동력 분배를 운전자가 직접 설정하는 모드다. 전륜 70%, 후륜 30% 혹은 후륜 100% 등 임의로 배분을 바꿀수 있다. 적절히 활용한다면 코너 탈출시 후륜 배분을 늘려 오버스티어 성향을 더 많이 낼 수도 있었다.
비가 점점 많이 와서 서킷 주행을 직접 체험하진 못하고 전문 인스트럭터가 운전하는 차량 옆에 탑승했다. 와이퍼가 쉴새없이 앞유리를 닦아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차량은 시속 180㎞로 직선주로를 질주하다가 헤어핀 코너 직전에 90㎞로 감속했다. 수막현상으로 차량 하부에서 '드드득' 소리가 올라왔고, 차가 살짝 떴다가 내려서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차가 불안하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다. 운전자의 의도대로 스티어링휠이 제어됐고, 2.2톤이라는 무게가 무색할만큼 민첩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인스트럭터는 기아 EV6 GT와의 차별점에 대해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이 훨씬 좋다고 귀띔해줬다. 아이오닉 5 N은 'N 배터리 프리컨디셔닝' 시스템이 있는데, 주행 상황에 맞춰 최적의 배터리 온도를 사전에 설정 해준다. 드래그 모드는 단시간 최대 출력을 위해 배터리 온도를 30~40도로 미리 맞추고, 트랙 모드에서는 지속 고성능 주행을 대비해 배터리 온도를 20~30도 수준으로 설정한다.
실제 이날 시승 차량은 행사가 끝날때 모터 온도 50도, 배터리 온도 33도 수준을 유지했는데, 급가속과 급정거 등 극한의 환경으로 주행한 것 치고는 온도가 매우 낮았다. 다만, 이날 비가 많이 오고 기온도 다소 낮았다는 점에서 더운 날시에서는 온도가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드리프트 코스에서는 'N 드리프트 옵티마이저' 기능이 빛났다. 이 기능은 후륜 모터에 회생제동을 적절히 개입시켜, 오버스티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기존 내연기관차는 가속페달을 다소 깊게 밟아 고rpm을 유지해야 하는데, 아이오닉 5 N은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고 절반 수준만 유지해도 안정성 있게 드리프트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드리프트 시에 미끄러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조향하는 '카운터 스티어'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데, 이것도 'MDPS 스티어링휠'이 적절히 개입해 더 빠르게 차체를 안정화하도록 도와준다. 이 드리프트 옵티마이저 기능 덕분에 번번히 드리프트에 실패했던 기자 본인도 일명 '원돌이'를 세 바퀴까지 성공했다.
단, N토크 디스트리뷰션 기능과 N 드리프트 옵티마이저 기능은 중복 사용이 되지 않는다. 만일 내연기관차처럼 드리프트를 하려면 N토크 디스트리뷰션을 활용해 후륜 100% 구동으로 변경하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순수히 본인 실력으로만 드리프트를 해야 한다. 여기에 최대 출력의 절반(320마력)만 사용할 수 있어 출력 면에서 다소 아쉬워진다.
일반 도로에서는 어떨까. 공도로 나간 아이오닉 5 N은 기존 아이오닉 5 전기차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차선유지보조, 전방추돌경고와 같은 기능이 제대로 구현됐고,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도 문제 없이 동작했다. 스포츠 성향이 강한데도 노면 소음이 크게 올라오지 않아 놀랐다. 차체가 다소 커 주차에 부담이 됐는데 360도 어라운드뷰를 활용해 적절히 주차할 수 있었다.
7600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될 수 있지만, 성능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슷한 성능의 내연기관차는 슈퍼카인데 1억 원 이상을 호가한다. 게다가 슈퍼카는 주행성능에 올인한 나머지 데일리카 용도로는 매우 불편한데, 아이오닉 5 N은 데일리카로도 서킷에서의 펀카로도 완벽한 모습을 선사한다. 사실상 7600만 원으로 차를 두 대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전동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만큼 차박, 캠핑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실외 V2L을 지원하는 점도 좋았다. 멀티 급속 충전 시스템을 탑재해 800V급 충전기로 18분 만에 80%까지 급속충전을 할 수 있다.
아이오닉 5 N 차 자체에 대한 단점이 보이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아직 늘지 않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완충시 주행가능거리가 351㎞로 다소 짧다는 것이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성능이 좋다는 점에서, 서킷 주행에 맛들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누군가에겐 단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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