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생, 축약하자면 “잘못하였습니다”[토요일의 문장]

김종목 기자 2023. 9. 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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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아침에 흰 백지가 내 앞에 펼쳐집니다. 당황일까요? 감동일까요? 나는 흰 백지 앞에서, 아무것도 없는 팔십 년의 진 계곡까지 두루 새겨진 그 백지 앞에서 아! 짧은 미혹의 소리를 냅니다. 많이 살았을까요? 아직은 아쉬움일까요? 나는 공손히 그 백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팽팽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과감하게 평생을 갈고 간 만년필로 그 침묵을 찢습니다. 팔십 년을 한마디로 축소하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잘못하였습니다.”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문학사상) 중

시인 신달자는 “팔순을 맞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문학과 인생을 총결산한 묵상집”을 “잘못하였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참담한 후회의 고백이며 반성의 축대”이자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는 축약된 지도”의 한마디다. “팔십 년을 요약”하는 말이다. 그는 이 말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섞였다고 한다. 신달자는 용서를 빌며 책을 마무리한다. “내가 알고 있는…혹은 내가 모르는 부분일지라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순간이라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나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마음 상한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대성공을 이룬 시인의 고백에서 반성도 성찰도 없이 괴물처럼 지내는 추악한 원로들을 떠올린다. 내 지난 삶도 되돌아본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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