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의 100년전 예언···경제석학 18人이 답하다

서지혜 기자 2023. 9. 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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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케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외 15명 지음, 포레스트북스 펴냄
2030년 생활수준 8배 향상 등
케인스가 예견한 장밋빛 미래에
스티글리츠 등 경제석학들 답변
소득증가로 여유시간은 늘었지만
여가보다 되레 교육·노동에 투자
"경제성장=개인 행복 아냐" 지적
[서울경제]

케인스가 지난 1931년에 출간한 ‘설득의 에세이’에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내용의 글이 담겨있다. 이 부분에서 케인스는 성장, 불평등, 부, 노동, 여가, 문화, 소비주의, 기업가 정신 등에 대해 수많은 흥미로운 예측을 내놓는다. 그는 ‘손자 손녀’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중차대한 전쟁이 없을 것으로 예견한다. 2030년이 되면 노동생산성은 4배, 생활수준은 8배 향상되고, 후세대는 마침내 저축이나 재산축적 등의 경제 활동에서 해방돼 일하지 않고 예술, 여가, 시에만 전념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경제적 축복에 이르는 속도는 인구 통제 능력, 전쟁을 피하려는 결의, 과학에 대한 신뢰, 생산과 소비의 차이로 결정되는 축적 비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케인스의 이 같은 장밋빛 예측은 과연 들어 맞았을까. 이 책은 케인스가 예측한 미래를 21세기 경제학자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4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경제 석학이 대거 필진으로 참여했다.

우선 파바리지오 질리보티에 따르면 ‘생활수준이 8배까지 향상될 것’이란 케인스의 주장은 절반만 맞았다.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있고 경제 성장의 동력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 발전의 예측이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질리보티는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혁신은 숙련 노동자가 필요한 신기술을 진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가난한 나라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기술을 활용할 수 없거나 부유한 나라보다 훨씬 뒤늦게 채택하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여전히 경제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고 설명한다.

‘노동해방’ 관련 주장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물론 1930년대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자유로운 여가 시간을 내줬는지 확인하려면 인간이 활용 가능한 시간에서 노동시간 뿐 아니라 가사 활동에 쓰는 시간도 제외해야 한다. 하지만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검토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통계자료는 케인스 생전에도 사후에도 없다. 가사 노동의 힘을 아껴주는 기술 발전이 이뤄졌지만 남은 시간은 여가에 투입되지 않았다.

가정용 기술의 혁신 덕분에 여성 노동력이 약 28% 포인트 늘어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여가보다 오히려 교육 시간이 늘었다. 미국인 한 명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1970년 600시간 이었지만 2000년 900시간으로 늘었다. 줄어든 노동 시간은 학습 시간으로 대체됐다. 질리보티는 “성장이 좋은 소식만 물고 오지는 않는다”며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자정 장치나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충분한 자본을 갖고도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여러 석학이 답을 내놓는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케인스가 예측한 자본주의의 미래에 ‘욕구’가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고 본다. 사람들이 여가를 조금만 누리려고 하는 이유, 최선을 다해 오래 일하는 이유는 모두 욕구와 관련 있다.

악셀 레이욘후부드 UCLA 명예교수는 “케인스는 여가 비용이 상승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지 ‘소비’를 경제적 노력을 추구하는 동기로 여겼지만 현대인은 그렇게 단순하게 사고하지 않는다.

이 책의 많은 석학들은 케인즈가 위대한 경제학자였음을 인정하지만 그가 여러가지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케인스 사후 세상에는 새로운 소비재가 탄생했고, 시간은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는 침체기를 맞기도 하며, 사회가 발전할수록 비물질적 재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도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실패한 예지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과 생각은 여전히 우리 세대의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그의 예측은 경제적 성장이 개인의 행복을 담보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통찰력을 준다. 2만2000원.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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