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무슨 일이 있었나? ‘협잡’인가 ‘중재’인가?

이지윤 2023. 9. 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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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충격에 빠진 민주당 의원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2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되면서, 민주당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차 체포동의안 표결 때보다 가결 표가 10여 표가 더 나오며 예상 밖의 충격적 결과라는 반응이 잇따랐습니다. 지도부가 그동안 공개적으로 수차례 부결 투표를 요청했지만, 당내 '이재명 비토' 정서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단 평가가 나옵니다.

■ 표결 전날 의원들을 만난 박광온 원내대표…중재안 제시

그런데 가결 투표 이후 친명계 의원들 사이에선 '협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누군가가 당권을 놓고 이 대표와 거래를 하다 잘 안 되니 가결로 돌아섰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시간은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인 20일로 돌아갑니다.

이날 박광온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모임을 대표하는 중진들을 잇따라 만났습니다.

가결 표를 던질 것이 확실한 강성 비명계 의원들을 제외한, 비교적 중립지대에 있는 의원들과 친문계 의원들을 만난 건데, 이 자리에 참석한 의원들은 박 원내대표에게 이재명 대표와의 일종의 '중재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가결 시 당에 대혼란이 불어닥칠 것을 우려해 일단 부결을 시키되, 이 대표로부터 당내 다양한 의원들의 입장을 반영한 통합적 당 운영을 하겠단 약속을 받아내란 겁니다.

한 의원은 "당내 의원 모임의 장들이 몇 번 모였고 중재안을 내기 위해 여기저기 노력했다"며 "대표의 거취까지는 이야기할 순 없더라도, (대표가) 좀 내려놓겠다고는 해야 반대파들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밝혔습니다.

박 원내대표와의 만남 자리에선 "이재명 대표가 어려운 상황이니, 박광온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문제를 돌파해나가도록 이 대표가 박 원내대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 당일 오전 이재명 대표를 만난 박광온 원내대표


■ "표결 직전 이재명의 '통합' 메시지, 표결에 영향 없었다"

여러 중진들의 입장을 수렴한 박 원내대표는 표결 당일인 21일 아침, 이 대표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국회로 다시 돌아온 박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 대표가 통합적 당 운영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밝혔다"고 면담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통합을 위한 기구를 만드는 것도 고려하겠다"는 이 대표의 말도 전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중재안'을 두고 당의 투 톱이 조율을 했고 이 대표가 '중재안'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당내 중진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한 중재안과 이에 응답한 이 대표의 '통합' 메시지가 실제 표결 결과와는 따로 논겁니다.

한 비명계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추상적으로라도 대표의 거취를 말했어야 하는데, 그건 빼버리고 '통합'만 얘기하는 바람에 중재안이 결국 안 먹힌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다선 중진 의원도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얘기를 하긴 했는데, 힘아리가 없었다"며 "비명계에선 이 대표가 확실하게 얘기를 안 하고 어물어물했다고 받아들인 것"이라며 박 원내대표의 책임을 지적했습니다.

■ "부결 전제로 한 지분 요구, '협잡'"

투표를 앞두고 마련된 중재안과 이 대표와의 협상.

결국은 실패로 돌아간 이 과정에 대해 친명계는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어젯밤 의원총회에선 분노한 친명계 의원들의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고, 이 대표와 부결을 놓고 협상을 시도한 건 '협잡'이었다는 비판도 잇따랐습니다.

한 다선 의원은 "그런 식으로 한 게 협잡한 거 아니냐"며 맹비난했고, 한 의원은 KBS에 "(협상 시도는) 당권을 넘기지 않으면 체포동의안을 가결 시키겠다는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도 SNS에 글을 올려 "자기 정치생명을 이어가려고 검찰에 당대표를 팔아먹는 저열하고 비루한 배신과 협잡이 일어났다"며 "마지막까지 거래하려고 하고, 조건을 달고 하더니 결국은 등에 칼을 꽂는 짓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결국 '중재안'을 들고 이른바 협상에 나섰던 박광온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는 친명계의 거센 압박에 어젯밤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비판은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친명계 최고위원들은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며 "적과의 동침"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 비명계, 이재명 영장심사까지 일단은 신중한 행보

비명계 의원들은 일단은 확전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대신 친명계가 대다수인 당 지도부의 책임을 거론했습니다.

이원욱 의원은 오늘 아침 YTN 라디오에서 "책임져야 될 사람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기존의 지도부"라며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김종민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지금 지도부는 초선 의원도 많고 한목소리로 돼 있다. 여러 의견을 모아낼 수 있고 정치 경험이 많은 중진 의원 협의체라도 만들자"며 "전화위복의 리더십을 현재의 공식 지도부 말고 다른 중진 의원들과 모색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비명계 최고위원인 송갑석 최고위원은 오늘 회의에 불참했습니다.

친명, 비명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모양새인데 오는 26일로 예정된 이 대표 구속영장심사가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비명계도 이때까지는 확전 대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이 대표가 구속되면, 당권 교체를 요구하는 비명계와 '옥중 공천'도 불사하며 현 지도부를 유지하려는 친명계의 갈등이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선 분당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반대로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 생환한 이 대표가 전면에 나서 친명계 주도로 당의 주도권을 휘두를 것으로 보이는데, 비명계의 반발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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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easy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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