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현금 없으면 계좌이체 하세요”…세금 줄이려 카드 안 받는 상인들

조연우 기자 입력 2023. 9. 22. 16:24 수정 2023. 9. 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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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에 카드단말기 고장이라며 현금 유도
현금·계좌이체 어려운 관광객, 수수료 물고 ATM 이용
외국인 관광객 “한국서 원화 환전은 필수”
과세 당국 “인력 부족에 단속 어려워, 신고 적극 활용”

지난 2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상가. 중국인 관광객 리슈잉(23)씨가 옷을 사기 위해 신용카드를 내밀자, 상점 주인은 “카드리더기가 없어서 현금이나 계좌이체만 가능하다”고 했다.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이나 현금이 없어 난처해진 리슈잉씨는 업주가 가리킨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현금으로 계산을 마친 그는 업주로부터 “한국에서 편하게 쇼핑하려면 현금은 필수”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세금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현금만 받는 상점 주인들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생기고 있다. 신용카드만 들고 물건을 사러 갔다가는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기 일쑤다. 특히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쇼핑한 후 계산하려다 당황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곤 한다.

21일 오후 3시 서울 지하철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행 가방을 끌고 옷을 구경하고 있다,/ 조연우 기자

실제 21일 강남역 지하상가를 반나절 둘러본 결과, 대부분 가게에서는 카드가와 현금가를 따로 제시하고 있었다. 개인 계좌로 입금하거나 현금을 주면 카드가에 비해 5~10% 정도 할인해주는 식이다.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물건을 구매하면 한 장에 1만원인 티셔츠를 1000원 할인받을 수 있고, 10만원짜리 재킷은 9만원에 살 수 있었다. 한 점포에서는 “카드로 하면 4만1800원, 현금으로 3만5000원까지 해주겠다”며 “대신 현금영수증은 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게 내부에는 개인 계좌번호를 적어 놓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휴대전화 액세서리인 그립톡을 구매하려고 체크카드를 꺼낸 직장인 정모(28)씨는 8000원짜리 상품을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 1000원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정씨는 “과거에도 상인들이 현금 유도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며 정도가 심해졌다”며 “세금을 덜 내기 위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한국어로 의사 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데다,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업주의 현금 유도에 넘어가기 쉽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관광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은 사전에 ‘총알’을 준비한다. 한 의류 가게에서 약 20분간 거울 앞에서 옷을 대보며 20만원어치 원피스와 블라우스를 구매하려던 대만인 A씨는 현금가는 18만원이라는 업주의 말에 곧바로 공항에서 환전한 현금을 꺼냈다. A씨는 “여행 오기 전, 한국 지하상가에서 옷을 저렴하게 구매하려면 현금을 챙겨야 한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 거부는 명백한 위법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1항에 따르면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계좌이체를 유도한다고 해서 탈세를 의심할 순 없지만,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할 경우 역시 위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손님에게 현금 지불을 유도하고 있다. 카드로 결제하면 그만큼 신고할 소득이 늘어 세금을 더 내야 하지만,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낸 수익은 전산상 매출 규모에 포함되지 않아 세금을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영업자가 개인 계좌로 입금받는 경우 매출로 잡힌 소득인지 가족에게 보내는 돈인지 확인할 방도가 없어 제재가 어렵다”며 “소비자도 단기 할인 혜택 때문에 업주들이 유도하는 대로 계좌이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남역 지하상가 한 옷 가게에서 4만1800원짜리 바지를 현금가 3만5000원까지 할인해주고 있다. 가게 내부에 교환과 환불이 불가하다는 종잇장과 개인 계좌번호가 적힌 안내문이 붙어있다./ 조연우 기자

국세청은 신고가 들어오기 전 관리·감독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가 의심되는 제보가 들어오면 세무조사 등 확인절차를 거쳐 누락된 세금을 부과하지만, 먼저 나서서 감시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며 “심각한 규모가 아니고서야 자영업자를 모두 단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를 거부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소비자들은 여신금융협회나 국세청에 신고할 수 있다. 신고할 때 카드사명과 가맹점의 상호, 주소, 연락처 등이 필요하다. 국세청은 카드 결제 거부 사실이 확인되면 사업자에게 경고를 내린 뒤 결제 거부 금액의 5% 가산세를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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