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이재명을 너무 모른다[김지현의 정치언락]
이 대표는 검찰의 소환 요구가 이어지던 중 8월 31일 갑자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죠.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9월 18일부터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입니다. 체포동의안 표결 당일까지 약 한 달간 이 대표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번번이 제 예상을 벗어나는 그의 선택에 매번 놀랐습니다. 민주당 취재를 담당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대표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반성도 됩니다.
● ‘가결’ 아닌 ‘부결 호소’를 할 줄이야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 대표가 병원에서라도 의원들에게 가결 투표를 요청한 뒤 영장실질심사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것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이틀 앞두고 만난 한 야권 관계자 A는 이 같이 말했습니다. 친명 성향으로, 이 대표와도 친분이 있는 A는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본인이 의원들에게 직접 가결을 호소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고 했습니다.
중립 성향의 B의원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다음날 통화에서 “이 대표가 지난달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직후 ‘회기 중 영장이 오더라도 가결해달라’는 메시지부터 냈어야 했다”며 “본인 말처럼, 이 모든 것이 정치적인 수사라면, 대응도 보다 정무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 속에서 ‘선방’을 날리고 기세를 잡았어야 한다는 겁니다. A와 B는 이 대표가 건강 악화로 입원한 것을 우려하며 “이 대표가 이제는 직접 메시지를 내고 싶어도, 말할 상황도 아니라는데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냐”고 하더군요.
저 뿐 아니라 다들 아직도 그렇게 이재명을 모르는 겁니다. 이 대표는 표결 하루 전인 21일 오후 1시 반 경, 당 의원총회를 2시간 여 앞두고 가결이 아니라, 부결시켜달라는 메시지를 냈죠.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워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무려 1989자 분량의 글에서 이 대표는 “제가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당당하게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었습니다. 훗날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고 썼습니다.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마지막 단락에서 사실상 부결을 호소한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제1야당 대표란 사람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장에서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놓고는 이렇게 세 달 여 만에 입을 싹 씻을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정치부 동료 기자들끼리도 “이재명이 입장을 안내면 안 냈지, 설마 자기도 면이 있는데 부결해달라 하겠냐”고 했었는데 다들 반성합시다.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항상 상식선 밖까지 사고를 확장하라고 그렇게 배웠건만, 아직도 우리는 너무 상식선 이내에서만 생각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대표는 이미 가결을 촉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단식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인 8월 2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회기 중 영장 청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체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이 되나요”라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죠. 그러면서도 “회기 중 영장이 청구되면 가결을 촉구하실 거냐”는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 가결 후에도 버틸 줄이야
이 대표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당 내에선 또 한 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이 ‘반란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노골적으로 저격하기 시작한 겁니다.
“민주당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강변은 하지 마시길, 이완용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러분들이 뭐라고 떠들던 결국 독재 검찰과 국민의힘의 주장에 동조하고 내통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김병기 의원)
“자기 정치 생명을 이어가려고 검찰에 당 대표를 팔아먹는 저열하고 비루한 배신과 협잡이 일어났다. 동지가 아니다. 이런 해당 행위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정성호 의원)
“앞에서는 정의로운 척 온갖 명분을 가지고 떠들며, 뒤로는 모사를 꾸미는 협잡꾼”(무소속 김남국 의원)
평범한 직장인들은 밥벌이를 할 때 제 뜻대로 안 되더라도 이렇게 동료를 향해 대놓고 비난하기 쉽지 않은데 국회의원들은 좋겠습니다.
“대표님, 이제 칼을 뽑으셔야 한다. 대표님도 이제 그만 이들에 대한 희망과 미련을 버리고 현실 정치인이 되시길 고언드린다” (김병기 의원)
“누구 좋으라고…이재명 대표의 사퇴는 없다” (정청래 의원)
“더욱 탈당해서는 안 되고 이럴 때 더 민주당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꼿꼿한 민주당을 지키는 길이고, 이재명대표를 지키는 길입니다” (우원식 의원)
그러더니 결국 당일 밤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했습니다. 사실상 부결 당론을 채택해놓고도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며 의총장에서 친명계가 책임을 물으며 사퇴 압박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대해 비명계도 “왜 원내대표단만 책임지나,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친명 지도부도 총사퇴하라”고 맞받고 있죠. 이 때문에 구색 갖추기용인지 친명계 조정식 사무총장도 사의를 표명했다고는 하나 이 대표는 이를 수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대표 측근 관계자는 “이 대표가 복귀할 때까지 조 사무총장 등은 계속 자리를 지키란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복귀’라는 표현에 방점을 두고 읽어본다면, ‘이 대표는 안 나간다’는 얘깁니다.
실제 이 대표는 조금 전인 22일 오후 2시 경 입장문을 내고 “이재명을 넘어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국민과 나라를 지켜주십시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더 개혁적인 민주당, 더 유능한 민주당, 더 민주적인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하겠습니다”고도 했습니다. 사실상 사퇴를 거부하고 대표직 유지 의지를 밝힌 겁니다.
앞으로 이 대표의 행보를 취재하고 예상할 땐 ‘설마 했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더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하겠습니다. 그 동안 이 대표가 구속될 경우 ‘옥중공천’도 불사할 것이란 말들에도 “설마”라고 했었는데, 이 역시 현실이 되진 않을지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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