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새벽 도착 보장' 위해 1분 1초에 쫓기는 택배 기사
저는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쇼핑몰에서 물건 배송을 하고 있는 택배 기사입니다. 현재 야간 조에 들어가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 노동자
기사들을 갈아 만드는 '새벽 배송'
아침 7시 도착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
문제는 빠듯한 마감시간뿐만이 아닙니다. 배송할 물건을 가지러 물류센터에 입차하면, 받을 수 있는 물건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물류를 분류하는 작업이 계속 지연되기 때문이죠. 물류 분류가 끝나기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를 해야 합니다. 어떤 날은 배송 마감 2시간 전에서야 물량이 쏟아진 적도 있었어요. 시작이 늦었다고 마감 시간도 늦춰주지는 않습니다. 나머지는 오롯이 기사의 부담이죠.
"본사에서 물류 분류할 때 실수가 나도, 기사는 알 방법이 없어요"
그럼 본사에서 물류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실수는 없을까요? 물론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본사에서 작업되어 오는 물류가 오분류가 났는지, 안 났는지 기사는 알 턱이 없습니다. 오분류된 물건을 찾아 제 차에 다시 실을 때까지 출차를 못 하거나, 출차했더라도 물건을 찾으러 다시 회차해야 하는 일도 발생하죠. 이유를 불문하고, 마감시간은 동일합니다.
"기사가 분류작업을 아예 안 하게 되는 것도 아니에요"
분류작업은 본사 측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질까요? '통소분'이라는 이름하에 여전히 기사들이 분류작업을 다시 하고 있죠. 배송할 곳이 묶여서 전달되어, 결국 기사들이 세부지역에 따라 소분을 다시 하게 되는데요. 적으면 20분에서 1시간까지도 시간을 소요해야 합니다.
"다회전 배송 때문에 부담이 더 증가하죠"
설상가상으로 배송이 한번 만에 끝나지 않습니다. 2회 또는 3회에 걸쳐 물류센터를 다시 오가며 배송할 물류를 받아와야 하죠. 물류창고까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약 20분은 걸립니다. 3번 오가게 되면 이 시간도 무시를 못하는데요.
1분에 1건씩 배송? 시간과 싸우는 기사들
"1시간에 60개, 많으면 70개까지 배달해요. 1분에 1건씩 배달하지 않으면 소화를 못하죠. 화장실도 못 가고 끼니를 때울 시간도 없습니다."
정말 죽기 살기로 배송을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가끔은 신호를 위반해야 하는 일도 생기고, 전화통화를 할 시간도 없습니다. 야간에 배송을 하다 보니, 새벽녘 길거리에 나오는 청소차들과 쓰레기 수거차들도 변수로 발생합니다.
제시간에 배송 못 하면 평가 반영? 불안에 떠는 기사들
그러면 기사는 수익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탑차 기름값, 보험료, 기타 부대비용 등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정도라서 일을 하나마나한 상황이 될 수 있죠. 그래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배송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물량이 너무 많아 제시간에 배송을 못할 것 같으면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지원을 요청해도 수행률 평가를 받게 됩니다"
기사들의 발목을 붙잡는 가혹한 평가 시스템
그런데, 하루 쉬면 수행률이 깎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을 갖는 게 수행률에 왜 반영되는지 물어보니, 제가 쉬는 날 정규직 기사들이 대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행률에 반영이 안 되는 방법은 저 대신 제 휴무 날 일해 줄 휴무 대체자, 즉 '백업기사'를 구하는 일이었죠. 제 휴무날에 맞춰 저만큼 익숙하게 일해줄 백업기사를 구하는 길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업무 강도가 높으니 적응도 하기 전에 그만둬버리기 일쑤죠. 영세한 대리점의 경우는 백업기사를 둘 수 있는 사정도 아니고요."
일을 시작한 이후로 휴가는커녕 이틀 이상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 휴무 보장 이런 건 대리점 계약기사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정말 맞는 걸까요?
"고객이 내놓지 않아 반품회수를 못해도, 신선식품 담는 바구니를 회수 못해도 수행률에 반영됩니다. 수수료 100원, 200원짜리 일이지만, 수행률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고 있어요"
오롯이 택배기사에게 지워지는 부담
쏟아지는 물량 배송하기도 바쁜데, 바구니까지 회수하는 일이 더해지니 마음만 타들어갑니다. 온 건물을 뛰어다니며 회수하느라 일일이 바구니를 열어보고 물건을 확인할 새도 없습니다. 그러다 고객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신선식품이라도 남아있으면 그 신선식품 비용은 기사에게 청구됩니다.
이렇듯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배송하다 보면 결국 실수는 나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보니 아무리 숙련된 기사여도 오배송은 피할 방법이 없죠. 오배송을 하면 배송에 대한 수수료도 받지 못하고, 신선식품의 경우는 100% 비용 청구를 받게 됩니다. 오배송을 했으니, 다시 물건을 되찾아야 하지만 다음날 갔을 때 물건을 되찾을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물건비용도 물어야 하는 것이죠.
배송이 쉬운 물건들만 있을까요? 매트리스, 에어컨, 55인치 TV까지...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배송 건들도 많습니다. 배송 수수료는 동일하죠. 이 역시, 그저 제가 감당해야 하는 몫입니다. 이 밖에도 힘이 쭉 빠지는 순간은 참 많습니다. 이 물건들을 싣기 위한 장소, 물류센터에서부터요.
"물류센터 안은 35도에 육박합니다. 하지만 물도 눈치 보며 마셔야 하죠"
물류를 탑차에 상차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물류센터는 밤 9시에도 35도에 육박합니다. 사우나에 온 듯 땀이 쏟아지고 숨이 턱턱 막히죠. 조금만 움직여도 속옷까지 금방 다 젖는데요.
이럴 땐 목이 말라 생수라도 마실까 싶은데, 대리점 계약기사들은 생수도 허락 맡고 가져가야 해서 이마저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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