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난맥상]④ “코디네이터가 곧 시공사의 역량”… 여전히 판치는 컨설팅업체 비리

채민석 기자 2023. 9. 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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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작업부터 조합장 선거, 선정 등에 영향력 발휘
2003년 도정법 제정 이후 우수로 생겨
”컨설팅 업체 도움 없이 수주전 승리 불가능”
‘컨설팅 업체의 역량이 곧 시공사의 역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큽니다. 건설사의 수주전 참여 전후로 밥상을 깔아두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국내 한 건설사 관계자 A씨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각종 비리의 중심으로 지목된 일명 ‘컨설팅 업체(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로 불리는 정비사업 관계자들이 여전히 각종 사업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조합이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합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각종 이권을 챙기고 있는 가운데, 이로 인해 늘어난 비용은 온전히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컨설팅 업체는 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할 시기보다 앞서 현장에 방문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특정 시공사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시공사들이 건넨 뇌물을 조합 관계자들에게 전달하는 ‘채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부 컨설팅 업체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단지.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A씨는 21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인기 사업장에서 수주전, 즉 ‘전쟁’이 벌어지면 금품·향응 제공, 조합장 선거 개입 등 각종 불법 행위가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컨설팅 업체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며 “이미 수의계약이 확정적인 사업지는 별 수 없지만, 수주전이 발생하는 대형 사업지의 경우에는 시공사들의 싸움이 아니라 컨설팅 업체끼리의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10계단 이상 아래에 있는 건설사가 호전적 성향의 컨설팅 업체의 힘을 빌려 상위 순위의 건설사를 제치는 일도 발생한다. A씨의 말을 빌리면 수주전에서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마귀가 수레를 엎는 ‘이변’을 마냥 이변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는 지난 2003년 시공사의 현장 개입을 최소화 하기 위해 마련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의거, 사업성 평가, 각종 인허가 신청, 총회 개최 등 조합의 업무를 대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당시 시공사의 활동 범위가 줄어들며 전국 각지에서 컨설팅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컨설팅 업체의 활동은 정비사업 초기단계부터 시작된다. 서울과 수도권 각지의 재건축·재개발 예정지들을 순회하듯 돌아다니며 현장의 입지나 사업성 등을 평가해 건설사에 전달한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 사업지의 정보를 파악한 건설사들은 수주 여부를 결정한다.

건설사가 특정 사업지에 대해 수주를 결정하면 컨설팅 업체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물밑 작업에 필요한 OS(Outsourcing, 아웃소싱) 인력을 구성해 현장에 배치한 뒤, 조합원들을 상대로 시공사 홍보에 나선다. 시공사 입찰 공고가 나오기 전에 미리 시공사가 입찰에 참여하기 편한 환경, 즉 ‘밥상’을 마련하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는 조합 방식으로 재건축이 진행되는 단지를 찾아가 각종 혜택을 약속하며 조합장 선출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조합장을 포섭한 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로 선정되면 활동이 더욱 편리해지고, 각종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컨설팅 업체들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입찰 공고 때 현실적이지 않은 금액을 써서 내기도 한다. 조합장 등 관계자들 또한 이 과정에서 특정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대신 컨설팅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기도 한다.

반대로 조합장 개인이 지분을 갖고 있거나, 투자를 한 컨설팅 업체를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로 선정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조합장에게 재건축이 진행 과정에서 이권을 챙기기 수월해 진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도 이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대형 사업지에서 수주전이 발발하면 각종 불법행위들이 난무하는데, 금품 및 향응 제공 등 건설사 입장에서 직접 하기 불편한 행위들에 대해 컨설팅 업체가 ‘우회로’가 된다. 이 때문에 건설사는 특정 컨설팅 업체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정비사업지에서 컨설팅 업체들의 비위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경우도 있다. 지난 2021년 광주광역시 학동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대표적이다.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던 문흥식 전 5·18구속부상자 회장이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4~5차례 조합과 계약을 체결하게 해주는 대가로 철거업체 2곳과 정비기반업체 1곳의 관계자들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입감되기도 했다.

정비사업지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의 원인으로 꾸준히 컨설팅 업체가 지목되고 있지만, 이를 근절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모든 건설사나 컨설팅 업체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컨설팅 업체의 도움 없이 시공사가 주요 격전지에서 수주를 따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불법행위를 저지른 특정 주체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 외에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건설사와 컨설팅 업체들의 관계를 끊어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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