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들은 밤새 놀먼 안 된당가?”…‘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 정지아의 ‘술과 삶’ [플랫]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320쪽 | 1만7000원
“술이든 담배든 마약이든, 내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그 무엇도 하지 않을 거야. 평생!” 정지아가 대학생일 때 한 다짐이다. 그 다짐은 2학년 여름 이후 무너진다. 에세이집 후기에서 이렇게 이어 적었다. “이런 젠장. 그렇게 호기롭게 뱉어놓고는 마약 빼고 다 하고 있네. 내가 나를 배신하는 것, 그게 인생이지 뭐.”
그 인생을 ‘술과 사람’으로 채웠다. 주종은 소주와 “마시는 누구라도 거의 혼절에 이르게 하는 기적의 술” 캪틴큐부터 “싱글몰트계의 롤스로이스” 맥켈란 1926까지 걸쳤다. 사람은 고향인 구례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재일한국(조선)인 야쿠자까지 등장한다.

‘빨치산의 딸 작가’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로 수식이 바뀐 정지아의 신작 에세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같은 에피소드가 에세이집에서도 이어진다.
고3 겨울방학 때 남자애 집에서 밤새워 놀려고 할 때 여자애들은 자기 부모에게 정지아 집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지아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아빠. 친구들이랑 하룻밤 놀 건데 선희랑 채경이가 우리 집서 논다고 해달래. 전화 오면 아빠가 알아서 해결해.”
아버지에겐 “만사 오케이”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여자애들이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남자 집에서 어쩌고저쩌고” 애간장을 녹이며 폭풍처럼 쏟아내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근엄하게 단칼”에 자르며 아버지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머시매들은 밤새 놀아도 되고 가시내들은 밤새 놀먼 안 된당가? 고거이 남녀평등이여? 자네는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아니그마!”
정지아와 친구들에게 아까워 입에 대지도 않던 매실주를 단지째 내놓은 이도 아버지다.
풍경이 술자리와 동석한 사람을 더 선명하게 각인한다. 매실주를 마셨던 그 겨울밤이다.
“누군가 전등을 하늘로 비췄다. 빛기둥 안에서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순수에 압도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토록 순수하게, 이토록 압도적으로 살고 싶다고.”
실록 <빨치산의 딸>을 쓰고 3년 동안 도망 다닌 수배 시절 술로 엮인 인연도 소개한다. 지리산이 그리워 한겨울 무작정 용산역에서 구례구역으로 갔다. 지리산 뱀사골에 올라 산장에 묵었다. 산행 때 챙겨 간 게 패스포트다. 산장에서 “숨죽여 패스포트 몇 잔” 들이켤 때 다른 산행객이 “꼴딱꼴딱 침”을 삼키며 모여들었다.
서로 소개할 때 막 주워댄 게 절친한 친구 이름 ‘홍은혜’였다.
“아닌데? 정지아씨 아니에요?”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나 기억 안 나요? 삼 년 전인가, 서울대에서 노동자의날 시위 때 만났는데? 그때 지아씨가 내가 든 화염병 박스 들어줬잖아요?” 정지아의 정체를 안 사람은 대구택시노련 소속 노동자였다. 그는 “<빨치산의 딸>을 쓴 사람인데 당연히 기억하죠”라고 했다.
술이란 게 위험하다. 수배가 마무리될 때다. “차에 실린 채 눈을” 가리고 안기부로 가기 전날 조직 선배들을 만나 폭음했다. 3년 수배 기간 중 지리산 종주 때를 빼고는 처음 마신 술이다. 완전히 정신을 잃고는 도로의 차 한 대에 불쑥 뛰어들어 조수석에 타 외쳤다. “호남고속버스터미널!”
다행히 좋은 사람이었다. 어느 대학 경제학 교수였던 이 사람은 버스가 끊긴 시간 정지아를 한강 ‘고수부지(둔치)’로 데려갔다. 차가 출렁거릴 때마다 “와우!” “웁스!”하고 감탄사를 외쳤다. 그는 둔치에서 정지아가 술이 깰 때까지 기다려줬다. 정지아가 글 쓰는 사람이란 걸 알고는 집필 중이던 책 교정과 교열을 맡겼다. “문장은 젬병이라던 말과 달리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해서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평생 처음 미시경제학 공부를 된통 했을 뿐이다.”
에세이는 솔직하다. 젠체하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한강 둔치 에피소드처럼 술 때문에 망가진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온다. 돈을 벌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고, ‘부자들’한테 비싼 술 얻어먹고 다니던 시절 이야기도 가감 없다. 그때도 당당했다.
“회장님이 주시는 대로만 마셔야 됩니까?” 어느 기업 회장이 따라주던 온더록스에도 태클을 걸었다. “술에는 취향이 있는 법이고, 모름지기 인간은 제 취향대로 술을 마셔야 하는 법이다. … 나는 눈치 봐야 하는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고, 제가 마시는 술이 맛있다며 강제로 권하는 어떤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 각자가 좋아하는 술을 각자의 페이스대로! 이것이 나와 지인들 술자리의 기본 원칙이다.”
비싼 술이라고 다 좋았을까. 1926년 증류해 1988년 40병만 출시한, 2018년엔 두 병 세트가 120만달러에 팔린 맥켈란 1926을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한때는 평등을 주창했을 공산당 간부”와 함께 마셨다. “그러니까 나에게 타락의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름지기 평등을 주창했던 자라면 내 아버지처럼 모를 심다 말고 논두렁에서 농민들과 막걸리 한 사발 단숨에 들이켜고 김치 한 가닥 쭈욱 찢어 우걱우걱 씹어줘야 제격 아니겠는가.” 지금은 그 술이 간절히 그립다. “타락의 맛이고 나발이고 즐겼어야지! 나는 자본주의를 살고 있단 말이다! 이러니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 거다.”

술에 관한 단상들을 이어낸다. 인간관계에 관한 말들이다.
“모든 존재가 서글펐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슬픔을 애도하며 나는 한 방울의 눈물을 찔끔 떨궜다. 위스키든 소주든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여기서 그만이어도 좋고 쭈욱 가도 좋다. 주변에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만 있어도 족하다. 술이 핏속으로 스며들듯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든 지난 10년, 이제 우리는 친구다.”
“세월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영 아닌 것 같다가 좋아지는, 그런 관계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위스키가 그러하듯이.”
정지아는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뜬 뒤 혼술을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강연의 긴장을 귀가 뒤 술로 풀었다. 혼술은 조만간 멈추려 한다고 했다. 친구와 마시는 술까지 끊을 생각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사람들이 좋고, 그들과 바닥까지 솔직해지는 시간들이 좋고, 술은 우리 사이의 윤활유니까.”
▼ 김종목 기자 jomo@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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