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성들을 위한 레지던스… 그곳은 꿈과 욕망의 공간[북리뷰]

최현미 기자 2023. 9. 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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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뉴욕 맨해튼 이스트 63번가 140번지에 세워진 '호텔 바비즌'은 미국 전역에서 1800년대 후반 일기 시작한 호텔 레지던스 열풍의 그저 한 예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바비즌 호텔을 중심으로 자신의 미모를 뽐내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 파티를 즐기고, 욕망하고, 소비하는 당대 여성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그 디테일을 흥미롭게 복원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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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바비즌
폴리나 브렌 지음│홍한별 옮김│니케북스

1927년 뉴욕 맨해튼 이스트 63번가 140번지에 세워진 ‘호텔 바비즌’은 미국 전역에서 1800년대 후반 일기 시작한 호텔 레지던스 열풍의 그저 한 예가 아니다. 오후 6시 이후 여성 혼자 투숙하는 게 불가능했던 시절, 오직 여성들만을 위한 레지던스였고, 여러 여성 레지던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원톱’이었다.

소설가·배우·패션디자이너 등 지적으로 뛰어나든 외모가 아름답든, 당대 가장 멋진 여성들이 드나들고 묵었다. 타이태닉 생존자 몰리 브라운, 배우 그레이스 켈리, 알리 맥그로, 캔디스 버겐, 재클린 스미스, 시빌 셰퍼트, 작가 실비아 플라스, 존 디디온, 게일 그린, 디자이너 벳시 존슨, 저널리스트 페기 누넌 등이 바비즌 호텔 숙박계에 이름을 올린 여성들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 도시로 여성들이 몰려오던 때, 이들 바비즌 투숙객들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부유한 여성을 뜻하는 ‘신여성’이거나 ‘신여성’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1958년 여름, 이곳에 머물렀던 알리 맥그로는 뉴욕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흰색에 그리스 문양이 들어간 종이컵에 모닝커피를 담아 들고 이렇게 말했었다. “바비즌에 있는 것만으로 무언가 이룬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배서 칼리지에서 국제학 젠더 언론학을 가르치는 폴리나 브렌은 사회·문화적 의미가 겹겹이 쌓여 있는 바비즌 호텔 역사 안으로 뛰어들어 1927년 호텔이 세워졌을 때부터 2007년 수백만 달러짜리 콘도미니엄으로 재개방하기까지 시대순으로 바비즌 이야기를 들려준다. 챕터마다 그때 그곳에 머문 가장 멋진 여성을 내세워 바비즌을 배경으로 그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국 그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여성적 상징성은 곧바로 바비즌 호텔의 명성이 된다. 그래서 책은 바비즌 호텔의 역사인 동시에 20세기 새로운 여성들, 그들의 욕망의 역사이며 당대 여성의 미세사인 동시에 바비즌의 풍속사가 된다.

하지만 소위 신여성을 다루면서도 여성주의나 페미니즘 시선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흥미로운 포지션이다. 오히려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바비즌 호텔을 중심으로 자신의 미모를 뽐내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 파티를 즐기고, 욕망하고, 소비하는 당대 여성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그 디테일을 흥미롭게 복원해낸다. 그런 점에서 여성주의 역사서라기보다는 ‘보그’ ‘하퍼스 바자’ 계열의 라이프지 같은 분위기다. 416쪽, 2만4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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