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 누룩 종류마다 고유한 특성 담겨…각양각색 술이 익는다

황지원 2023. 9.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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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 (6) 우리술의 정체성, 누룩
전북 정읍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성형기 특허·발효 시스템 개발
지난해부터 ‘청명주’ 빚어 판매
‘배치 번호’ 표시로 희소성 부여
때마다 다른 맛 장점으로 승화
‘청명주’ 라벨에 있는 보름달 모양은 누룩을 형상화했다. 술에 들어간 종류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쌀·물과 함께 전통주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재료가 바로 ‘누룩’이다. 크게는 지역마다, 작게는 집마다, 혹은 빚는 시기마다 다르게 만들어지는 누룩은 술의 맛과 향에 고유한 특성을 부여한다. 혹자는 와인의 맛에 영향을 주는 ‘테루아(자연환경)’가 있는 것처럼 전통주엔 누룩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전북 정읍에는 누룩 연구·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는 ‘한영석의 발효연구소’가 있다. 이곳은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8종류의 누룩을 만드는 데다가 지난해부턴 술까지 빚어 판다.

2011년부터 누룩을 만들기 시작해 2020년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가 선정한 한국무형문화유산 전통누룩 분야 1호 명인으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한영석 대표를 만나 누룩의 종류와 제조방법·매력 등을 알아봤다.

① 빻은 곡물에 물을 넣고 교반기로 섞는다. 비율은 누룩마다 다르다.
② 성형기로 누룩 모양을 만든다. 원래는 발로 디뎠던 작업이다.
③ 발효실에서 45일간 누룩을 띄운다. 띄운 누룩엔 곰팡이가 붙는다.
④ 완성한 누룩은 닷새간 법제 과정을 거친다. 포자를 걷어내고 햇볕에 소독한다.
⑤ 분쇄기로 파쇄해 다시 햇볕에 말린다. 이를 곱게 빻으면 완성이다.
⑥ 완성된 누룩은 술을 만들 때 섞어 쓴다. 누룩은 술의 발효를 돕는다.

◆누룩의 종류와 제조방법=누룩은 술을 빚는 데 쓰이는 발효제다. 주로 곡물을 갈아 물과 반죽한 것을 누룩곰팡이로 발효시켜 만든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누룩을 띄우는 날이었다.

한 대표는 직접 누룩 8종을 만들어 사용한다. 밀누룩, 쌀누룩, 향미주국(쌀+녹두), 녹두국(쌀+녹두), 백수환동국(쌀+녹두), 분국(밀가루), 백국(쌀+밀가루), 내부비전국(밀가루+기장+녹두)이다. 종류에 따라 재료의 비율과 누룩 모양이 다르다. 그가 여러종의 누룩을 만드는 이유는 저마다 향이 다른 술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누룩은 어떻게 만들까. 쌀누룩을 만들려면 먼저 곱게 빻은 쌀가루를 약간의 물과 함께 교반기에 넣는다. 교반기에서 꺼낸 쌀가루 반죽을 누룩 성형기에 옮긴 후 가압판으로 누른다. 가압판은 높은 압력으로 모양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발로 디뎌 만들었다. 한 대표는 누룩 성형기를 개발해 특허까지 받았다. 기계를 쓰면 누룩이 같은 압력을 받아 균일한 품질로 발효시킬 수 있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

성형을 마친 누룩은 45일간 발효시킨다. 과거엔 발효가 잘 이뤄지는 습한 여름부터 시작해 90일간 누룩을 띄웠다. 한 대표는 사계절 내내 6∼9월의 날씨를 재현하는 발효실 시스템을 개발했다.

발효실 안에서는 초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90일 동안의 온도와 습도의 변화 속도를 2배 빨리해 45일 만에 누룩이 완성된다. 발효실 온도는 초여름 기온인 26℃에서 작동을 시작한다. 띄운 지 3일 후 누룩은 자체 온도가 37℃까지 오르고 보름이 지나면 떨어지는데, 발효실은 이때도 30℃를 유지한다.

습도는 장마철 기준인 92%에서 시작해 45일 동안 65%까지 천천히 떨어진다. 그러면 하얀 누룩에 곰팡이꽃이 핀다. 발효가 끝난 누룩은 닷새간 ‘법제’ 과정을 거친다. 법제란 누룩을 살균하는 과정이다. 먼저 에어건(송풍기)으로 겉면에 붙은 곰팡이 포자를 걷어낸 후 햇볕을 쪼여 소독한다. 이를 분쇄기로 파쇄해 다시 햇볕에 말린다. 마지막으로 곱게 빻으면 비로소 누룩이 완성된다.

쌀에 단일 곰팡이균을 흩뿌려 만드는 일본식 누룩인 ‘입국’과 달리, 우리 누룩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여러 누룩곰팡이가 자연스럽게 내려앉도록 해 만든다. 같은 재료와 방식으로 만든 누룩이더라도 시기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을 내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한때는 우리 누룩이 일본식 누룩보다 못하다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누룩에 따라 맛이 다른 술=그는 누룩의 매력을 충분히 살린 술을 출시하고 있다. 그가 내놓은 ‘청명주’의 라벨을 살펴보면 동그란 보름달 같은 게 그려져 있는데, 누룩을 표현한 것이다. 누룩에 따라 라벨 속 누룩 색이 다르다.

“전통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우리 술은 누룩 냄새가 심해서 맛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한때는 전통 누룩으론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고도 했죠. 이런 편견을 깨고 싶어서 라벨에 누룩 모양을 넣게 됐어요.”

전통주가 때마다 맛이 다르다고 비판받는 부분을 도리어 장점으로 승화한 것이다.

‘청명주’엔 ‘배치(Batch)’라는 번호가 붙는다. 배치란 같은 재료로 동시에 만들어 한곳에서 띄운 누룩을 뜻한다. 누룩이 달라지면 배치가 바뀌는 것이다. 배치 번호는 쭉 이어져 현재 ‘배치9’까지 나왔다. ‘배치1’은 쌀누룩, ‘배치2’는 향미주국, ‘배치3’은 녹두국으로 빚었다. 같은 누룩도 배치가 다르면 술 향이 다르다. 배치 1·4·5번은 모두 쌀누룩을 썼지만 풍미는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배치에 따라 다른 술 맛이 오히려 ‘한영석표 청명주’의 특징이 됐다. 배치당 6000병밖에 생산되지 않아 한번 지나간 배치는 다시 마실 수 없다는 희소성도 있다. 사람들은 다음 배치가 궁금해서 또 ‘청명주’를 찾는다. ‘이번엔 어떤 누룩으로 빚을까?’ 궁금해하는 것이다.

한 대표는 “전통주에서 누룩이 지닌 중요성을 아는 만큼 앞으로 누룩의 대중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읍=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사진=김건웅 프리랜서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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