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번아웃에 빠진 이의 불길한 소망

2023. 9. 2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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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우울증이라 단정할 순 없겠지만 정신적 탈진 상태일 가능성은 크다.

탈진 증후군은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오래 쌓여 극심한 피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봐도 사회적 화합, 규칙 준수, 책임감과 성실성, 목표를 이루려는 강한 열망은 탈진 증후군을 일으키는 원인인 동시에 보호 인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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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열망이 결국 정신적 탈진 불러
에너지 재충전 위해 ‘감성’ 채워야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우울증이라 단정할 순 없겠지만 정신적 탈진 상태일 가능성은 크다. 진료하다 보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친 환자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괴로운데 출근은 해야겠고, 고역이지만 일할 수밖에 없는데 차마 자기 입으로는 그만두겠다고 할 수 없을 때 “사고로 다치면 그나마 쉴 수 있잖아요”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사고가 일어나게 만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의욕이 바닥나고, 기쁨은 사라졌는데 잠시도 쉴 틈이 없다는 절박함의 다른 표현이리라.

탈진 증후군은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오래 쌓여 극심한 피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시쳇말로 “번아웃 되었다”고 일컫는 경우다. 마음 에너지가 소진되어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금방 끝내던 일을 질질 끌고 제때 마무리 짓지 못한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서 평소 안 하던 실수가 잦아진다. 지금껏 해왔던 일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진다. 탈진 증후군에 빠지면 자신과 일, 세상에 대한 태도가 냉소적으로 바뀐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기운을 회복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한데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생긴다.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일터에서 벗어나면 홀가분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렇게 못 한다. 불의의 사고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일을 못 하게 돼야 비로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번아웃에 빠진 이들의 평소 모습을 보면 다들 일을 너무 열심히 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을 배려하며 갈등 없이 지내려고 애쓴다. 이런 태도가 잘 유지되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자기 마음도 다치지 않게 막아준다. 그런데 이게 과하면 문제가 된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봐도 사회적 화합, 규칙 준수, 책임감과 성실성, 목표를 이루려는 강한 열망은 탈진 증후군을 일으키는 원인인 동시에 보호 인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퇴근 후에 재충전이라도 하면 좋은데 탈진된 직장인은 집에 가자마자 소파에 누워 유튜브 영상만 멍하니 쳐다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옷 갈아입는 것조차 귀찮아서 활기를 되찾으려는 시도조차 못 한다.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졸고, 정작 잘 시간에는 긴장이 풀리지 않아 숙면을 못 취한다. 자도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기 싫고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자기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무턱대고 쉰다고 탈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회사나 집 근처 공원에서 가볍게 산책하면 좋다. 새로 생긴 카페에서 카모마일차라도 한 잔 마시고 일터에서 쌓인 긴장을 풀고 집에 가라. 땀 나게 운동하면 좋은데, 이것도 퇴근하고 바로 해야 한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백발백중 누워서 꼼짝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휴식도 필요하지만 에너지 재충전을 위해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은 탈진 증후군의 예방과 치료에 중요한 인자다. 마음이 힘들다고 자기계발 유튜브만 주야장천 보지 말고, 감성을 채우는 음악을 듣는 게 훨씬 낫다. 스트레스에 찌들기 전에 “나는 무엇에 기쁨을 느꼈는가?”를 떠올려 보고, 그걸 다시 해도 좋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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