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12억 배상에 내몰린 산부인과 의사
뇌성마비와 관련된 산과 소송은 다른 과에 비해 가혹할 만큼 부담이 된다. 소송이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소송 기간도 길어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들도 고통이 심하다. 성원준 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에 따르면 평균 의료사고 해결 기간은 1435일(3.9년)로, 최소 276일에서 최대 12년이 걸렸다. 특히 뇌성마비의 경우 의사는 긴 소송과 진료 마비 또 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환자 측도 처음 겪는 의료 소송에 대한 부담뿐만 아니라 뇌성마비 아이의 돌봄, 돌봄 비용, 이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에 시달린다.
원고의 평균 청구액은 2억3000만 원이며, 평균 배상액은 약 7000만 원에 달했다. 성 교수는 “의료진의 분만 관련 소송에 대한 부담은 분만 인프라 붕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며 “분만 관련 소송의 증가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산모와 향후 출산을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과 영역의 높은 의료 소송 빈도와 의료 배상액은 산과 전문의들의 진료 행위를 위축시키고, 아직 전문의 취득을 하지 않은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향후 진로에도 영향을 준다.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전문의 수를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로 분만이 가능한 산과 병원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분만 가능 산부인과는 2004년에 1311곳에 달했지만, 2021년엔 481곳에 불과하다. 약 3분의 1로 줄었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에 105곳이 분만 의료기관이 없는 분만 취약지로 분류될 정도다. 의사들의 지원자도 반토막이 났다. 2004년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은 259명이었지만 2020년엔 124명에 불과했다. 인구 감소 속도보다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가 자주 생기는 분만에 의한 문제에 있어서는 외국처럼 의료사고 보상 비용을 전부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물론 현재에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3조에 의해 분만 사고(산모 사망, 태아와 신생아 사망, 신생아 뇌성마비 등)의 경우 3000만 원의 범위에서 보상한다고 되어 있다.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이번처럼 소송으로 가면 10억 원 이상을 받을 수도 있는 현실에서 3000만 원을 수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제도”라며 “일본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는데, 일본은 3억 원 정도의 액수를 보상한다. 우리나라도 보상 액수를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와 관련한 국회 심포지엄을 통해 학회에선 △안전한 분만을 위한 의료사고 공적 보상제도 도입 △산과 관련 수가 현실화 △산부인과 전공의, 산과 전임교수 지원제도 도입 △고위험 분만 관련 수가 현실화 △정부, 지자체, 기관의 분만실 운영 의지 의무화를 개선안으로 제안했다.
산모의 분만 뺑뺑이는 앞으로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15년 전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려다 뇌출혈이 생겼지만 이를 받아줄 전문의가 없어서 뺑뺑이를 돌다가 결국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산부인과 등의 지원에 큰 힘을 쏟았던 일을 꼭 기억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 국내에선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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