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참사 부른 무정부 상태…그 뒤에는 ‘서방의 무책임’
카다피 축출 위해 ‘R2P’ 발동…사후 혼란 수습엔 뒷전
“석유 노린 군사 개입” 분석…결국 댐 붕괴로 최악 홍수
열대성 폭풍 ‘대니얼’의 영향으로 최악의 홍수 피해를 본 리비아 구호 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댐 붕괴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북동부 데르나에서는 20일(현지시간) 통신까지 모두 끊겨 구호대원들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10일 발생한 대홍수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만명이 넘는다. 정확한 사망자와 실종자 수는 집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의 원인을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1년 10월 사망한 뒤 12년간 계속된 행정 공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내전 결과 유엔이 인정한 과도정부인 리비아통합정부(GNU)는 서부를,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은 동부를 나눠 통치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노후화된 댐 등 기반시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참혹한 사태의 책임을 리비아 정치권에만 돌릴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11년 3월 ‘아랍의 봄’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한 카다피를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일명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로 불리는 국민보호책임 개념에 근거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던 서방의 결정과 그 이후 리비아가 오랫동안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된 과정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R2P는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집단학살·전쟁범죄·인종청소·반인륜 범죄 등 4대 범죄를 자행할 시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통해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개념이다.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와 2006년 안보리 재확인을 거쳐 규범으로 확립됐는데, 2011년 카다피의 폭정으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R2P 원칙이 적용됐다.
문제는 리비아에서 군사작전을 펼쳤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비롯한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이 카다피 정권 붕괴에만 집중한 탓에 카다피 사후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고 권력을 안정적으로 이양할지 등에 대해서는 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시사주간 타임은 “리비아 국민을 위해 중요한 건 카다피 퇴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권력이 이양되는가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카다피 사망 이후 GNU와 LNA는 길고 긴 내전을 벌였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2020년 10월 어렵게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 이듬해 3월 임시 통합정부가 출범하며 평화 정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2021년 12월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가 후보 98명이 난립하는 등 갖은 진통 끝에 무산됐다.
중동 전문가인 조너선 쿡은 서방의 무책임한 R2P 발동이 지금의 무정부 사태를 초래했으며, 이번처럼 천재지변이 벌어졌을 때 손쓸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6일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글에서 “무너진 댐과 흔들리는 구호 활동은 리비아 권력 공백의 결과”라면서 “리비아가 재난에 대처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던 배경엔 서방이 깊이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쿡은 “나토가 리비아 국민 복지에 정말로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믿음은 카다피가 사망한 순간 거짓말로 드러났다”면서 “서방은 리비아를 내전으로 몰아넣었고, R2P 뒤에 숨은 인도주의라는 목표는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 기자 출신으로 퓰리처상 수상자인 크리스 헤지스 또한 독립 매체 시어포스트 기고문에서 “R2P 원칙에 기반한 서방의 리비아 정권 교체는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안정된 국가였던 리비아를 파괴했다”며 “이번 홍수 피해자들은 서방의 개입으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사망한 수만명의 리비아인 가운데 일부일 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서방을 ‘유토피아 엔지니어’라고 규정한 뒤 “리비아의 시스템과 제도, 사회문화 구조를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일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서방 언론들도 조금씩 이번 대홍수 피해 원인을 2011년 서방의 카다피 제거 작전에서 찾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WP)는 “리비아의 불안정한 현실은 2011년 나토가 주도한 개입에서 시작됐다”며 “전쟁에 참여한 서방의 열정이 리비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당수 전문가는 여전히 2011년 서방의 군사 개입이 산유국 리비아의 부를 노린 행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아랍의 봄’ 민주화운동 당시 리비아뿐 아니라 수많은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혼란을 겪었지만, 유독 리비아에만 R2P 개념을 적용해 병력을 투입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서방이 애초에 카다피 축출 이후 리비아 사회 재건에 관심이 없었고, 이후 리비아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다.
다만 쿡은 영국 BBC 등을 겨냥해 “서방 언론이 리비아 홍수에 대해 아직도 모든 이야기를 전하지 않고 있다”며 “리비아가 왜 재난에 대처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는지, 국가가 왜 그토록 분열되고 혼란스러운지 설명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비꼬았다. 헤지스도 “박해받는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한 나라에 큰 피해를 주고 나면 이후엔 그 나라가 박해를 받든, 받지 않든 우리는 그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2016년 미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며 “리비아 사태에 개입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그날(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를 위해 미리 계획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재임 중 최악의 실수”라고 고백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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