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폭행, 이젠 참지 않습니다”

김태희 기자 2023. 9. 2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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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악성 민원 대응’ 경기도 첫 매뉴얼 제작
상황별 대처법 책자로 만들어 소속 공무원들에게 배포
민원실에 112센터 연결 비상벨·목걸이 카메라 보급도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청 종합민원실에서 실시한 ‘특이 민원 발생 대응 모의훈련’에서 악성 민원인(배우)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가고 있다. 이천시 제공

“내 사진인데 몇년 지났다고 안 된다고? 너 일 똑바로 안 할래?”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청 1층에 있는 종합민원실 ‘특이 민원 발생 대응 모의훈련’ 현장. 한 40대 남성이 목소리를 높이며 욕설을 하기 시작하자 민원실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담당 공무원이 “규정상 촬영한 지 6개월이 지난 사진으로는 여권을 발급할 수 없다”고 차분히 설명했지만 남성은 서류를 집어던지는 등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이에 여권 민원 담당 팀장이 나서 남성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남성은 의자를 던지는 시늉까지 하며 공무원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다고 판단한 팀장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다른 공무원은 민원실 한쪽에 있는 비상벨을 누르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은 3분 뒤 출동한 경찰이 남성을 끌고 나가며 마무리됐다.

이천시는 이 같은 고질·악성 민원에 대응하고자 최근 ‘특이 민원 대응 매뉴얼’을 책자로 제작해 소속 공무원들에게 배포했다. 경기지역 기초지자체 중 자체 민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모든 공무원에게 전달한 것은 이천시가 처음이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들을 보호해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천시 관계자는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은 도를 넘는 민원을 경험해도 대처 방법을 몰라 혼자 참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적극 대응하면 불이익이 있을까봐 두려워 넘기는 경우도 있다”며 “이로 인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상황별 대처법을 매뉴얼로 만들어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에서 낸 도내 31개 시·군 민원실 등에서 일어난 위법행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5월 폭언·욕설·폭행·성희롱·기물파괴 등 민원인 위법행위가 총 6261건 발생했다.

이천시 사례로는 ‘특정인이 관공서와 결탁했다’며 수년간 같은 민원을 제기하거나, 하루 20~30통씩 담당 부서에 전화하며 욕설을 한 경우 등이 있다.

이천시 ‘특이 민원 대응 매뉴얼’은 상황별 대처 방법을 구체화해 폭언·욕설 등 유형별·단계별 응대 요령, 법적 대응 요령 등을 담았다. 상황별로 대응 예시문을 제시하고 대응 주의사항도 함께 적었다.

예를 들어 전화 민원을 응대하던 중 민원인이 욕설을 하는 경우 우선 민원인에게 폭언 중지 요청을 한 뒤 통화내용 녹음사실 사전고지를 통해 폭언 중단을 유도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욕설을 계속할 경우 법적 조치를 경고한 뒤 통화를 종료하도록 했다. 이후에도 같은 민원인이 다시 전화해 폭언하면 상급자가 대응한 후 부서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도록 했다. 민원에 적극 대응하기 어려운 하급자의 부담을 줄이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천시는 종합민원실과 읍·면·동 민원실에 112치안센터와 연결된 양방향 비상벨을 설치해 비상시 경찰이 출동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했다. 지난 7월에는 녹음과 촬영을 할 수 있는 목걸이 형태의 카메라를 보급했다. 이천시는 이와 함께 정기적인 모의훈련을 해 악성 민원 대응력을 높일 예정이다.

김경희 이천시장은 “이천시는 민원인들의 폭언과 폭행에서 공무원을 보호하고 합리적인 대응으로 민원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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