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비밀을 해독한 물리학의 인사이더[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기자 2023. 9. 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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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오펜하이머에 대한 단상
‘붉은 공포’에 휘말려
아웃사이더가 되다
독일의 하이젠베르크보다 먼저 ‘섭씨 1억도의 불’을 만들어낸 그는 미국의 ‘살아있는 신’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 후 정치 소용돌이 속으로 추락했다…‘비극을 가져온 대가’로 형벌에 처해진 프로메테우스처럼
원자 탄두를 싣고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미사일이 파괴시킨 건, 바로 자신의 미래였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왼쪽)와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르도에서 실시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으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는 모습. AP연합뉴스·Atomic Heritage Foundation

미국 서남부 뉴멕시코주의 하늘은 진한 유화물감을 풀어서 부은 듯 지평선과 맞닿은 곳까지 티없이 푸르다. 학생 시절에 뉴멕시코의 주도이자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미술시장이라고 하는 사막 산 위의 도시 샌타페이에서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간 적이 있다.

내리쬐는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솟는 갈증을 참으며 ‘주니퍼’라는 향나무가 듬성듬성한 풍경을 지나쳐 가다보니 어느덧 거대한 백사장으로 유명한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이 나왔다. 그 근방에는 ‘방사능 주의’ 표지가 서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1945년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장소인 ‘트리니티 사이트’라는 걸 알려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대신해 당시 폭발 열기로 인해 만들어진 유리 결정들은 지금도 파란 하늘을 반사해 반짝이면서 80년 전에 있었던 그 대사건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실시된 미국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위 사진)과 뉴멕시코주 풍경. 박주용 교수 제공

구경을 마치고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샌타페이를 지나치면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가 수장이 되어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던 로스앨러모스라는 도시가 나온다. 지금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터가 되어 그 역사를 기리고 있다.

학창 시절 오펜하이머는 ‘신비로운 멋진 물리학자’의 표상이었다. 말끔한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파이프를 든 채 수업시간에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는 낭만적인 그는 우리에게 하나의 전설이었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오펜하이머가 만든 원자폭탄의 제일 큰 공헌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했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되던 숫자에 비해 훨씬 적은 사상자(그래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합쳐 20만명이었는데)를 내고 2차대전을 끝내게 해주었다는 데 있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흠잡을 수 없고 이가 시릴 정도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결과였지만 누군가는 그에게도 잔인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쟁 후 고국에 몰아친 제2차 ‘붉은 공포’(The Red Scare)의 바람에 자신이 인류에 가져다준 원자력이라는 불을 손에서 빼앗겨야 했던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

이렇게 최고 권위의 물리학자에서 국가의 영웅이 되었다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의 소용돌이(우리 역사로 치면 조선시대의 사화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복판에서 ‘국가를 맡길 수 없는 위험인물’로 찍힌 인물의 일생을 극화한 영화 <오펜하이머>를 극장에서 내려지기 직전 겨우 시간을 내 볼 수 있었다.

영화관에 들어가며 내가 가졌던 단 하나의 질문은 ‘물리학자에 대한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내 머릿속에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두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그것들이 떠오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가벼운 이유, 무거운 이유.

가벼운 이유-인사이더들을 위한 농담 같은 진실

이 영화는 물리학자를 소재로 한 만큼 ‘물리학 인사이더’들만이 이해하거나 연상할 수 있는 ‘농담 같은 진실’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독자들이 가볍게 읽으시라는 뜻에서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1. 실험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오펜하이머가 딱해보였는지 닐스 보어(1885~1962)가 그만두고 이론전문가에게 가서 배우라고 하는 장면, 그리고 버클리대에 부임했을 때 옆 방의 어니스트 로런스(1901~1958)가 지금 만들고 있는 실험기계를 자랑하면서 행복해하는 장면. 물리학자에게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의 차이란 무협소설에 나오는 소림파와 곤륜파의 차이 같은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참고로 필자는 로런스에게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2. 보어가 찾아가보라고 한 괴팅겐의 이론물리학자는 막스 보른(1882~1970)이었다. 보른이 노벨상을 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물리학 인사이더에겐 1980년대 인기 여가수 올리비아 뉴턴존이 그의 외손녀였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있다. 외할아버지의 직업이 ‘physicist’(물리학자)이니까 뉴턴존이 노래하던 ‘레츠 겟 피지컬(let’s get physical)’의 가사는 ‘우리 물리학을 합시다’란 뜻이라면서 우리끼리 껄껄 웃던 기억이 난다.

3. 오펜하이머가 엔리코 페르미(1901~1954)를 만나러 시카고대 축구장을 가로질러 갈 때 안내원이 “여기는 더 이상 안 쓴다”는 말을 하는데, 시카고대는 실제로 1939년 미국 대학 문화의 상징인 미식축구를 중단한 적이 있다. ‘남들 운동할 시간에 우리는 공부한다’며 내린 이 일방적인 결정은 동문들에게 “스탈린과 히틀러가 우쭐거리겠다”는 비판을 받았고, 미식축구사상 최고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한술 더 떠서 페르미는 축구장 지하에서 “연구는 이런 지하실에서 해야지”라는 말을 한다. 파란 하늘의 로스앨러모스보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부는 시카고가 공부하기는 더 낫다는, 진실 같은 농담.

4. 독일의 하이젠베르크가 원자폭탄에는 부적합한 중수소(일반 수소보다 중성자가 하나 더 있어 전기적 성질은 같지만 질량은 더 크다)로 된 ‘중수(무거운 물·重水)’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어에게 전해들은 오펜하이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실제로 하이젠베르크는 나치가 코펜하겐을 점령한 다음 보어를 찾아와 중수에 관해 자문받은 역사적 사실이 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 실수를 깨달은 하이젠베르크는 이후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못 갖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말함으로써 나치 협력의 불명예를 떨치고 자존심도 달래보려 했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나치즘과 궤를 함께하는 독일 민족 우선주의에 동조했던 하이젠베르크가 지어낸 변명이라고 믿고 있다. 양자역학에 대한 지대한 공헌과, 결과적으로 히틀러에게 원자폭탄을 안겨주는 데 실패한 것으로 인해 더 이상 문제 삼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객석을 둘러봤지만 이런 내용들이 나올 때 키득키득 웃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인사이더’란 이런 기분일까? 세상을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면서 만족감을 느끼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조바심에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무거운 이유-두 세계를 모두 품을 수 없는 모순의 존재, 인간

이제 주인공인 오펜하이머로 다시 관심을 돌려본다. 영화에서 그의 모든 성공과 몰락은 완전한 인사이더는 될 수 없고,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양자역학’을 배우기 위해 고국을 떠난 젊은 학생 오펜하이머는 양자역학이 엿보게 해주는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뇌하다 밤마다 열병을 앓고 신경쇠약까지 걸린다. 하지만 그것은 신세기 물리학의 인사이더가 되기 위한 강력한 통과의례였다. 그것을 무사히 통과한 오펜하이머는 결국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리학의 인사이더가 되어 금의환향한다. 미국 정부가 미국의 이념과 대척점에 있는 공산주의자 전력에 눈을 감아주고 나라의 존망을 그에게 맡길 정도로.

그리고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하여 인류가 태어난 이후 수십만년 동안 그 누구도 감히 떠날 수 없었던 작은 행성 지구에서 태양의 중심보다도 몇 배나 더 뜨거운 섭씨 1억도(!)의 뜨거운 불구덩이를 만들어내고 만다. 올림포스 신의 전유물이던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건네준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가 환생한 듯, 그는 과학이라는 마법의 책을 해독하여 우주를 인류의 손에 넣어준 것이다.

이로써 당시 세계에 몇 명 되지도 않았을 작은 물리학계의 인사이더가, 지구와 우주가 하나로 묶인 통합 시공간의 아버지가 되었다. 또한 서로를 파괴하느라 바빴던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과학의 중심지를 완벽하게 옮겨옴으로써 그는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전기의 제목이기도 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명칭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불을 인류에 전해줌으로써 처참한 비극의 가능성도 열어준 대가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펜하이머도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살아있는 신화로 추앙받던 자만감으로 인해 눈이 멀었는지, 아니면 인사이더로서의 화려한 삶을 만끽하는 와중에 정치,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영역에서는 그 어떤 타인도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지, 공직에 야심을 품은 스트로스라는 인물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면서 그는 몰락하기 시작한다. 스트로스뿐만 아니었다. 동맹 연합국인 영국 출신이기 때문에 믿었던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1911~1988)가 소련의 첩자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반유대주의를 피해 고국 헝가리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도망와야 했던 라이벌 에드워드 텔러(1908~2003)가 가졌던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격렬한 경계심을 잘 알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오펜하이머는 이제 국가가 더 이상 믿어줄 수 없는 완전한 아웃사이더로 전락하여 인간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오펜하이머 역시 유대인이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유복하고 유능한 이 엘리트는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의 안녕을 빼앗긴 동족을 이해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오펜하이머 내면의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결코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던 제일 중요한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한다: “그는 공산주의자였는가?”

우리가 그 청문회 자리에 불려간 기분이 들 정도로 영화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질문은 단순히 오펜하이머의 사상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였던 것은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신 오펜하이머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같은 사람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에 대한 학문적·철학적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든가, 스스로 공산당에 입당한 적이 없었다든가, 공산당에 낸 돈은 스페인 내전의 좌파(공화파)에 전달하는 후원금이었다면서 위험한 사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이것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변의 줄 위에서 위태로운 해명의 곡예를 벌이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줄은 거침없는 붉은 공포의 바람 앞에서 끊어져버리고 만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같은 붉은 공포의 시기에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직접 썼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는 바로 영화 <워터프런트(On the Waterfront)>의 감독 엘리아 카잔(1909~2003). 카잔은 1952년에 공산주의자였던 동료들을 의회에 밀고했다는 이유로 연극·영화계에서 배신자로 찍혀버리고, 스스로를 “제일 잘나가는 감독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회상하였다. 카잔은 비록 의회가 이미 그 명단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늉만 하는 것이었기에 모른다거나 부인하는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또 극도로 궁핍했던 2차대전 직전 대공황 시기에 연극단원들에게 파업을 강요하고 ‘아이에게 분유를 사먹일 돈’조차 혁명 자금이라고 갈취하던 미국 공산당의 행태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도 후회되지 않는 일이라고 하였다.

카잔이 목도했던 이런 미국 공산당의 실체를 오펜하이머는 정녕 알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일까? 그러나 영화의 관심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전력에 대한 해명을 하든(오펜하이머), 반공주의에 대한 해명을 하든(카잔), 그 누구도 모든 이에게 추종받는 절대적인 인사이더, 곧 ‘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살짝 과거로 돌아가 아직 신의 영역에 머물고 있던 오펜하이머가 상상하는 공포스러운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원자탄두를 싣고 날아가는 미사일로 가득한 푸른 하늘. 그런데 그것들이 파괴하러 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미래였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박주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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