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의 ‘막말’에 격분한 폴란드 “무기 지원, 끊겠다”

이종태 기자 2023. 9. 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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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폴란드가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9월20일(현지 시각) TV 연설에서 “더이상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겠다”며 “우리나라를 무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다음에 폴란드를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왔지만, 앞으론 자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안보 노선을 바꾸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젤렌스키, ‘폴란드가 은밀하게 러시아를 돕는다’?

전쟁 발발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최근 두 나라가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때문이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흑해 항로가 폐쇄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곡물을 수출하기 어렵게 됐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가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을 경유하는 육로로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곡물이 동유럽 국가들로 유입되면서 해당 지역의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농민들의 불만이 치솟았다. 결국 EU는 지난 5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5개국에 우크라이나 곡물을 수출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중동 등에 수출하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을 지나가는 것은 허용되었다.

9월19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총회에서 연설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 PHOTO

EU는 이 조치를 지난 9월15일 종료했다. 그러나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 곡물을 계속 수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가 발끈했다. 폴란드 등의 수입금지 조치를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 사실, 폴란드 같은 EU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수입금지를 시행하는 것엔 시비의 소지가 있다. EU의 무역 정책을 결정할 권한은 개별 국가가 아니라 EU 집행위원회에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월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국가 이름까지 거명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폴란드 등 수입금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척하면서 밑으론 러시아를 돕고 있다는 내용의 극언을 퍼부었다. “유럽의 우리 우방국들 중 일부가 ‘정치 무대’에선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연기하면서 곡물 문제로 스릴러물(thriller)을 만드는 광경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수입금지 국가들은)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면서 사실은 모스크바 배우(Moscow actor)를 위한 무대의 설치를 돕고 있어요.”

폴란드, 바르샤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초치해 항의

폴란드는 격분했다. 그동안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지원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하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200대 이상의 탱크를 보냈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공급했다. 다른 나라들이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군사 장비들은 거의 폴란드를 거친다. 폴란드는 자국 영토 내에 160만여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제공했거나 약속해둔 상태다.

폴란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REUTERS

젤렌스키의 연설 다음날인 9월20일, 폴란드 외교부는 바르샤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를 초치해서 강력하게 항의했다. 폴란드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대사에게 젤렌스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폴란드는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왔다”라고 말했다.

이윽고 TV에 나온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과두정치 지배자들이 폴란드 농민들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곡물을 폴란드 시장으로 쏟아 넣었다”라며, 이제 자국의 목적을 위해 “최첨단 무기들을 사용하겠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단결해서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맞서왔다. 곡물수입 금지와 젤렌스키의 막말로 촉발된 폴란드-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대(對)러시아 전선의 균열로 치달을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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