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견제기능 잃은 조직의 최후
똑같은 생각 가진 이념집단이
편향성 리스크에 빠졌기 때문
견제와 균형 장치 놓치면 위험
인사 다양성이 조직흥망 좌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출제위원들 중 특정대 출신이 많아 출제 오류를 잡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기사를 얼마 전 읽었다. 대학 선후배끼리 오류를 지적하기가 껄끄럽기 때문에 제대로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벌어진 희대의 국가통계조작 의혹도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국가 신뢰를 무너뜨리는 통계조작에 대해 "이건 안 된다"고 강하게 제동을 걸어줄 사람이 청와대나 권력층 주변에 없었다는 방증이다.
동질한 이념과 국정철학으로 뭉친 정권 실세들이 그들만의 카르텔을 결성해 강한 방어기제를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청와대와 정권 실세들은 '소득주도성장'과 '집값 잡기'를 금과옥조로 여겼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외쳤다. 하지만 이들의 신념이 실패로 귀결될 조짐을 보이자 무리수를 뒀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소득과 집값 지표가 개선될 기미가 없어 통계청과 부동산원을 수십 차례 압박했다.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집값 상승률 수치가 떨어진 것으로 통계를 둔갑시켰다. 감사원 감사 결과대로 국민을 기망한 조작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국기 문란이다.
한 학술단체는 올해 한국이 가장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꼽았다. 집단 극화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집단이 모여 토의를 거친 후 토의 전보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도 이런 편향성이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이런 폐해를 막는 방법은 비슷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된 집단에 '악마의 변호인'을 두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우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신파를 곁에 두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견제와 균형'은 그 조직을 건강하게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조직을 꾸려나가면 편향성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 의사결정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같은 잘못이 윤석열 정부에서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집권 2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의 취약점 중 하나로 편중된 인사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특정 대학, 특정 지역 출신들이 주축이 된 엘리트 집단이 정책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지적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선후배와 지연으로 한데 묶인 집권층이 건전한 견제를 수용하고 다양성을 발휘할지 우려스럽다.
중국 후한 환제 때의 일이다. 이응과 진번 등 의식 있는 우국지사들이 환관의 전횡을 비판하자 환제는 지식인 200여 명을 처벌했다. 불의를 못 참고 쓴소리를 한 유학자들이 대거 죽임을 당하자 인재들이 일제히 침묵하거나 조정을 떠나버렸다. 국정이 문란해진 건 안 봐도 뻔한 결말이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레드팀'을 가동시켰다. 백악관 회의 때 비판적 시각을 지닌 사람들을 일부러 참석시켜 취약점을 발견하고 의사결정의 균형을 잡으려 했다.
삼성의 인사정책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인재 제일'을 외치면서 인사의 다양성을 갖춘 게 오늘의 삼성 발전을 이룬 밑거름이 됐다는 건 다수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고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가기관 여러 곳에서 인사 요인이 분출할 것이다. 정권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소신파,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발탁하는 방안이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추석 국정 구상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황인혁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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