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은 싫어, 카르멘의 길을 갈 뿐”…‘돈 호세’ 스토킹에 맞서는 ‘카르멘’[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3. 9. 21. 17: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1875년 초연된 이후 주인공인 집시 여성 ‘카르멘’은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파탈’의 대명사로 불렸다. ‘돈 호세’는 성실한 군인이었지만 약혼마저 깨면서 카르멘에게 집착하다 끝내 살해한다. 카르멘의 자유분방한 연애는 돈 호세의 살인보다도 비난을 받아왔다. 서울시극단의 신작 연극 <카르멘>은 카르멘을 주체적 여성의 모습으로 다시 그리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유명 연출가인 고선웅 단장이 각색했다.

서울시극단 신작 연극 <카르멘>의 출연 배우들이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플라멩코 춤을 추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기자가 지난 12일 관람한 연극 <카르멘>은 오페라가 폄훼했던 카르멘의 주체성에 붉은 옷을 화려하게 입혔다. 돈 호세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피해자’이지만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 캐릭터이다. 카르멘은 돈 호세가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어차피 내가 갈 길, 뒷걸음질은 싫어. 죽음이라도 상관 없어. 카르멘의 길을 갈 뿐”이라고 외친다.

반면에 돈 호세는 광기어린 집착에 무게를 실어 ‘가해자’로 그렸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1845년 원작 소설에 나오는 카르멘의 전남편 ‘가르시아’, 카르멘의 새로운 사랑 상대인 투우사 ‘에스까미오’의 비중이 늘었다. 돈 호세의 집착이 두 남성 캐릭터의 모습과 대조돼 그의 스토킹은 더욱 지독해 보인다.

서울시극단 신작 연극 <카르멘>의 주인공들인 ‘카르멘’ 역의 서지우(왼쪽)와 ‘돈 호세’ 역의 김병희가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고선웅 단장은 지난 8일 프레스콜에서 “카르멘을 죽인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고, 카르멘에게는 큰 잘못이 없다는 걸 관객께서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카르멘의 명예회복을 바란다”고 말했다.

투우장을 닮은 원형 무대를 설치해 배우들이 주변을 빙빙 도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인물들 사이 애정, 증오, 권력 관계와 동선이 맞물려 관객에게 묘하게 팽팽한 긴장감을 전한다. 스페인의 민속예술 플라멩코 기타 리듬에 맞춰 배우들이 발을 구르며 춤추는 장면들을 볼거리로 내세웠다. 원작 오페라의 아리아 멜로디도 활용했다. 고전 문학의 ‘말맛’을 느낄 수 있는 시적 대사도 풍부하다.

연극 <카르멘>은 현대 감수성에 맞춰 각색했다지만 큰 줄기는 오페라와 비슷하다. 돈 호세가 카르멘을 살해하는 결말도 그대로이다. 카르멘이 갑자기 변심한 이유도 특별히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이 돈 호세를 연인에게 억울하게 배신당한 피해자로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서울시극단 신작 연극 <카르멘>의 주인공들인 ‘카르멘’ 역의 서지우(왼쪽)와 ‘돈 호세’ 역의 김병희가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오페라에서 돈 호세의 대사는 “내가 카르멘을 죽였다”지만 이번 연극에선 “내가 카르멘을 가졌다”라고 외친다. 돈 호세가 주장한 사랑이란 결국 소유욕이었다고 분명하게 규정해 마침표를 찍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작과 각색 사이 적절한 타협으로 ‘카르멘의 명예회복’이 성공했는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고 단장은 “오페라의 미덕도 지키고, 원작 소설의 줄거리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0월1일까지 공연한다. 공연 시간은 휴식 없이 110분.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2010년 12월31일 출생자까지 관람 가능.

▼ 허진무 기자 imagine@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Copyright©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