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선생 외손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는 정치 선전”
“영웅적 리더십이 어떻게 육사 정신과 배치되나”
“독립운동사를 정치화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비논리적인 발상은 이승만 기념관 설립 추진에 이은 또 다른 정치 선전의 일환입니다. 원칙 없이 개인적·정치적 이득을 위해 거짓된 주장을 하며 역사를 수정하는 것은 범죄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68)는 21일 경향신문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가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것인지, 정치·외교적 계산에 따라 반공주의 이념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커디는 “독립운동사는 한반도가 이념으로 분단되기 이전에 일본을 공통의 적으로 둔 상황에서 일어난 역사”라고 전제했다. 조국 해방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 독립운동가들의 다양한 이념과 사상을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본질에서 어긋난다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적군(赤軍)에 가담한 것도 항일 독립운동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3·1 운동 후 독립군 사령관이 된 홍범도 장군은 1919년 한국 독립군을 설계한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저의 외할아버지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일했습니다.
1921년 스탈린은 일본군이 홍 장군을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뒤따라 소련으로 쳐들어올 것을 우려해 독립군을 무장 해제시켰습니다. 홍 장군은 적군에 입대하면 일본군과 계속 싸울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공산군은 홍 장군만큼 경험이 풍부하거나 능력이 출중한 리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홍 장군이 정말 공산주의자였나요, 아니면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유지하기 위해 적군에 가담했을 뿐인가요? 1921년의 공산주의가 지금 홍 장군에게 수치심을 덧입히기 위해 쓰이고 있는 그 공산주의와 같은 것입니까?”
커디는 홍 장군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20만 명 이상의 한국인 중 한 명이었다며 홍 장군이 진정한 공산주의자였다면 왜 스탈린이 추방했겠냐고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앞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달 27일 국방부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주장한 내용과도 맥이 닿는다. 이 회장은 홍 장군에 대해 “왜군과 37회나 전투를 벌이면서 공적을 세웠고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의 무장투쟁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편의상 소련 공산당에 가담했다”며 “그 후에도 봉오동 청산리 대첩에 무훈을 세웠고, 자유시 참변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독립군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커디는 홍 장군이 뛰어난 군인으로서 독립군을 이끌었다는 점도 육사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와 육사는 홍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아,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육군 사관 생도를 교육하는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육사 경내에 설치된 홍 장군의 흉상이 연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
“(현) 정권은 홍 장군과 공산주의의 역사적 연관성이 육사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점령군에 맞서 싸운 지도자가 어떻게 육사의 정신과 충돌합니까? 홍 장군은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전장에서 영웅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커디는 문재인 정부도 홍 장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홍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배치한 것은 국군의날을 10월1일에서 9월17일로 변경하려는 작업의 일환이었으나 홍 장군은 9월17일에 창설된 광복군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했다. 그는 “9월17일은 1940년 일본에 맞서 싸운 광복군이 창설된 날이다. 당시 홍 장군은 카자흐스탄에 있었다. 홍 장군이 광복군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라며 “좌파와 북한을 만족시키기 위한 역사 수정 작업에서 홍 장군을 볼모로 삼은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정확한 역사를 위해서 홍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미국과 일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반공주의적인 선전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까? 문 전 대통령이 육사에 홍 장군의 흉상을 배치한 것은 정확한 역사를 위해서였나요, 아니면 정치적 양극화를 유지시키는 친공산주의적 성향의 한국인을 달래기 위한 행위였나요?
홍 장군의 유산은 전임 정부과 현 정부 모두에 의해 왜곡돼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홍 장군에 대한 어떤 진영의 주장도 한국 역사를 존중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사업에 대해서도 “비논리적”이라고 비판했다. 커디는 “부패하고 정직하지 않은 데다 진정한 애국자도 아닌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그 어떤 사업도 전적으로 반대한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파괴적 리더십에 대한 진실을 숨기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이었을지 모르지만 분명 최악의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했다.
커디는 “남북을, 한반도를 해롭게 분열시키는 역사 조작 행위가 오늘날 한국인들의 가장 큰 적”이라며 “외부 요인이 계속해서 한국의 독립과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독립운동사를 정치화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홍 장군과 관련한 논란은 정치화된 역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은 심지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역사도 수정했습니다.
개개인이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 그리고 책임 의식을 사회에 공유하는 것은 모두 현대인의 정체성 문제로 귀결됩니다. 역사에 대한 책임은 곧 우리의 성격과 용기, 헌신을 규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한국 역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책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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