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세수 펑크에···‘지자체, 통장 털고 빚 내라’는 정부

박용필 기자 2023. 9.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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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지방재정 운용 방향 발표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사용 한도 상향
지방채 발행 요건 완화···방침 뒤집어
한 지방자치단체 의회. 경향산민 자료사진

정부는 지방교부세와 자체 세입 감소로 이중고를 겪을 자지단체들을 위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의 사용 한도와 지방채 발행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른바 ‘비상금 통장’을 털고 ‘빚’을 내서라도 재정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제살깎아먹기’가 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내용의 ‘2024년 지방재정 운용방향’을 21일 발표했다.

먼저 정부는 자치단체들의 지방세입이 감소할 경우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최대 90%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사용하지 않은 기금을 적립해 놓은 것으로, 일종의 ‘비상금 통장’이다. 기존에는 잔액의 60%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를 최대 90%까지 사용할 수 있게 기준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아예 제한을 없앨 방침이다.

‘포괄지방채’ 발행도 허용된다. 현재는 투자나 사업을 위한 비용을 대는 경우에 한해 지방채 발행이 허용된다. 하지만 내년부턴 인건비나 운영비 등 경상비용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재정 압박 때문에 조직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경우에도 ‘빚’을 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쓰레기소각장 등의 시설을 인접 시·군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협력 사업도 장려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별로 소각장 시설 등을 각자 짓는 것보다는 한 곳을 공동으로 지어 함께 이용하는 편이 비용 절감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동·협력 사업에 특별 교부세를 우선 배분하고, 중앙투자심사 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

이 같은 방향은 상당수의 자치단체들이 내년에 재정 압박에 시달릴 것이란 우려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내년도 지방교부세 예산은 올해보다 12%가량 적게 편성됐다. 지방교부세는 내국세의 일정 비율(19.24%)를 떼어 내 지방에 주는 재원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당수 자치단체들에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기업 실적 악화 등으로 지방세 자체 세입도 줄어들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전년도에 쓰고 남은 예산, 즉 세계잉여금을 끌어다 쓰기도 쉽지 않다. 올해도 지방교부세가 11조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재추계’됐다. 즉 올해 쓸 예산도 부족한 상항에서 내년도 예산에 보태 쓸 잉여금이 많이 남을 거란 기대를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비상금 통장’을 털고, ‘빚’을 내서라도 재정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하려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정부 방침과 배치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정부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이유로, 자치단체에 지방채 발행을 자제하고, 오히려 적극 상환에 나설 것을 독려한 바 있다.

실제 재정위기가 수년간 지속될 경우 ‘독’이 될 수 있다. ‘비상금’이 바닥나고, ‘빚’이 많아지면 지자체는 벌이는 사업을 줄여야 한다. 한 기초단체 재정 담당자는 “이 같은 방향은 사실상 ‘제살깍아먹기’를 하라는 얘기”라며 “비상 재원이 바닥나고, 빚 내서 인건비 주는 상황이 오더라도 알아서 버티라는 얘기”라고 했다.

특히 ‘지방시대’를 맞아 중앙에서 사무를 대거 이전받고 있는 자치단체들이 사무를 제대로 이행할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 실제 재정 여건이나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지방으로 이양된 사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사례가 벌써 나오고 있다. 2019년 국가사무에서 지방사무로 이양된 임도시설 사업의 경우 이양 전에 비해 투자비율이 69%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행안부는 지방으로 이양된 사무 중 지방하천 정비사업 등 주민안전이나 생활기반에 관련된 6개의 사업을 ‘우선투자 사업’으로 지정해 관리할 방침이다. 해당 사업에 과소 투자가 됐을 경우 보조금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이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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