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당신의 스마트폰 사용량은?
오랜만의 제주 여행이었다. 추억을 남기고 싶었던 고용석씨는 ‘무기’를 정비했다. 스마트폰에 각종 ‘카메라 필터’ 앱을 설치하고 커다란 보조배터리를 준비해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티켓부터 촬영하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행 사진을 다시 본 적이 있나?’ 수천 장을 찍어도 SNS에 올릴 몇 장을 제외하고는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결심했다. 여행 중에는 하루에 세 장만 촬영하기로.
그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명함도 받은 즉시 촬영해 보관할 정도로 ‘찍는 인간’이었다. 평소처럼 여행하다가는 풍경을 제대로 보는 대신 찍었다는 감각만 남게 될 것 같았다. 당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던 그는 풍경을 눈으로 담은 뒤 스케치를 했다. 여행 중 음악도 듣지 않고 지도를 확인하는 용도로 핸드폰을 썼다. 2020년 제주도 여행 이후 그는 달라졌다. 디지털 기기 체험단 활동도 했던 ‘얼리어답터’였지만 기기에 삶이 지배당한다는 걸 깨닫고 ‘디지털 디스커넥트(연결을 끊음)’를 결심했다. 체험기를 글로 써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재하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글을 묶어 책 〈디지털, 잠시 멈춤〉을 출간했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그는 작업 중 스마트폰 사용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을 자주 접한다. 기기에 정신이 팔리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생존의 문제다.
스마트폰에 지배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건 고씨만이 아니다. 비슷한 풍경은 전 세계에서 재현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 ‘모나리자’는 사람들이 '럭비 경기처럼 몸싸움을 벌이는 뒤편에 영원히 가려져 있는데 모두가 앞쪽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가자마자 모나리자에게 등을 돌리고 셀카를 찍은 다음 다시 힘겹게 빠져나온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그 현장에서 아무도 몇 초 이상 작품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SNS용 사진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별다른 목적 없이 몇 분마다 새로운 앱을 켜고, 전보다 긴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몰입의 즐거움이 사라진 시대다.
2015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휴대전화를 의미하는 ‘phono’와 지성을 의미하는 ‘sapiens’를 합쳐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말을 만들었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인류’를 의미한다. 상황은 한층 심각해졌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노모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인다. 사람들은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데이트를 하다가도 새 메시지, 새 게시물 또는 새 댓글을 알리는 알림 소리에 주의가 산만해진다.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아도, 소지한 것만으로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내에서 지난 4월 말 출간된 〈도둑맞은 집중력〉은 4개월 만에 9만 권가량 판매됐다. 책을 출간한 어크로스 출판사는 집중력 키우는 방법을 일러주는 실용서도 아닌 터라 독자의 관심이 이렇게까지 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집중력을 도둑맞고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자각한 독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평균 집중 시간은 3분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 역시 SNS 중독에 가까운 상태로 생활하다 심각성을 깨닫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북동부 외딴 마을 프로빈스타운에서 석 달간 '디지털 디톡스(단식)'를 한다. ‘금단증상’을 겪다가 가까스로 집중력을 되찾지만 의문이 들었다. 다시 도시에 돌아간다면?
‘디지털 디톡스’ 해봤더니
그는 인터넷 차단이 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비만이 개인의 탐욕이나 방종 때문이 아니라 식량 공급망과 생활방식의 변화로 유행하게 되었듯 집중력 저하 역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이를 유발하는 문화에 기인하는 측면이 컸다. 세계를 돌며 신경과학자, 사회과학자, 심리학자 등 250여 명을 만나 수면 부족, 독서 붕괴, 테크 기업의 주의력 조종과 약탈 같은 집중력 저하의 배후를 좇았다.
책을 읽고 '디지털 디톡스'에 도전한 사람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찾기 어렵게 스마트폰의 앱 배열을 바꾸고, 설정한 사용 시간이 초과하면 자동으로 '잠금' 상태가 되는 앱을 설치한다든지 이용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앱의 ‘푸시(알림)’ 기능을 꺼놨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특히 이 책은 ‘트위터 탈출 버튼’으로 알려졌는데 책을 읽고 ‘트위터(현재 X) 끊기’를 시도한 이들도 있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작곡가 코드쿤스트도 스마트폰을 잠금통에 넣고 10시간 봉인한 뒤 ‘아날로그적 하루’를 보내는 동안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기기 사용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것)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거나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용석씨는 심각한 금단증상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또 하나의 내가 나를 협박하는 느낌이었다.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불안감이 심했다.” 시간이 지나자 눈이 렌즈 대신 관찰을 시작했다. 종이와 펜의 마찰력을 느끼자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다른 이들도 비슷하다. 처음엔 힘들지만 스마트폰과 멀어진 뒤 짜증이 덜 나고 잠을 잘 자게 되었다는 후기도 있다. 이런 감상 역시 스마트폰으로 공유하게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거리두기에 실패한다. 핸드폰을 하루 10시간 넘게 사용하는 SNS ‘헤비 유저’ 강태영 어크로스 편집자도 그중 한 명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편집하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고 사용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으나 책이 나오고 홍보에 매진하면서 다시 SNS 활동이 늘었다. 현재 하루 평균 12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거나 멈추려는 시도는 이처럼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도파민이다.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는 스마트폰이 우리를 도파민 중독자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이 ‘현대판 피하주사 바늘’이라 설명하며 "우리는 ‘스와이프(화면을 쓸어 넘기는 것), 좋아요(페이스북), 트윗(트위터)’을 할 때마다 주의 집중-확인-주의 산만을 반복하고 빠른 쾌감을 얻기 위해 스마트폰에 의존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저서 〈도파민네이션〉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는 슬롯머신처럼 우리를 매료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는 인간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를 의지나 도덕성의 결핍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지휘하는 신경물질 도파민에서 찾는다.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도파민을 전달하고 인간이 그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임계점이 넘으면 어떤 자극을 주어도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약물이나 도박 중독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도 날로 심각해진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미국 성인 패널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이용에 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답했다. 83%는 깨어 있는 내내 스마트폰을 가까운 곳에 두고, 깨자마자 화면을 확인하는 이들도 65%에 달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스마트폰을 잡은 사람들은 샤워를 할 때도 뭔가 틀어놓고, 길을 다닐 때도 들여다보다가 잠들기 전까지 화면을 만지작거린다. 눈이나 손, 혹은 귀가 쉴 만한 잠시의 틈도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현황’을 보면 3세에서 6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과의존 위험군이 23.6%다. 대략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이마저도 2018년 19.1%에서 시작해 팬데믹을 지나며 상승했다가 지난해 24.2%에 이른 후 처음으로 감소한 수치다. 반면 청소년은 매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과의존 위험군이 2021년 37%에서 지난해 40.1%로 증가했다.
‘나쁜 생활 습관’을 만드는 매개체
〈손안에 갇힌 사람들〉을 집필한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니컬러스 카다라스는 디지털 기기 습관을 ‘디지털 헤로인’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중독’이 정식으로 진단 가능한 질병은 아니지만 정신과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해서 나온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젊은 층의 우울증과 자해 및 자살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진단이 대표적이다. 지난 5월 비벡 머시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 단장은 공중보건 권고문을 발표하며 “SNS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 건강과 복지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분명한 지표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0~24세 자살률이 2007년에서 2018년 사이 57% 증가했다. 국내 연구도 비슷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가 진행한 2022년 청소년 정신 건강 중독 실태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SNS를 과하게 사용하는 청소년일수록 교우관계가 낮고 우울 정도도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청소년의 SNS 과의존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과 교우관계의 매개효과').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반박하거나 유의미한 연관이 없다는 연구도 종종 눈에 띈다.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있다. 스마트폰 때문에 눈을 비롯해 목,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이 노화 속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노화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만성 스트레스다. 만성 스트레스의 결과로 잘 알려진 증상이 우울과 불안의 증가다. 쾌락에 취약해져 자극을 좇게 되고 그러면 우울과 불안이 증가하며 수면장애가 생긴다.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연구한 논문을 보면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우울과 불안의 증가나 수면장애가 관찰된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신체 활동을 적게 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 교수가 보기에 스마트폰은 ‘나쁜 생활 습관’을 만드는 매개체다. “스마트폰 사용과 노화 메커니즘까지는 아직 연구가 안 되었지만 조만간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걸 넘어 기기 없이 살 수 없게 된 좀 더 선명한 이유가 최근 몇 년 사이 공개되기도 했다. 2021년 〈월스트리트저널〉은 페이스북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이 젊은 이용자들의 정신 건강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이를 방치했다는 증거였다. 문건은 ‘10대 청소년들이 불안감과 우울증이 증가한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꼽았고 10대 가운데 영국 사용자의 13%, 미국 사용자의 6%가 인스타그램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페이스북의 전 직원 프랜시스 하우건은 의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사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자기 혐오와 자살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도 회사가 이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바꾸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그는 "페이스북은 대중의 안전보다 이익을 선택해왔다"라고 밝혔다.
소셜미디어 기업에 중독은 필수 요건이다. 요한 하리는 “집중력 파괴가 기술기업의 사업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은 메일이 올 때마다 알림 메시지 보내는 서비스를 만들어 화면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렸고,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열되는 ‘무한 스크롤’ 형태의 소비 방식을 개발했다. 기술 분야 저명인사들은 현대 기술이 유혹적이라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웨덴 정신과전문의인 안데르스 한센의 〈인스타 브레인〉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을 만든 저스틴 로젠스타인은 소셜미디어의 중독성을 알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기능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설치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생전 아이들의 모바일 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기로 유명한 '로테크(low tech)' 부모였다. 니컬러스 카다라스는 스웨터와 바가지 머리(빅테크 기업 대표들의 이미지)에 속지 말라고 한다. 미국 석유사업가 록펠러가 살던 시대에는 세계 제일의 부자가 석유 사업만 제패했지만 저커버그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생각과 욕구, 행동을 만들고 통제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힘이다.
팬데믹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뉴욕타임스〉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크린 타임에 대한 논쟁을 끝냈다. 화면이 이겼다'라는 헤드라인이 실렸다. 코로나19 유행 전 스크린 타임(화면을 보는 시간)이 걱정돼 정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자 죄책감에서 벗어났다는 해석이다. 이 시기 여러 국가의 10대 소녀들에게 ‘틱장애’ 가 늘어났는데 그 배경으로 ‘투레트증후군’을 겪는 유명 틱톡(짧은 영상인 ‘숏폼’ 위주로 운영되는 플랫폼)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이 지목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팬데믹 이후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그룹이 두 배 증가했다는 조사가 나왔다(2021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실태 대국민 인식조사’).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첫 스마트폰 사용 연령과 사용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러 국가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관련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18세 미만 청소년의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이용을 하루 2시간 이하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인터넷 미성년자 모델 건설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비록 중국이라 가능한 정책이긴 하지만 당국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동영상의 ‘자동 재생’ 기능을 비활성화하지 않으면 소셜미디어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유타주는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없이 SNS 계정을 개설할 수 없도록 했다. 한국은 직접적인 규제에는 소극적이다. 지난해 ‘제5차 스마트폰·인터넷 과의존 예방 및 해소 기본계획’(2022~2024년)을 보면 예방 교육, 인식 전환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알림 메시지와 ‘무한 스크롤’의 함정
‘손안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손놓고 있어야 할까. 지금의 불안이 기우라는 시선도 있다.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미래를 비관하며 중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모든 스크린 타임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스마트폰 이점을 활용하면서도 의존성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스크린 타임 중 어떤 부분이 문제적인지 평가하고 나쁜 콘텐츠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측정하는 앱이 도움이 된다. 주말에 뉴스 읽는 시간을 하루 20분으로 제한하거나, ‘스크린 타임’을 가끔 즐길 수 있는 사탕처럼 취급하는 방법도 있다. 침실에 휴대전화를 두지 말라는 지침은 출처를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고용석씨도 단지 스마트폰을 덜 사용하는 것보다 잘 사용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이 기업체 CEO가 아닌 이상 외딴 섬에 고립되어 '완전한 차단'을 실행하기란 불가능하다. 고씨는 앱의 잦은 전환이 문제라고 생각해 영상을 보더라도 1시간짜리를 집중해서 보려고 한다. 또한 그는 수첩 사용을 권한다. “스마트폰이 손안에 있으니 그걸 대체할 만한 물리적 크기의 뭔가를 갖고 다니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최대한 비슷한 사이즈의 수첩을 지니며 기록하고 틈날 때 기록한 메모를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영미권에서 한동안 명상, 요가 등 ‘마음 챙김’에 관심이 늘어난 배경에는 한 가지에 몰두하기 어려운 환경이 놓여 있다.
부산 지역 청년 모임 ‘단하루’는 베이킹, 다회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디톡스’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시작할 때 참석자들은 스마트폰을 ‘비행 모드’로 전환한다. 적어도 약 2시간은 스마트폰과 분리되어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다. 사람들은 돌아갈 때 ‘디지털 디톡스 트래커’를 받는다.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실천 목록이다.
정주연 단하루 대표를 포함해 디자이너 3명이 시작한 모임이다. 지난해 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터졌다. 누군가와 식사할 때도 SNS 곁눈질이 예사였는데 그날은 불가능했다. 카카오톡 서비스와 연계된 음악 앱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자 세 사람의 대화가 길어졌다. 집에 돌아갈 때도 고개를 숙이는 대신 창밖을 보았다. 그런 경험이 인상적이라 디지털 디톡스를 주제로 다른 청년과 함께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회당 10여 명 내외 청년이 참석한다. 정 대표는 “적어도 밥 먹는 한 시간 정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누군가와 대화하기만 해도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집중력의 위기는 개인 삶의 효능감이 낮아지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령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에도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요한 하리는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진짜 문제를 파악해 공상과 구분하고, 해결책을 떠올리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집중력이 희소재가 된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손안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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