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전환교육의 본류 ‘농촌 유학’… 서울교육 돌파구 될까?
학교 수업과 질 높은 방과 후 활동에 만족, 학원 뺑뺑이 대신 자연과 교감
기대 크지만 극소수 경험으로 서울교육 변화시킬지 의문
● 동상초, “온 학교가 함께 키워요”
지난달 22일 전북 완주군 동상면 동상초의 다모임 수업.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전교생 21명이 체육관에 모였다. 다모임이란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여 학생 문제를 협의하거나 수업 또는 행사를 하는 것으로 이 학교에서는 한 달에 1회 실시한다.
동상초의 다모임에 전교생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한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이 넘어가면 전교생 다모임은 엄두를 못 낸다. 전교생이 한 장소에 모여 공감할 수 있는 행사는 학생들 간의 유대감을 높인다. 이 학교의 전교생은 21명인데 유학생이 지역 학생보다 많은 11명이다. 이 가운데에는 서울에서 온 농촌 유학생 4명이 포함돼 있다. 도시에서 온 유학생이 없었다면 동상초는 폐교됐을지도 모른다.
유학생들은 학교에서 1km 남짓 떨어진 열린마을농촌유학센터에서 살면서 학교에 다닌다. 5학년은 5명으로 모두 외지에서 왔는데 서울 학생이 3명이고 나머지는 제주와 전주에서 왔다. 지역, 가정환경, 성장배경이 다른 아이들로만 구성된 5학년은 2명이 적응 실패로 다시 전학 가는 등 진통 끝에 안정을 찾았다. 박정애 담임 교사는 “교장, 교감까지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등 온 학교가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아이들이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 천태초의 ‘밥상머리’ 교육
교사와 학생들은 20여 분간 계속된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박수훈 5학년 담임 교사는 밥을 먹으면서 1학기 때 코딩 수업에서 가르쳐 준 파이선 프로그램을 활용한 방학 숙제가 어렵지 않았는지 물었다. 서울에서 농촌 유학을 온 박우주 군(5학년)은 “서울에서는 한 번도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없었지만, 여기서는 항상 같이 먹으면서 수업에서 몰랐던 걸 물어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얘기한다”고 했다. 천태초에는 8명의 서울 농촌 유학생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색다른’ 경험하고 있다.
천태초는 담임과 학생들이 점심을 같이 먹는다. 6년째 근무 중인 박지선 농산어촌 유학 담당 부장은 “이 학교에 처음 온 2019년부터 같이 밥을 먹었다”고 했다. 박 교사는 전교생이 41명에 불과한 천태초 같은 소인수 학교는 대개 교사와 학생이 같이 식사한다고 전했다. 교사들은 식사 자리에서 학생들이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식사 태도를 관찰하며 교우 관계도 파악한다.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학부모와의 면담에 유용하게 쓰인다.
● 한 달에 두 번꼴로 현장 체험
전북 동상초와 전남 천태초의 농촌 유학 학생들의 하루는 학교 수업과 방과 후, 집에서의 짜임새 있는 생활로 바빴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수업과 체험 활동에 만족했다.
동상초가 있는 동상면은 과거 전국 8대 오지에 꼽힐 만큼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감과 대아저수지로 유명하며 자연 풍광이 뛰어나다. 아이들은 이 속에서 지내는 게 큰 즐거움이다. 동상초는 ‘4계절 생태 감성 힐링 교육’을 위해 학교 부근의 자연환경과 지역 축제, 생태 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해 숲 나들이, 생태 요리 만들기, 고창 갯벌 체험 등 18번의 현장 체험을 다녀왔다. 도시 학교에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의 잦은 체험이다. 오후 1시 10분부터 4시 10분까지 진행되는 방과 후 활동은 영어, 컴퓨터, 키보드, 바이올린, 뉴 스포츠 등 5개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는데 전교생이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참여한다.
● 바쁘지만 재밌어
천태초는 교육 프로그램과 방과 후 학습이 농산어촌 유학생을 끌어들일 만큼 경쟁력이 있다. 서울에서 온 김담희(5학년), 규희(2학년) 자매의 어머니 정수현 씨는 “아이들이 수업에 활발히 참여해 자신감이 늘었고, 방과 후 활동을 재밌어한다”고 말했다. 엄마로서 아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신 천천히 가는 삶도 있다는 걸 느끼도록 농촌 유학을 결정하면서 이왕이면 프로그램이 좋은 학교를 골랐다”고 했다. AI가 다 해주는 세상에서 “농촌에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영어 수학 100점 맞기 위해 노력한 아이와 나중에 가면 분명히 다를 것”이기에 정 씨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삼성 스마트 스쿨인 이 학교 학생들은 질 높은 IT 교육을 받고 있다. 기자가 참관한 5학년 미술 수업과 6학년 사회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삼성 크롬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찾고 과제를 수행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자치회와 자율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의 자기 주도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체육과 예술이 강조된 방과 후 활동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기다. 서울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농촌 유학을 와 현지에서 사는 박자선 씨는 “서울에서는 예체능 위주로 사교육을 시키면서 두 아이에게 100만 원 정도 썼는데 여기는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이 서울보다 다양하면서도 무료여서 너무 좋다”고 했다. 천태초의 방과 후 프로그램은 골프 수영 스키 바이올린 피아노 사물놀이 등 10개가 넘는데 전교생이 3∼5개 정도 참여하고 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화순군의 지원으로 승마 교육도 하고 있다.
● 농촌 유학 연장이 대세
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이 대상인 서울시교육청의 농촌 유학은 올해 2학기까지 641명이 경험했거나 경험 중이다. 초등생이 575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학생들의 서울 거주지는 남부교육지원청,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순으로 많았다. 사교육이 강한 지역이 들어있는 게 눈에 띈다.
현재는 248명이 전남, 전북, 강원에 체류 중이다. 6개월이 기본인 농촌 유학의 평균 연장률은 65.1%이고 2023년 2학기가 81.7%로 가장 높다. 농촌 유학은 거주 형태에 따라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가족 체류형, 아이들만 현지에서 거주하는 홈스테이·유학센터형 등 3종류가 있다.
농촌 유학 1기 때 3자녀를 모두 천태초로 데리고 온 김선미씨는 “선행 학습을 못 받는 게 조금 불안할 뿐 선생님들의 학습 지도도 서울보다 뛰어나고,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만족해 계속 연장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의 큰 딸은 5학년 때 농촌 유학을 와 천태초를 졸업하고 나주의 중학교에 진학했다. 초3, 초4의 남매도 천태초를 졸업할 예정이다.
● 농촌 유학의 기대와 한계
농촌 유학의 목표는 학생의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고 다양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한편 지역을 살리는 것이다. 이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농촌 유학 학교는 뛰어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서울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자연 친화적 수업과 체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교육 환경과 문화적 차이는 농촌 유학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농촌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공동체의 변화와 농촌 학교의 혁신이 한국 교육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키우고 있다. 자연+에듀테크+교사들의 노력으로 나타난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가 K-에듀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 회생에도 농촌 유학의 기여도는 높다. 이도명 천태초 교장은 “전남은 서울 유학생들이 없었다면 복식 수업(2개 학년 이상의 학생을 한 교실에서, 한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을 하는 학교가 속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수 감소는 복식 수업-분교-폐교로 이어진다. 박지선 교사도 “도암면의 주거 환경이 나아지면 훨씬 많은 유학생이 와 지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농촌 유학이 여러 면에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한계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서울 초중학생 0.01%의 경험만으로는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서울교육을 바꾸고 한국교육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인수학급에서 구현되는 질 높은 교육이 국내 학교 어디서나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과 교사들의 자질을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또 외지 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농촌 교사들에 대한 배려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동상, 화순=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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