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전환교육 학생변화 이끌어… 경쟁교육 변화 기대

이종승 기자 2023. 9. 2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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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생태 감수성 키우는데 뚜렷한 성과
먹거리 생태전환교육 호응 커
진학 위주 교육환경 극복이 숙제
5일 서울 중랑구 묵동 태릉중 학생들이 그린 급식바를 이용하고 있다. 학생들의 채식 경험은 음식 선택에 탄소발자국 개념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종승 기자

● 염리초의 텃밭 체험

“공부보다 텃밭 가꾸는 게 재밌어요.”

김동하 군(서울 염리초 4)의 텃밭 체험수업 소감이다. 김 군은 텃밭 수업을 통해 “채소는 먹을 수 있고 유용한 걸 알았다”고 했다.

이 수업은 7일 오전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서울 마포구 염리동 염리초 운동장 구석에 조성된 텃밭에서 진행됐다. 4학년 5반 학생들은 40분간의 수업에서 수업 도우미로 참가한 그린썸원예치료연구소 강사 2명의 도움을 받으면서 직접 무와 배추의 모종을 심었다. 강사들은 모종을 심기 전 아이들에게 잎이 넓은 게 배추이고 잎이 작고 가는 게 무라는 걸 설명했다.

담임 교사까지 3명이 진행한 텃밭 수업은 아이들의 열띤 관심 속에 진행됐다. 염리초는 학교 안의 태양광 시설, 연못, 텃밭 등과 학교 밖의 경의선 숲길과 한강 공원 등을 활용해 도시 아이들에게 폭넓은 생태전환교육을 하고 있다.

● 염리초의 ‘Y.E.S 탐험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생태전환교육의 핵심은 염리초의 ‘Y.E.S 탐험대’에 녹아들어 있다. Y.E.S는 ‘Yeomri Eco School’의 약자이면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탐험대는 탐구·체험·연대에서 따온 글자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사회가 어우러져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생태전환교육은 서울 시내 초등 609개교 중 551개교, 중학교 390개교 중 312개교에서 교육과정 연계를 통해 실시하고 있지만 고교에서는 확산이 더디다. 고교의 낮은 참여도는 진학 위주 교육의 벽을 뚫지 못한 것, 기존 환경 교육과의 차별성을 부각하지 못한 것, 교사들이 조 교육감의 또 다른 교육실험으로 인식해 자발적 참여가 부진한 것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Y.E.S 탐험대’에 들어있는 탐구·체험·연대와 YES에 들어있는 가치는 서울교육 나아가 한국 교육을 바꿀 수 있는 실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태전환교육에는 생태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 외에 교과과정 연계, 융합 수업, 생활 속 실천을 통한 4C 함양, 학교 밖 연대, 체덕지(體德智) 등 진학 위주 경쟁교육을 완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 교사들의 노력이 학생 변화와 학부모 호응 이끌어

성적에 민감한 중산층이 모여 사는 마포에서 생태전환교육의 호응은 ‘공부가 전부가 아닌 제대로 된 학교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정순자 염리초 교장은 학부모들의 호응을 “모든 게 생태전환교육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환경 교육의 의미와 가치에 공감하는 학부모들이 생태전환교육이 교과과정에 녹아들어 학습에도 문제가 없고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염리초는 ‘씨앗 교사단’의 노력에 힘입어 생태 감수성을 키워주면서 학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학교와 학원만 다니던 학생들은 생태전환교육을 통해 사회적 관심사에도 눈을 뜨고 있다. 2022년 탄소 중립을 배운 5학년 학생들이 이마트에 이메일을 보내 저탄소 식품 판매 전용 코너를 요구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게 한 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먹기 등 식생활에서 탄소 중립을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염리초 14명의 30∼40대 교사들은 생태전환교육, IB(국제바칼로레아), 탄소중립 등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모든 교과목을 연결한 융합 수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도 10여 년 전부터 형성된 ‘자발적 교사 문화’ 덕분이다. 차민경 교사는 “사회 수업에서 제로 웨이스트(재활용)의 개념을 배운 아이들이 체육 수업에 쓰레기 줍기를 제안하고 열심히 참여했다”면서 “융합 수업은 교과서를 벗어나 행동하는 것이 많아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 환경 교육 한계 극복한 그린 급식에 학생 호응

“아이들은 쓰레기 가득 쌓인 바다, 바짝 마른 북극곰의 의미를 많이 봐서 잘 알고 있지만 그걸 보고 행동까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린 급식은 내가 먹고 있는 게 어떤 경로를 거쳐 오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알게 하기에 행동에 이른다.”

최유리 태릉중 교사의 말이다. 최 교사는 간식 사 먹을 돈도 아끼는 아이가 제로 웨이스트 가게에서 3000원짜리 빨대를 사는 이유를 알아야 세대에 맞는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태릉중의 그린 급식은 아이들의 생태 감수성을 높이고 행동까지 변화시키는 촉매다. 5일 이 학교 급식실의 그린 급식바에는 상추, 깻잎과 아스파라거스, 양파, 마늘을 함께 볶은 채소들이 올랐다. 쌈류와 볶음 채소들은 점심 메뉴인 돼지 목살구이와 어울렸다. 그린 급식은 태릉중이 작년 9월 먹거리 생태전환교육 구체화를 위해 시작했다. 과일이 올라오는 날에는 학생들이 더 몰린다. 장윤서 양(2학년)은 “그린 급식 후에 친구들이 더 급식이 맛있어졌다고 한다. 더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아이들은 수업과 체험 활동을 통해 익힌 탄소발자국 개념을 음식 선택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는 152개교에 그린 급식바가 있다.

● 생태전환교육 뒷받침하는 체육

서울시교육청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개념을 익히고 스포츠에 들어 있는 공정, 배려, 협력 등의 가치를 교육에 접목하기 위해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체육 활동도 생태전환교육과 관계돼 있다. 학교스포츠클럽 23개 종목 확대, ‘365+ 체육 온’ 동아리가 학생들의 체육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저탄소 녹색 교통을 실천하기 위해 도입된 초등학교의 찾아가는 자전거 타기 안전 교실은 생태전환교육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여학생들의 체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행 중인 ‘공을 차(치)자! 소녀들아! 서울에서!’도 축구 22개 팀, 야구 4팀 등으로 확대됐다. 건강 증진과 학습 향상을 위해 초등학교 중심으로 운동장 맨발 걷기와 ‘시즌2 다시 뛰는 아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 중이다. 김진효 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예술교육 과장은 “스포츠를 통한 연대 경험은 사회 문제 해결에 함께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데 기초”라고 했다.

● 오산고의 생태전환교육과 입시

서울 용산구 보광동 한강 변에 있는 오산고는 생태전환교육을 전 학년의 교과, 비교과 영역에 적용하고 있다. 오산고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미래 사회’라는 교사들이 집필한 교과서를 생태교육에 활용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학생들이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한강, 텃밭, 태양광 시설, 에코 그린 카페, 풍력발전기 등이 교재 역할을 한다.

눈에 띄는 건 3학년에도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미래 사회’라는 과목을 교양과목으로 넣은 것. 박세민 교사는 “공존의 가치를 길러줌과 동시에 입시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오산고가 2021년 생태전환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된 이후 생태전환교육은 대입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내는데 도움이 됐지만 확대 해석은 경계한다. 박 교사는 “생태전환교육이 진로 탐구에 도움을 줘 대입에서 좋은 결과를 낸 만큼 생태전환교육이 입시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학생과 학부모들이 인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학교의 노력은 다양한 학부모들이 교육 방향성에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 실천과 연대를 위한 네트워크 구성

서울시교육청은 생태 행동 실천 습관화를 위해 서울시교육청 산하 기관과 학교의 화장실에 있는 모든 종이 수건을 없앴다. 1년 사용량을 생각하면 지구를 위한 꽤 의미 있는 실천이라는 자평이다. 또 학생, 교사, 학부모, 시민이 참여하는 ‘기후행동 365’를 구성해 생태전환교육 실천과 연대를 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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