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내래 ○○○ 모가지 따러 왔수다”
1968년 1월 어느 날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청년의 목소리에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나는 어린 중학생이었지만 그 소리가 북한 말투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름이 김신조이며,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 소속으로 청와대를 기습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왔다고 말했다. 31명의 게릴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는 일찍이 우리 군에 생포되었다. 한국전쟁에서 전면전으로 실패한 북한은 1960년대에 들어와 비정규군으로 남쪽을 공격하곤 했는데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은 그러한 게릴라전의 대표적 사례였다. 그 일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까지 우리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김신조의 입에서 나온 “내래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는 말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 그리고 분노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런 말을 21세기 대명천지에 국방부 장관 후보자 신원식의 입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원식은 2019년 9월21일 어느 태극기 집회에서 “…벌써 6일 전에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했기 때문에 문재인의 모가지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뿐 아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악마’ ‘간첩’ 등 막말을 퍼부었다. 예비역이지만 장성 출신인 그가 국군 통수권자에게 한 망언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가 이제야 자신이 한 말의 진의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 모양인데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이었다. 표현이 거칠었다. 말실수였다. 이런 사후 설명으로 이해를 구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자격이 없다. 북한 124군부대 게릴라 김신조의 말이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한 그 상처를 다시 헤집어내는 신원식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자격조차 의심스럽다.
신원식의 정신세계는 독특한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는 군사쿠데타 5·16과 군사반란 12·12에 대해서도 각각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반체제적 발상이다. 5·16 군사쿠데타는 4·19혁명으로 이룬 민간 민주 정부를 폭력으로 무너뜨린 부끄러운 역사이고,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유신체제와 같은 군부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하극상을 일으킨 것이다.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군대라는 조직의 직업적 소명인데 신군부 세력은 총부리를 거꾸로 겨누어 같은 나라의 군인들을 살해하고 군권을 찬탈하는 반란을 획책했다. 동료 군인을 이유 없이 죽이고 지휘체계를 폭력으로 무력화시킨, 우리나라 군대의 부끄러운 역사였다.
우리는 긴 군부 통치 시대를 겪었다. 국가의 폭력을 관리하는 군대 조직이 권력을 장악하고, 억압적 국가기구를 이용해 국가 운영을 해 온 권위주의 체제가 오래 지속됐다. 권력을 분립하고 상호견제를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민주주의는 유명무실화하였고, 국민이 주권자로서 자유롭게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기회도 봉쇄됐다. 국가가 가야 할 목표는 오로지 권력자에 의해 정해지고 그 뜻에 따라 모든 자원이 동원, 조직화됐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대가 그러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생각대로라면, 그것이 신원식을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라면 우리나라는 과거 군부 권위주의 시대를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겠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검찰이라는 국가폭력기구를 정치화해 권력 유지에 이용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원식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군대라는 기구도 정치적으로 장악해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유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검찰이 정치의 시간을 찢고 들어가 야당 지도자들을 탈탈 털어 왔으며, 집권 세력의 잘못에 대한 수사에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항의를 줄기차게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려는 윤 대통령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해병대 채모 상병의 사망 수사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보이는 태도,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 등을 보면 신원식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해 윤 대통령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신조가 “내래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한 말이나 신원식이 “문재인의 모가지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 말이 모두 섬뜩하고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 말 한마디가 신원식의 성정을 압축하고 있다. 이 말 한마디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신원식은 국방부 장관에 어울리지 않는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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