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차라리
사람이 있을 땐 필요 없으나 사람이 없을 때는 꼭 필요한 게 바로 자물쇠 열쇠. 하지만 의자는 누가 있을 때나 없을 때 모두 필요해. 사람 말고도 햇볕과 새가 쉬었다 가더라.
산촌은 보통 혼자 살거나 둘이 살거나 그래. 먼 옛날 에덴동산에 살았다는 아담과 하와. 간만에 부부간 대화의 시간. “하와씨!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날 사랑하긴 하나요?” 하와가 씹던 껌을 뱉더니 “아담씨! 여기 당신 말고 누가 또 있나요? 할 말은 많지만 참습니다.”
둘이서 오순도순 살다 한 사람이 먼저 저세상에 가면 혼자서 밭일도 해야 하고, 밥도 혼자 먹어야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해야 오래 살아. 그도 생존 기술이다. 육지에선 수영만큼 필요한 ‘산책과 운동’, ‘영양 식단’, 그리고 ‘말동무’. 만나진 못해도 전화기로 수다를 떨 만한 말동무 한 명쯤 꼭 필요해.
이장의 아침 방송, 추석이 다가오니 풀베기 울력을 하자네. 몸이 힘들어 내 집 마당도 다 못 베고 지내는데. 또 한 가지, 인생을 살다 보면 때가 있기 마련이라는 방송 소리. 웬 인생철학인고? 들어봤더니 그게 아니라 이동 목욕탕 차량이 방문한다는 소리. 그 ‘때’가 아닌가벼~.
아랫동네에 ‘척 맨지오니’가 사는지 트럼펫 대신 색소폰을 창밖으로 연주해. “잡것들아(잡범들아 아님) 영광인 줄 알어라잉. 이 뛰어난 트로트 연주를 듣는 너그들~” 하는 투. 가까운 군 부대에선 대포를 쏘아대. “전쟁은 좋은 것이여” 나팔을 불어대네.
누가 시골이 조용하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내 사는 주소 ‘그러면 차라리’. 살기 힘들다며 차라리 차라리 노래를 불러쌌는데, 그대 너무 욱하지 마시옵길. 인생 뭐 있나. 말동무에 의지해 그만그만 사는 거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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