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정권 말기 같은 공직 사회

오창민 기자 2023. 9. 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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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고 혼탁하다. 극한 대결을 보이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공직 사회의 민심 이반도 심각하다. 전임 정부에서 일깨나 한 공무원들은 감사원 감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원래 일을 하지 않던 공무원들은 늘 그렇듯 납작 엎드려 있다. 관가 분위기가 정권 말기 같다.

요즘처럼 기획재정부가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보인 적이 없다. 경제와 민생 위기에도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을 핑곗거리는 널려 있다. 여야 대치로 예산안의 정부 원안 처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과거 예산실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건전 재정’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으니 업무량은 물론이고 고민 자체가 줄었다. 세제실이나 경제정책국 등도 일하겠다는 의욕이 안 보인다. 국회 입법이나 야당 설득이 필요한 정책은 불가능하다고 지레 판단한 듯하다. 기재부가 올해 경기 예측을 제대로 못해 발생한 세수 결손 규모가 59조원, 국민 1인당 118만원꼴이다. 그런데도 사과나 반성이 없다. 온통 빨간불인 생산·소득·물가 지표를 보는 것도 무섭지만 이런 기재부의 태도가 더 무섭다.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는 일손을 완전히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부는 윤 대통령이 통일부가 더 이상 ‘대북지원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으면서 조직과 인력이 대폭 축소됐다. 여가부는 윤 대통령이 부처 폐지 공약을 낸 마당에 새만금 잼버리 부실 운영 건까지 터지면서 쑥대밭이 됐다. 국방부는 또 어떤가.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이종섭 장관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를 앞두고 있다. 윤 대통령이 여가부·국방부 장관을 교체하기 위해 후임자를 지명했지만 흠결이 너무 많다. 설령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쇄신이나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 등은 조직의 수장이 ‘리스크’ 요인이다. 과거 한때의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곤 하는 원희룡 장관은 극단적 발언과 돌출 행동으로 부처에 짐이 되고 있다. 한동훈 장관은 야당을 자극하고 폄훼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은 헌정사 최초로 국회의 해임건의와 탄핵소추를 모두 당한 이상민 장관 밑에서 일하고 있다. 교육부의 과장급 인사는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배제’ 발언 이후 입시 담당 국장을 전격 경질하고, “대통령에게서 많이 배운다”며 아부성 발언을 하는 이주호 장관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사고는 장관이 쳐도 국회에 가서 빌고 뒷수습하는 일은 부하 공무원들 몫이다.

윤 대통령의 결정은 일방적으로 하달된다. 중앙 부처의 공무원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윤 대통령의 ‘카르텔’ 한마디에 연구·개발 예산 수조원이 날아갔다. 긴축 재정과 보조금 삭감 정책으로 보건복지부는 사회안전망 확충 대신 취약계층 복지를 구조조정해야 할 판이다. 윤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있는데 고용노동부가 노동계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왜 해양수산부가 해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공무원들은 지시 사항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정권이 바뀌면 인사상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부에서 원전 업무, 환경부에서 4대강 사업 등을 담당한 공무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관여한 공무원들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윤석열 정부에서 요즘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은 감사원과 검찰 일부다. 이들을 제외한 공무원들의 인사말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이다. 국민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40만 교원과 7만 경찰의 사기는 시쳇말로 단군 이래 최악이다. 이 모두가 행정 수반인 윤 대통령,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책임이다. 포식자나 천적을 만났을 때 약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죽은 척하기’라고 한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무기력이 안타깝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무원만큼 실력 있는 인재도 없다. 공무원 개개인이 국민에게 헌신하며 신나고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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