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방류’ 도쿄전력 소송 나선 어민 “국가는 어디 있나”
“한국 정부의 우리 국민에게 피해 없다는 입장” 탓에 이중고
일본의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 주민들이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중단시켜달라는 소송을 낸 가운데, 한국 어민들도 일본 법원에 비슷한 취지의 소송을 내려고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법원에 오염수 방류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이 제기된 적은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낸 사례는 아직 없다.
전남 여수에서 꼬막 양식업을 하는 김영철(61)씨가 일본으로 향한 때는 2023년 8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그가 만난 인물은 일본 주민을 대리해 소송을 준비하던 가와이 히로유키 변호사였다. 김씨는 일본 주민과 한국 어민이 함께 소송을 낼지에 관해 가와이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 계획은 함께 소송을 내는 것이었지만, 일본 주민의 소송에선 빠지기로 했다. 김씨가 말했다.
“가와이 변호사가 소송을 준비하는 일본 어민들이 일본 내 우익세력의 공격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한국 어민까지 소송에 참여하면 추가 공격을 받을 빌미가 될 것 같아서 우리는 별도로 하겠다고 했어요.”
김씨가 양식업을 뒤로하고 전국을 돌아다니게 된 것은 2021년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다. 전국어민회총연맹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전국을 돌며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다. 이후 결국 도쿄전력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고, 김씨는 일본 법원에 직접 소송을 걸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우리나라 어민만 (일본 법원에 소송을) 할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 어민과도 같이 하려 한다”며 “일본 변호사를 섭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와이 변호사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중국과 한국에서 반발이 심하다고 (언론 등에서) 나오면서 일본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다”며 “일본 내 혐한 차별주의자들이 이를 이용해 우릴 공격하고, 충분히 재판에서도 이용할 수 있기에 걱정스러워 지금은 거절했다”고 말했다. 다만 “오염수 방류는 세계 바다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시아 민중이 함께 목소리를 내어 투쟁해야 하는 일”이라며 “중국과 한국 등 많은 국가에서 함께 소송을 내면 유효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법원 2년 재판, 각하의 이유
“주문. 원고들의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한다.”
2023년 8월17일 부산 거제동의 부산지방법원 303호에서 하나의 소송이 마무리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은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이 도쿄전력 홀딩스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후쿠시마 방사능오염수 해양방류 금지청구 소송의 선고기일이었다. 결과는 ‘각하’.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오염수 방류를 막아달라는 첫 번째 법원의 판단이 본안조차 심리되지 않고 끝난 셈이다.
이 소송의 시작은 202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정부는 그해 4월13일 오염수 방출 계획을 담은 처리수 처분에 관한 기본 방침을 관계 각료 회의에서 결정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채 열흘이 되기 전에 환경단체가 국내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소송을 낸 부산환경운동연합은 당시 “방사능 오염수가 해양에 방류되면 해류를 타고 부산 앞바다에 도달해 부산 시민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을 것”이라며 “오염수 방류를 금지하라”고 주장했다.
1년이 지난 2022년 7월에야 첫 변론이 열렸다. 주된 쟁점은 한국 법원이 도쿄전력의 오염수 방류 금지를 판단할 재판관할권이 있는지였다. 원고인 부산환경운동연합 쪽은 방류를 금지해야 하는 근거로 세 가지를 들었다. △방사성물질 투기를 금지하는 ‘런던 의정서 협약’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안전에 관한 ‘빈(비엔나) 공동 협약’ △이웃 토지의 사용을 방해하거나 이웃 거주자의 생활에 고통을 주지 않도록 적당한 조처를 할 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217조 1항’ 등이었다.
도쿄전력 쪽은 세 가지 모두 반박했다. 먼저 협약에 관해선 체약당사국 국민이 제기한 소송은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요컨대 조약이 체약당사국 간의 분쟁해결 절차 등을 규율하는 것이지, 당사국 구성원끼리의 법률관계를 재판으로 해결하도록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아울러 민법 조항에 관해서도 소송 대상인 설비와 물건 등이 일본에 있어 한국 법원이 국제재판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약 2년 동안 변론만 일곱 차례 들은 재판부는 2023년 8월17일 도쿄전력 쪽의 주장을 대부분 인용하며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집행의 대상이 모두 일본에 소재해 법원의 판결에 의한 집행의 실효성이 뚜렷하지 않다”며 “우리나라에 토지를 소유하거나 거주한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생활방해 행위에 대한 금지를 우리나라 법원에 구할 수 있다고 본다면, 같은 유형의 소송에 관해 우리나라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무제한적으로 확대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쪽은 2022년 1월 개정된 국제사법을 근거로 한국 법원에 관할권이 있다고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고 쪽 대리를 맡은 변영철 법무법인 민심 변호사는 “한국 사람이 외국 사람과 소송할 때는 관할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따로 만든 국제사법이 있다”며 “국제사법 제44조를 보면 불법행위에 관한 소송은 대한민국에서 행해지거나 대한민국을 향해 행해지는 경우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22년 1월 개정되고 같은 해 7월부터 시행된 국제사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개정된 국제사법 부칙을 보면 ‘법 시행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의 관할에 대해서는 종전의 규정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사건 ‘소송 계속’이 발생한 시점은 피고에게 소장 부본이 송달된 2022년 3월31일”이라며 “법이 시행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현행 국제사법 신설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서 소송하면 최소한 ‘재판관할권’은 인정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오염수가 방류되기 시작한 8월24일 항소했다. 변호인 쪽은 항소심에서 국제사법을 토대로 다퉈본다는 입장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2심에서도 ‘소송 계속’ 시기는 1심 소장 부본 송달일로 본다”며 “다만 만약 별건이나 새로운 소송이 제기된다면 그에 대해선 어느 법을 적용할지 따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어민이 일본 법원에 직접 소송 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소한 재판관할권은 인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만약 일본 법원에 소송한다면 국제관할권이 없다고 각하 판결할 근거는 없을 것 같다”며 “(본안에 대해선) 그쪽이 판단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변영철 변호사도 “승소 가능성은 모르겠지만 피고(도쿄전력) 지역에서 재판하는 거니 재판관할권은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재판관할권은 인정될 거라고 봤지만 본안에 대해선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지금 문제는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우리 국민에게 피해가 없다는 것이거든요. 물론 도쿄전력도 입증 책임이 있지만,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영향이 없다고 하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이용될 거예요. 어민 처지에선 재판에서 (오염수 방류에 따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요. 어민에게는 이중의 부담이 되죠.” 결국 일본 법원에 소송을 건다고 해도 정부의 입장이 중요한 셈이다.
이미 국내에선 어민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나섰다가 소송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부산환경운동연합이 2021년 4월 소송하고 한 달 뒤인 5월, 한림수산업협동조합(한림수협)과 한림어선주협회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방해예방 및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오염수 방류 행위와 준비 행위를 중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하루 1천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원고에 이름을 올린 김시준 전 한림수협 조합장은 “일본이 당장 방류한다고 하니까 변호사를 직접 고용해서 (소송)했다”며 “막상 시작하니 돈이 무작정 들어가는데 어디서 지원받는 것도 아니고 협조해주는 곳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변호사랑 이야기했는데 (승소)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 들어서 더 이상 하지 말자고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국회든 제주도든 대응했어야죠, 이전에는 뭐 했어요?”
이 사건은 이후 제주지방법원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됐는데, 2022년 2월 재판부는 소장 각하 명령을 내렸다. 같은 ‘각하’지만 앞선 부산환경운동연합 재판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소장 부본이 송달돼야 재판이 진행되는데, 원고 쪽이 더 이상 재판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 각하 명령을 내린 것이다.
김 전 조합장은 국가든 정치권이든 앞서서 싸워야 할 책임이 어민들 몫이 됐다고 토로했다. “국회든 제주도든 대응했어야죠. 이전에는 뭐 했어요? 우리 같은 어민도 돈 주고 변호사 고용해서 항의했는데 뭐 했냐는 말이에요. 이미 (오염수) 방류하고 나서 이거니 저거니 이야기하면 뭐합니까. 당시(2021년)에 무슨 대책을 강구했나요. 결국 어민만 다 죽은 거예요.” 2년 전 외롭게 싸우다 지친 어민이 2023년의 정부에 다시 묻고 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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